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 단, 인간이어야 함



준노씨가 사라진 다음 날도 회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갔다.


오전 9시에 팀 메신저로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어제와 같은 형식의 테스트 일정이 공유됐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림이 정확히 12시에 울렸다. 달라진 건 하나뿐이었다. 맞은편 의자가 비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준노씨를 안 게 고작 1주였다. 친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이였다. 같이 밥을 먹고, 준노씨가 일방적으로 떠들고, 나는 듣는 게 전부였던 관계. 연락처도 몰랐다. 회사 메신저로만 이어져 있던 사람.

그런데 빈 의자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아마 있었으면 지금쯤 회사 욕을 하고 있었을 거다. 새로 산 프라모델 얘기를 하고 있었을 거다. 시끄러웠을 거다. 나는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일을 했을 거고. 그 시끄러움이 없어지니까, 방이 너무 조용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형광등에서 나는 미세한 전기음까지 들렸다. 이 방에 이런 소리가 있었나 싶은 것들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말 많은 사람이 옆에 있다가 없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처음 알았다.


자리에 앉아서 배달로 시킨 밥을 먹었다.

혼자 도시락을 먹으며 생각했다. 맞은편 빈 의자를 보면서.


준노씨는 밥을 먹을 때도 늘 떠들었다. 어제 본 영상이 어쨌다느니, 팀장이 또 무슨 피드백을 줬다느니. 나는 그 말들을 절반쯤 흘려들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생각보다 나를 채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흘려들을 게 없어서, 밥알 씹는 소리만 들렸다.


준노씨는 어떻게 됐을까. 계약 종료라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지 나는 몰랐다. 일을 처음 해보는 사람이니까. 해고라는 건가. 잘렸다, 뭐 그런 건가? 그러면 준노씨는 지금 집에 있는 건가. 다른 곳에 갔을까. 프라모델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 한정판을 사려고 일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마지막 날 준노씨가 뭐라고 했는지 떠올려봤다.

별말 없었다. 평소랑 똑같았다. 회사 욕을 했고, 점심 메뉴가 별로라고 했고, 퇴근하면서 "내일 봐요"라고 했다.


내일 봐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끌려나가며 뭔가 말을 해주려 했다. 그게 뭘까.




오후에 팀장님한테서 화상 미팅 요청이 왔다.


화면 속 팀장님은 평소와 똑같았다. 단정한 셔츠, 깔끔한 배경, 정확한 발음. 입사하고 나서 네 번째 보는 얼굴인데 네 번 다 같은 구도, 같은 조명이었다.


사람이 화상으로 회의를 하면, 배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장소가 달라지거나, 소음이 있거나. 그런데 팀장님은 네 번 다 똑같았다. 액자 속 사진처럼.


"인후 씨, 테스트 일정 공유드릴게요. 이번 주부터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되실 거예요."

"네."

"AI 에코라는 새로운 제품이에요. 자세한 건 내일 문서로 전달드릴게요."


업무 얘기는 그게 다였다. 화면을 끄기 전에,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 혹시."

"네, 말씀하세요."

"강준노 씨는 어떻게 된 건가요."


팀장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잠깐의 멈춤도 없었다.


"계약이 종료된 분에 대해서는 안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종료된 건지가 궁금해서요. 어제까지 같이 일했는데 인사도 못 했고."

"인후 씨."


팀장이 화면 너머에서 나를 봤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인후 씨 업무에는 아무 영향 없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내가 물어본 건 그가 어떻게 됐냐는 거였는데, 돌아온 답은 내 업무에 영향이 없다는 거였다. 질문과 대답이 어긋나 있었다. 미팅이 끝나고 나서 곱씹어 보니 뭔가 조금 이상했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메신저를 다시 열어봤다.

팀 단체방에서 준노씨의 이름을 찾았지만 없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대화 내역을 올라가 봤다. 준노씨가 팀장 욕을 쏟아내던 메시지들, 회사 시스템에 불만을 적던 메시지들. 분명히 있었던 것들. 메일까지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회사의 모든 곳에서 준노씨라는 사람이 존재했던 흔적 자체가 지워져 있었다. 대화 흐름이 어색하게 뚝뚝 끊겨 있는데, 그 끊긴 자리들이 준노씨가 있던 자리였다.


화면을 한참 봤다. 계약이 종료되면 메시지도 삭제되는 건가. 그런 게 일반적인 건가. 일을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회사라는 게 원래 이런 곳인지, 이 회사가 이상한 건지,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회사라는 것은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떨어져서 혼자 하는 거. 요즘 시대에 그게 이상해요?’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준노씨는 그때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뭘 말하려고 했을까.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다가, 폰을 들어서 준노씨를 검색해 봤다.


강준노.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SNS를 찾아봤다. 없었다. 프라모델 커뮤니티도 뒤져봤다. 준노씨가 그렇게 좋아하던 한정판 모델 이름으로도 검색해 봤다. 닉네임을 모르니까 찾을 방법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준노씨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스물일곱. 프라모델을 좋아함. 말이 많음. 회사에 불만이 많음.

그게 전부였다.


1주 동안 많은 말을 들었는데, 정작 남은 정보가 이것밖에 없었다. 준노씨가 어디 사는지, 가족이 있는지, 회사 밖에서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연락할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검색 하나로 모든 정보다 다 나오는 이 시대에. 한 사람이 이렇게 깨끗하게 연락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내일 사라진다면. 계약이 종료되고, 메신저에서 지워지고, 검색해도 안 나오게 된다면. 나를 찾는 사람은 없겠지.

나는 폰을 내려놨다. 너무 멀리 간 생각이었다. 준노씨는 어딘가에서 잘 지내겠지.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하얀 방.

빈 의자는 그대로 있었다.


누가 치우지도 않았다. 의자 두 개, 테이블 하나. 처음 왔던 날과 똑같은 구성. 달라진 건 그 의자에 앉을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업무 가이드라인 문서가 와 있었다.


‘AI 에코 — 신규 테스터 안내’


내일부터 시작될 새 업무였다. 문서를 열어서 읽기 시작했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AI 대화 파트너. 사용자의 감정 상태에 반응하는 친밀감 시스템. 담당업무는 출시 전 심층 체험 및 리포트 작성.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AI 머신.


그 한 줄에서 잠깐 멈췄다. 외로운 사람들. 회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걸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테스트를, 나한테 맡겼다.


왜 나였을까. 면접에서 본부장이 물었던 게 떠올랐다. 외로움이 있냐고. 나는 그냥 언제나 같이 있다고 답했다. 그때는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그건 이 일에 딱 맞는 사람을 고르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외로운 사람을 위한 걸 만들려면, 외로움이 일상인 사람이 필요했을 테니까.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빈 의자.

하얀 벽.

창문 없는 방.


출근 2주째. 이 회사에서 내가 직접 본 사람은 준노씨 한 명이었다. 팀장도, 본부장도, 대표도. 다른 팀원들도 전부 화면 속에만 있었다. 유일하게 같은 공간에서 숨 쉬던 사람이 사라졌고, 그 사람의 흔적은 메신저에서 지워졌고, 연락할 방법은 없다.


나는 지금 이 회사에서.

혼자다.


사실 별일 아니다. 요즘 시대에 풀 재택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계약 종료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메시지 삭제는 정책일 수 있다. 전부 하나씩 보면 설명이 된다. 건물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 누군가는 어딘가에 있겠지.


근데 전부 합쳐놓으면,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한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는.



회사에서 나만 휴먼 4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AI>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