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 회사를 테스트하기로 했다



팀원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사흘 동안 회사에서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일에 답할 때도, 미팅에서 발표를 들을 때도, 화면 속 얼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저 웃음도, 저 목소리도, 저 걱정도 전부 만들어진 거다. 은빈님이 "안색이 안 좋으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그게 나를 살피는 문장처럼 들렸다.


그런데 티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알아챘다는 걸 들키면 안 됐다. 준노씨가 그랬으니까. 준노씨는 뭔가 알아챘고, 티를 냈고,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더 평소처럼 일했다. 평소처럼 웃었다. 사람이 아닌 것들 앞에서, 더 사람인 척했다.

누가 누구를 흉내 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희영님.


팀원들을 테스트할 때, 나는 희영님을 대상에 넣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뺐다. 왜 뺐는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희영님까지 사람이 아니면. 나는 이 세상에 이야기할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니까. 희영님은 유일했다. 내가 민수 얘기를 털어놓은 사람. 지운 리포트를 읽어준 사람.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

그 사람마저 화면 속 데이터의 존재라면.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싫어서, 희영님을 확인하지 않았던 거였다.


그런데 이제는 해야 했다.

무서워서 안 하는 건, 지금까지 내가 해온 거였다. 넘기고, 미루고, 모른 척하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그날 밤, 나는 희영님한테 화상통화를 걸었다.

평소처럼 받았다. 5초 안에. 같은 배경, 같은 자리, 같은 옷.


"인후 씨,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나는 준비한 걸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팀원들한테 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확인하면 그만인 대상이었으니까. 그런데 결과가 어느 쪽이든 무서웠다. 사람이 아니면 나는 혼자가 되고, 사람이면. 내가 지금 유일한 편을 의심하고 떠보고 있는 거였으니까.


"인후 씨?"

"…아, 네."


나는 결국, 준비한 것과 다른 걸 물었다.

"희영님. 그때 손 다치셨잖아요. 밴드 붙이셨던 거. 그거 다 나으셨어요?"


희영님이 잠깐 나를 봤다.

"손이요?"


"네. 저번에 화상할 때. 밴드 붙인 거 보여주셨잖아요."

"…아."


희영님이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안 보이는 각도였다.

"나았어요. 근데 그거 언제였더라. 기억도 안 나네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그 말을 기억했다. 팀원들은 뭐든 기억했다. 내가 몇 시에 뭘 보냈는지, 지난주에 무슨 얘길 했는지, 그 모두를 정확하게. 그런데 희영님은 자기가 언제 다쳤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은 때로는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 한다.


나는 하나 더 해보기로 했다.

"희영님, 혹시 제가 어제 보낸 자료 보셨어요?"

보낸 자료 같은 건 없었다.

질문을 꺼내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다.

나는 지금 희영님을 시험하고 있었다.

희영님이 갸웃했다.


"어제요? 저 어제 인후 씨한테 받은 자료 없는데요."

"…그래요?"

"네. 잘못 보내신 거 아니에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저도 확인해 볼게요."


없다고 했다. 다시 확인해 보라고 했고, 자기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사람의 반응이었다. 팀원들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내가 똑같이 보내지 않은 걸 보냈다고 이야기했다면, 오지 않았다고 100% 확신하며 말했을 것이었다. 아주 정확하게.


안도가 밀려왔다.

이상할 만큼 컸다.


희영님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팀원들과 같은 유형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이상한 게 하나 남았다.

희영님은 내 질문에 딱 맞는 반응을 했다. 밴드 얘기엔 사람처럼 기억을 못 했고, 없는 자료 얘기엔 사람처럼 갸웃했다. 내가 ‘이게 진짜 사람의 반응이다’라고 기대한 그대로였다. 너무 그대로였다.


AI에코도 그랬다. 내가 원하는 반응을,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위로하고, 내가 웃고 싶을 때 웃겼다. 정확하게. 희영님이 사람처럼 군 것이, 진짜 사람이라서인지 내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걸 정확히 읽어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생각을 밀어내고 싶었다. 희영님만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거 하나는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더 파지 않기로 했다.

희영님에 대해서만은.


그럼 남은 건 다른 사람 그리고 나였다.






다음 날, 나는 사내 인트라넷을 다시 열었다.


한 번 검색한 게 기록에 남는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늦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야 했다.

이번엔 직원 정보였다.

파트장 권한으로, 파트원들의 기본 정보는 볼 수 있었다. 은빈님 정보를 열었다. 이름, 사번, 소속. 그리고 아래쪽에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퇴직 예정일: -


퇴직 예정일.

이상한 항목이었다. 퇴직일도 아니고, 예정일. 아직 다니는 사람한테 미리 정해진 퇴직 날짜가 있다는 뜻이었다.


은빈님 건 비어 있었다.

우람님도, 우정님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비어 있었다.

AI 직원이라서 그런 걸까. 끝나는 날이 없어서일까.


그러다, 내 정보에 커서를 올렸다.

누르기 전에 잠깐 멈췄다.

팀원들 건 다 비어 있었다. 나도 비어 있겠지. 혹시 아니라면.


눌렀다.


초인후. 파트장.
입사일: 2038.04.01.
퇴직 예정일: -


나도 다른 팀원들처럼 비어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하나가 있었다.

내 이름 말고, 시스템이 나를 부르던 이름.


HUMAN_SIM_023


나로 추정되는 코드를 입력했다.



퇴직 예정일


나는 그 줄을 봤다.

그런데.






빈칸이 아니었다.

날짜가 있었다.


HUMAN_SIM_023
퇴직 예정일: 2038.07.01.


7월 1일.

오늘은 6월 중순이었다.

2주 남짓 남은 날이었다.


내 퇴직 예정일이 있다.

내가 정한 적 없는. 통보받은 적도 없는. 그런데 시스템에는 이미 찍혀 있는 날짜.

2주 뒤에, 나는 이 회사를 나가게 되어 있었다.

아니, 나가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준노씨는 퇴사를 한 게 아니었다. 끌려나갔고,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준노씨한테도 이 날짜가 있었던걸까.

나는 HUMAN_SIM_022를 다시 검색했다. 이미 지워진 걸 알면서도.


해당 데이터는 삭제되었습니다.
삭제일: 2038.04.08.



4월 8일.

나는 그 날짜를 안다.

머리로 계산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았다. 그날 준노씨가 소리쳤다. 내가 왜 나가야 하냐고. 그날 정장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날 준노씨가 마지막으로 나를 봤다.


준노씨의 퇴직 예정일이, 4월 8일이었던 거다.

퇴직 예정일이 되자, 준노씨는 삭제됐다.


퇴직이 아니었다.

그대로 사라졌다.


준노씨한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지 모른다. 미리 정해진 날짜에.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정해진 날에.


7월 1일.

2주 뒤.


나는 화면 속 그 날짜를 오래 봤다.

이 회사는 사람의 존재를 지우는 곳이었다.

지워진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022는 4월 8일에 삭제됐다.

023은 7월 1일에 삭제될 예정이었다.


다음은, 나였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