슈퍼마케터 3장 - 이 시대 기타왕
3.2 선택하는 인간
정보는 사람에게 있었다
기타 레슨이 끝난 뒤였다.
사람들이 기타를 케이스에 넣고
삼삼오오 흩어질 때,
tvM 마케터 우람님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인후님.”
그는 평소보다 목소리를 낮췄다.
회사에서 목소리를 낮춘다는 건
‘진짜 얘기’가 시작된다는 뜻.
“저번에 말씀드린 그 마케터 자리…
좀 더 알아봤는데요, 말씀드릴까요?”
“네.”
“회사 사정도 알고,
현업이랑 연결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대요.”
그는 말을 멈추고 내 표정을 살폈다.
“지금 팀에 경력직과 신입이 많아서요.
회사 안에 다른 부서하고 잘 연결하고,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가 봐요.”
“제가 그 자리에 잘 맞을까요?”
“그럼요~ 지금도 100명 넘는 동아리
누구보다 잘 끌고 가고 계신데.
여기서 하신 것처럼만 하셔도 잘하실 거 같은데요?”
그 한마디가 반갑기도 하고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이거 비밀인데..!
저희 팀장님이요. 요즘 인사팀이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거든요.”
그는 내가 부담 느끼지 않게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 말에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들이 가득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조금씩 나에게 다가왔다.
결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래도 사회생활 초반보다는 밝아져 있었다.
그러나 속이 허전하고, 무언가가 비어있는 마음은 여전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회사에 맞는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얼굴로 살아가야 할까?
새로운 얼굴을 입혀야 할까?
그날 밤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지원서도 각오문도 아니었다.
그냥 지난 시간들과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왜 tvM인가.
거기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나는 멈춰있는 것.. 같다.
그곳에서 내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인사팀에서 뭘 배웠나.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
데이터로 사람을 보는 법,
회사의 언어.
나를 꺼내보았다.
적다 보니 조금 선명해졌다.
그 자리.. 내가 해볼 수 있을까?
입사 첫날 철판 스테이크를 먹는 그날,
작년 말 상무님과 면담을 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람님에게 내 의사를 담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선택을 위해 나도 움직여야 했다.
벌써 1년
인사팀 상무실 앞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1년 전, 이 문 앞에서 나는 돌아섰다.
“마케팅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 말은 ‘힘든 사람의 푸념’으로 해석됐고,
나는 공연 티켓과 이틀의 휴가를 받았다.
그때는 '나'만 생각했다. 회사는 없었다
이제는 ‘회사’가 있고, ‘기회’가 있다.
똑똑.
상무님은 서류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인후? 그래 무슨 할 말 있다며.”
나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상무님.
tvM 마케팅팀에서 자리가 하나 난다고 들었습니다.”
상무님의 눈썹이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래?”
“그 자리가
회사 사정도 알고
현업이랑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요.”
나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인사 데이터 업무 1년 동안 하면서
어느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상무님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을
이번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tvM 쪽 사람들과
최근에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쪽 팀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조용히 듣던 상무님이 물었다.
“인후.
혹시 너 tvM이 재밌어 보여서 가고 싶은 거야?
아니면 마케팅이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잠깐 망설였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둘 다 맞습니다. 그것도 맞지만 끌립니다.”
상무님이 피식 웃었다.
“끌려?”
“네. 이상하게 사람이 끌리고, 그곳의 문화가 끌립니다.
그 채널에서 같이 성장해보고 싶습니다.”
상무님은 한동안 나를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지난번엔 힘들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준비가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상무님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래. 내가 한번 알아볼게.”
“감사합니다.”
문을 나서며 나는 알았다.
이번엔 공연 티켓을 받지 않았다는 걸.
휴가도 받지 않았다는 걸.
기다리는 시간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하는 일은 똑같고, 내부에서는 아무런 말도 변화도 없다.
그 사이에도 기타 동호회는 계속해서 운영되었다.
대기자가 계속 늘었고, 회사에서 이름 날리는 동호회가 되었다.
“회장님, 이번에 MT 어디로 가요?”
“회비는 어떻게 해요?”
“초급반 더 열어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정리해서 공유드릴게요.”
정리. 공유. 결정. 실행.
동호회의 일은 일과 비슷한 부분도 있었다.
기획하고, 실행하고
사람과 소통하고, 이끌고, 때로는 관계를 만든다.
이상했다.
나는 기타를 배우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배운 방식들이
일에서도 잘 쓰이기도 했다.
