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파트장이 된 뒤 마주한 이상한 팀원들
파트장이 된 첫 주
파트장이 되고 나서 일주일은, 적응의 시간이었다.
달라진 건 많지 않았다.
여전히 하얀 방으로 출근했고, 여전히 맞은편 의자는 비어 있었다. 여전히 회사 사람들을 화면으로 만났다. 그런데 화면 속 사람이 늘었다. 내 밑에 팀원이 셋 배정됐다.
세 명의 팀원
차은빈, 이우람, 하우정.
세 명이었다.
다들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각자 다른 공간에서 일했고, 메신저와 화상으로만 연결됐다. 처음엔 어색했다. 나는 누군가를 지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스물아홉 평생, 누구한테 뭘 시켜본 적이 없었다.
부탁도 잘 못 하는 사람이 지시라니.
첫 주에는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것도 몇 번을 고쳤다.
'이거 수정 부탁드려요'라고 썼다가, 너무 딱딱한가 싶어 '이거 한번 봐주실래요?'로 고치고, 또 너무 약한가 싶어 다시 고치고.
희영님한테 그 얘길 했더니 웃었다.
"인후 씨, 파트장인데 그렇게까지 눈치 안 보셔도 돼요."
"한 번도 안 해봐서요. 누구한테 뭘 시키는 거."
"잘하고 계세요. 팀원들이 인후 씨 좋아하던데요."
그 말이 나쁘지 않았다. 팀원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게. 살면서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생각보다 할 만했다.
팀원들이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너무 잘했다.
실수하지 않는 은빈님
은빈님은 특히 그랬다.
내가 뭘 물으면 답이 정확했다. 애매하게 알아듣는 법이 없었다. 내가 두루뭉술하게 지시해도, 정확히 내가 원하는 걸 가져왔다. 한 번은 내가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도 못한 채로 "이 부분이 좀 약한 것 같은데"라고만 했는데, 은빈은 그날 저녁에 세 가지 보완점을 정리해서 보냈다. 내가 막연히 떠올리던 것보다 더 명확한 것들이었다.
처음엔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은빈은 실수를 안 했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오타를 내고, 가끔 딴소리를 하고, 잘못 이해하고, 다시 물어본다. 나도 그러고, 희영님도 그런다. 우람님은 가끔 농담을 던졌고, 우정님은 가끔 마감을 놓쳤다. 그런데 은빈님은 그런 게 없었다. 보고서에 오타 하나 없었고, 한 번도 잘못 이해한 적이 없었고, 되묻는 일이 없었다.
처음엔 그냥 꼼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람님과 우정님도, 결국 비슷했다.
농담을 하긴 했는데 — 그 패턴이 비슷했다.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우정님은 마감을 놓친 것도, 다시 보니 언제나 타이밍이 같았다. 마치 '사람은 가끔 마감을 놓치니까 한 번쯤은 놓쳐야 한다'는 걸 아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나는 멈췄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너무 깊이 보는 거다. 일 잘하는 팀원들을 두고 트집을 잡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새벽에도 답하는 사람
더 이상한 건 시간이었다.
어느 날 밤, 수정할 게 생겨서 은빈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새벽 1시였다.
답장이 안 올 줄 알았다. 이 시간에 누가 일을 하겠어. 내일 아침에 보겠지.
그런데 30초 만에 답이 왔다.
[차은빈]: 확인했습니다. 바로 수정할게요.
나는 시계를 봤다. 새벽 1시 2분.
은빈님도 안 자나.
그 생각을 잠깐 했다가, 그냥 넘겼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겠지. 요즘 시대에 흔치 않게.
그런데 그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새벽 2시에 보내도, 새벽 3시에 보내도, 답은 항상 1분 안에 왔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아침에 보내든 일요일 밤에 보내든, 은빈은 늘 깨어 있었다. 늘 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건 우람님도, 우정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우리 팀이 유난히 열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팀 사람들도 그랬다. 미팅에서 다른 팀 누구한테 자료를 요청하면, 자료가 오는 데 몇 분이 안 걸렸다.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가장 이상한 건, 아무도 그걸 이상해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일을 안 한다. 20대의 80%가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았다. 일하지 않아도 300만원이 나오니까. 그래서 일하는 사람이 별종 취급을 받는 시대였다.
그런데 이 회사 사람들은 자지도 않고 일했다. 주말도 없이. 새벽에도. 마치 일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사람들처럼.
이 회사에는 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하루는 은빈님한테 슬쩍 물었다.
화상 미팅 끝에, 자연스럽게.
"은빈님은 잠을 잘 안 자요? 새벽에도 답이 와서요."
은빈은 화면 안에서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딱히 피곤하진 않은데요?"
나는 그 답을 듣고, 잠깐 멈췄다.
잘 모르겠다.