나는 1주일 전,
이 부서의 가장 높은 분에게
마케팅으로의 이동을 이야기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늘 사람을 작게 만든다.
메일 알림이 올 때마다
누가 부를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윤과장님이 회의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오늘따라 조금 다른 것 같다.
말이 조금 짧게 느껴진다.
그 사이에 내 이야기를 들으신 걸까?
듣고 서운하셨을까?
뭔가 결정이 난 걸까?
‘혹시..?’
아니었다.
회사의 결정은 언제나 생각보다 늦게 온다.
그런데, 불안하다.
위에서는 왜 아무 말도 없는 걸까?
이번에도 힘든 푸념으로 끝난 걸까?
일이 힘들어서?
tvM 쪽에서 거부한 건?
경험이 없다고?
내부에서 다른 분들이 반대한 건?
혹시.. 조 과장님이?
그럼 윤과장님은?
나는 이럴 때 무엇을 더해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생각은 많아지지만, 여느 때처럼 일은 해야 한다.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천천히 흐른다.
마케터의 탄생
그날, 초인후는 자리에 없었다.
그곳에는 인사 상무, 조과장 그리고 윤과장이 있었다.
세 사람이 모여 초인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리에서 과장이 된 전 사수, 조과장.
그리고 현재 초인후를 맡고 있는 윤과장.
이야기를 논하기 가장 적격인 사람.
강경영 인사상무가 이야기를 열었다.
“인후 인사이동 건으로 의견들 이야기 주시죠.”
조과장이 먼저 입을 연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반대입니다.”
상무가 고개를 든다.
“여기서 이제야 좀 일할 단계가 되었습니다.”
말투는 공손하지만 톤은 단단하다.
“처음엔 좀 튀는 애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커뮤니케이션도 되고요.
그런데 그게.
새로운 곳에서도
그렇게 될지가 걱정도 됩니다.”
그 말에는 우려를 담고 있었다.
조과장은 이어간다.
“그리고 선례가 생기면 팀 관리가 안 됩니다.”
상무가 생각에 잠긴다.
"'말 하면 옮겨준다'는 메시지가 심어져서
다들 주니어들도 붕 뜰까 봐 우려가 됩니다.”
반대표의 쐐기였다.
“그리고… 인후님은
입사 초기에 연차를 써서
외부 면접을 본 적이 있죠.”
..?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개인의 선택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마쳤다.
이어서 윤과장이 조용히 말한다.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상무와 조과장이 동시에 그를 본다.
“성과는 성과죠.”
짧은 문장.
“지난 1년 동안
인사팀에서 기대 이상의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조직이 합쳐져 혼란스러워
회사에서 조직문화에 고민일 때
동호회로 좋은 선례를 만들었죠.”
조과장을 쳐다보며 눈을 마주친다.
“조과장님 계신 조직문화 쪽에서 많이 고마워하고 계시죠?”
“뭐.. 나쁘지 않죠.”
초인후의 동아리 활동을
조직문화 파트의 실적으로 꺼냈었던 조과장이 머쓱하게 답했다.
윤과장은 이어간다.
“솔직히 바로 떠나면 저희 쪽에서 공백이 생깁니다.
하지만 팀을 떠나더라도 더 잘하면
회사 입장에선 남는 겁니다."
윤과장은 조과장과는 반대로 찬성의사였다.
“그리고.
지금 인후님를 보낼지 말지보다는
그 자리에서 잘할 수 있을지를 봐야 합니다.”
회의실 공기가 조금 묵직해진다.
상무가 안경을 벗고 탁자 위에 내려놓고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한다.
“인사 이동은 잘 맞는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두는 거죠.
조과장을 본다.
“조과장 말도 맞아요.
지금 인사팀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고요.”
윤과장을 본다.
“윤과장 말도 맞죠.
성과를 인정하고 다음 기회로 열어줘야 조직이 커져요.”
잠깐 정적.
”제가 가장 중요한 사람을 불러보겠습니다.“
그리고 상무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tvM 팀장이 연락을 받고 자리에 합류한다.
“인후님에 대해서요? 음. 제가 하나 말씀 드려도 될까요?”
상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 시청률 잘 나온 프로그램 있죠. 군인거탑.
그 제작발표회요. 군인 콘셉트로 입구부터 동선, 소품까지 잘 설계된 거.”
“그거 경영진 회의에서도 잘했다고 이야기 나왔었죠.”
“그거 누가 한 건지 아세요?”
..?
“처음 이야기 꺼낸 게 바로 인사팀 초인후 님입니다."
조과장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는다.
그 자리 바로 옆자리에 있었으니까.
“그 친구 없었으면 안 됐어요.”
분위기를 가르는 한 마디 결정타.
“아이디어만 낸 게 아니라
디테일한 정보도 주고, 현장까지 챙겼습니다.”
제작발표회 날 공간 담당자로 왔다가,
현장에서 부지런히 세팅까지 돕던 초인후의 모습이 스쳐간다.
“저희 팀 마케터들이
같이 일할 수 있겠다고 말한 사람이에요.
저는 함께 일해도 좋습니다”
조과장 자신이 그토록 '티 내지 말라'고
눌러왔던 신입의 행동이,
결국 그 자신을 변화시키는 티가 되었다.
상무의 시선이 바뀌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류를 덮는다.
“이건 이동이 아니네요.”
모두가 그를 본다.
“스카우트, 아닌가요?”
상무는 조과장을 본다.
“조과장 말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무작정 보내진 않겠습니다."
마케팅팀장을 보고 말을 마무리짓는다.
"팀장님이 최종 검증하고 이동 진행하죠.”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일어난다.
조과장과 윤과장이 남겨지고 마지막으로 말한다.
“본인이 선택한 거면. 잘, 버텨야 할 겁니다.”
조과장이 말에 윤과장이 이어서 거든다.
“잘 버틸 거예요. 응원해 줍시다.”
회의실 문이 닫힌다.
회사에서 배치란 필요한 곳에 두고 보내는 곳이다.
회사에 더 도움이 될 곳에 도움 될 사람을 두는 곳이다.
누군가 초인후를 보내는 쪽에,
누군가는 초인후를 데려오는 쪽에 서 있었다.
이날의 결정은 그동안 초인후가 벌인
행동과 선택의 결과물이었다.
한걸음 더
비서분을 통해 연락이 왔다.
상무님의 소환이었다.
나는 상무님실로 가며 알았다.
이런 호출은 뭔가에 대한
‘결정’을 말하는 자리다.
기회가 나에게 왔을까.
기회가 날아갔을까.
문을 열자 상무님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지?
tvM 쪽에서 한번 보자고 하네.”
나는 숨을 삼켰다.
“면접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최종 선택은 그쪽에서 하니까. 잘 말해봐.”
상무님은 딱 그 정도만 말해줬다.
회사에서는
끝까지 선택되어야,
그것이 진짜가 된다.
상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
복도는 평소와 똑같았는데,
발걸음만 조금 무거웠다.
면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인사팀에서 보낸 2년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서버실의 차가운 공기,
숫자로 사람을 보던 시간,
티 나지 않게 숨 고르던 날들.
나는 여기까지 버텨왔다.
그런데도 또다시
선택받아야 하는 시간이다.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올라왔다.
이번엔 도망치지 말자.
잘 되든, 안 되든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만은
제대로 말해보자고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다짐했다.
tvM
tvM 팀장실.
책상에는 다양한 기획서가 올려져 있었고 회의실에는
내가 본 대부분의 프로그램 포스터도 붙어 있었다.
팀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인후님, 오랜만이네요.”
“네. 잘 지내셨죠. 팀장님”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그런데 왜 tvM이죠?”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말을 꺼냈다.
“저는 사람들이 궁금합니다.
왜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알고
그 마음을 움직여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마케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 더. 솔직히 물어볼게요.
인사팀 2년 했는데, 마케팅은 잘 모르는 거 아니에요?"
올 것이 왔다.
당연한 질문이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말한다.
"모릅니다. 하지만 배우고 싶습니다."
"그게 다예요? 다른 건 없나요? 잘할 수 있는 거."
순간 말이 막혔다.
준비한 답이 있었는데, 막상 그 눈빛 앞에서는 외운 문장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잠깐 멈췄다가, 있는 그대로 말했다.
"저는 사람을 모으고 경험했습니다. 제가 운영한 100명의 기타 동호회가 있습니다."
"저도 알죠. 유명하잖아요."
"제가 본 이곳은 하나의 커뮤니티였습니다.
사람들을 모았고, 참여를 이끌어냈고, 저는 그 모든 걸 기획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케터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1년 동안 봤습니다.
저만의 방식으로 tvM의 팬덤을 이끌어내겠습니다."
“그걸로 어떤 걸 해볼 수 있죠?”
“예를 들면, 대학생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그들의 tvM 커뮤니티를 키워볼 수 있습니다.”