자기가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를 모른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충분히 주무시냐고요. 매일 새벽까지 일하시는 것 같아서."
"아, 저는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일하는데 문제없어요."
은빈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화면 너머로. 그 웃음에 이상한 점은 없었다.
나는 그냥 넘겼다.
잠을 자지 않고 일한다는 게.
따질 일도 아니었고, 따질 거리도 없었으니까. 사람마다 수면 패턴이 다른 거고, 은빈님은 잠이 적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설명이 됐다.
하나씩 보면 다 설명이 됐다.
그런데.
자꾸 뭔가 걸렸다.
그날 밤, 일을 하다가 은빈님이 보낸 파일을 열었다.
문서 속성을 무심코 봤다. 파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가 적혀 있었다.
생성: 새벽 3시 47분.
최종 수정: 새벽 4시 12분.
새벽 3시 47분에 만들어서, 4시 12분까지 수정했다.
그 사이에 멈춘 기록이 없었다. 사람이 문서를 작업하면 중간에 멈추는 시간이 있다. 생각하느라, 커피 마시느라, 화장실 가느라. 그런데 이 파일은 25분 동안 한 번도 안 멈췄다. 처음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마치, 기계처럼.
나는 그 단어가 떠오른 순간, 머릿속에서 비워버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은빈님은 사람이다. 화상으로 매일 보는 사람이다. 웃고, 말하고, 인사하고. 그냥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을 두고 기계 같다고 생각하는 건 실례다.
나는 파일을 닫았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도 멈췄다.
파트장이 되고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다.
할 일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고. 승진을 했다는 걸.
나를 아는 사람이 알면 놀라겠지.
나는 사람들 앞에 있으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니까.
그때 떠오른 사람이 민수였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셋이 자주 어울렸다. 나, 민수, 그리고 유연이.
민수랑 유연이는 그때부터 사귀었고, 나는 늘 옆에 있는 친구였다. 셋이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노래방에 가고, 별것도 아닌 일로 밤새 떠들었다. 말수 적은 나를, 민수가 늘 끌고 다녔다. "인후 너 또 혼자 있으려고 하지." 그러면서.
그게 내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마지막 시절이었다. 그게 민수 덕분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3년 전에 민수랑 유연이가 헤어지고 나서, 민수는 달라졌다. 처음엔 그냥 힘들어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졌고, 만나자고 하면 다음에 보자고 했고, 다음은 계속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민수한테서 답을 받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폰을 들어서 봤다.
'민수.'
'뭐해?'
이전에 보냈던 메시지에 여전히 답이 없다.
'살아 있음? 나 할 말 있어. 한번 보자.'
보내고 나서 폰을 내려놨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한참 지나서 오겠지. 아니면 안 오거나.
다음 날, 일을 하다가 AI 에코 대시보드를 열었다.
사용자 데이터를 점검하는 게 이제 내 일이었다. 베타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었고, 나는 그 패턴을 분석해서 보고해야 했다. 누가 얼마나 오래 쓰는지, 어떤 사용자가 가장 깊이 빠져드는지.
숫자들을 스크롤했다.
체류 시간 상위 사용자 목록이 떴다. 가장 오래 에코를 쓰는 사람들. 가장 깊이 들어간 사람들. 익명 처리된 ID가 대부분이었는데, 내부 관리자 권한으로는 이름이 보였다.
스크롤하다가 손이 멈췄다.
이름 하나가 눈에 걸렸다.
낯익은 이름이었다.
오민수.
그 이름을 한참 봤다.
흔한 이름이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오민수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클릭했다.
화면에 사용자 정보가 떴다.
오민수 — AI 에코 집중 사용자.
가입 후 누적 사용 시간: 상위 0.1%.
최근 외출 기록: 62일 없음.
62일.
나는 그 숫자를 다시 봤다.
62일 동안 집에서 안 나왔다는 뜻이었다. AI 에코 집중 사용자. 상위 0.1%. 가장 깊이 빠진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깊이. 베타 버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써온 기간.
그 아래 마지막 접속 기록이 있었다. 오늘 새벽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수는 에코 안에 있었다.
나는 폰을 들었다. 민수 채팅창을 열었다.
내가 보낸 메시지들이 쌓여 있었다. '뭐해.' '살아 있음?' '한번 보자.'
전부 '읽지 않음'이었다.
민수는 내 메시지를 안 읽고 있었다. 그런데 에코는 매일 쓰고 있었다. 나한테는 답이 없는데, 에코 안에서는 누군가와 매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는 몰랐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내가 만든 거였다.
가장 그리운 걸 만들어서, 그 안에서 안 나오게 하는 것. 내가 직접 그렇게 해봤으니까. 글래스를 벗기 싫었던 그 밤들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민수는 지금, 그 안에 있었다.
나는 민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손이 차가워졌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8화 <냄새>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