“좋네요. 일쪽으로는?”
“인사에서 데이터로 일을 했습니다.
조직을 잘 이해하고 있어
다양한 부서와 협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콘텐츠 시청 데이터를 잘 분석해서 시청자의 마음을 잘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팀일까요? 더 잘하는 채널 많잖아요?”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tvM은 힘이 있습니다.
드라마에 이야기가 있고,
캐릭터가 살아 있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도
그 캐릭터처럼 살아 있었습니다.
성장의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팀장이 웃었다.
“살아 있어요?”
“네. 저는 그게 이상하게 부러웠습니다.”
팀장님이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케팅을 하려면
우리… 마케터부터가 마음이 살아 있어야 하거든.”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마지막 최종 결과를 받았다.
마지막 인사
복도에서 윤과장님과 마주쳤다.
“인후. 진짜 가는 거야?”
“네. 너무 아쉬워요. 그동안 잘 해주셨는데.”
윤과장님은 아쉬운 얼굴로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그동안 들려주신 수많은 은퇴 후 계획들이 스쳐갔다.
“근데 왜 하필 tvM이야?
거기 요즘 쉽지 않을텐데?
뮤직넷도 있고 다른 데도 많고.”
나는 웃었다.
이곳은 회사의 미운오리새끼같은 존재였으니까.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윤과장이 말했다.
“조금 의외의 선택이었어.”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맞아요.
이번에도 특이한 선택을
해보고 싶었어요.
저만의 선택을요.’
같은 팀의 박대리님이 내 책상으로 왔다.
“축하해.
드디어 하고 싶은 걸 하게 됐네.”
박대리님은 일 하면서도 계속 응원해주고,
도움도 주시며 회사의 다정함을 알려주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조금 뜨거웠다.
“1년 동안 한 것처럼만 하면 어디서든 잘할 거야.”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사팀에서도 떠나는 나를 위해 송별회를 마련해주었다.
같은 테이블에는 조대리, 아니 조과장님이 있었다.
"tvM 가는 거 축하해."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야."
그는 특유의 반 박자 늦은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거기 생각보다 힘들 거야. 잘 버텨."
나는 그 말을 위협이 아닌 격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솔직히 미운 순간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 했던걸까 싶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잘하는 그가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이제 과거가 된다.
이제 동료로, 팀의 후배로 함께하는 마지막이니깐.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
그는 회사의 얼굴을 알려주었다.
그 시간이 조금은 차가운 방식이었지만.
박대리님이 웃으며 말했다.
“인후야, 가서 누가 괴롭히면 말해. 알았지!”
조과장님이 피식 웃으며 받았다.
“박대리는 참 걱정도 많아.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두 분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과장님, 대리님. 두분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1년동안 함께했던 윤과장님, 박대리님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다.
윤과장님의 리스크를 대비하는 방법부터
박대리님의 데이터 분석 노하우까지.
그리고 믿었다.
이것이 이후에 하게 될 마케터의 일에 도움이 될 거라고.
전날 밤
출근 전날 밤, 나는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 것 같다.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문득 서버실 냄새가 떠올랐다.
에어컨 바람, 노트북 열기, 아무도 부르지 않던 조용한 오후.
서버실과 데이터로 함께했던
인사팀에서의 2년은
조용했고, 차가웠다.
정해진 일,
정해진 역할,
정해진 거리.
그 시간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그게 전부이길 원하지 않았다.
tvM은
분주하고, 뜨거울 것만 같았다.
무엇을 하게 될지,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
불안했다.
내가 선택한 이 자리가
나를 더 잘 보이게 할지,
아니면 더 빨리 취약함을 드러내게 할지.
그래도 이상하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기다리며 보는 폰에서
메신저 알림이 보인다.
“회장님, 다음 주 레슨 공지 언제 올라와요?”
나는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답장했다.
“다음 회장님이 올려주실 거예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그렇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기타를 쳐본 적 없는
이 회사 최대 기타동호회의 회장이었다.
그곳에서의 1년이 나에게 다음 기회를 열어주었고,
나는 이제 그 자리를 다음 회장님에게 넘긴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마케터가 되러 가는 사람이다.
손이 떨렸다.
18층이 아닌 8층.
인사팀이 아닌 tvM.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알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돌이키고 싶지 않다는 걸.
“나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마케터다.”
그날, 비 오는 골목에서 쫓고 쫓기던
그 신입이 처음으로
자기가 선택한 원하는 문 앞에 섰다.
슈퍼마케터 프리퀄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