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왜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을까
요즘 트렌드를 보다 보면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숏폼이 대세가 된 사이 한 시간 넘는 인터뷰가 인기를 끌고, 맵고 달고 자극적인 맛을 즐기면서도 저당·저염과 혈당 관리를 챙깁니다. 열심히 사는 ‘갓생’을 외치다가도, ‘욜로(YOLO)’와 '걍생'처럼 지금을 즐기며 흘러가는 삶을 택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흐름이 커지면 그와 다른 선택이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섞여 새로운 취향이 되고,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도 없는 단어가 어느새 모두의 입에 오르기도 하죠. 이쯤 되면 트렌드의 세계는 정말 종잡을 수 없다고 느껴집니다.
모든 유행에 꼭 반대되는 유행이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이나 경제 환경의 변화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작은 커뮤니티의 장난이나 우연한 밈이 예상 밖으로 커지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마라탕 vs 저속노화’ ‘숏폼 vs 롱폼’ 등 정반대의 방향성이 차례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요? 모두가 좋아하기 시작하면 괜히 마음이 식고, 좋아하던 것도 반복되면 다른 것을 찾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곤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또 유행에 함께 올라타고 싶으면서도, 그 안에서는 나만의 취향을 지키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마케터로서 우리는 이 흐름에서 무엇을 읽고, 다음 움직임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요? 끝까지 읽어 보신다면 그 실마리를 함께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1. 유행을 따르면서도, 모두와 같아지고 싶지는 않은 마음?
유행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콘텐츠를 찾아보고, 화제가 된 음식을 먹어보고, 모두가 사용하는 표현을 따라 쓰기도 하죠. 그래야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나도 같은 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유행을 즐기더라도 모두와 완전히 똑같아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기 있는 브랜드를 선택한 뒤 흔하지 않은 색상을 고르고,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면서도 굿즈를 꾸미는 방식에는 자신의 취향을 담죠. 이는 유행에는 함께 올라타되, 그 안에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최적 차별화 이론(Optimal Distinctiveness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에게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와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싶은 욕구가 함께 있으며, 우리는 두 욕구가 적절히 충족되는 지점을 찾습니다.

최적 차별화 이론(Optimal Distinctiveness Theory) 그래서 뭔데?
집단이 너무 작고 배타적이면 소속 욕구가 커지고, 모두를 포함할 만큼 너무 넓어지면 구별 욕구가 커진다.
두 욕구가 적절히 만나는 지점에서 정체성에 대한 만족이 높아진다는 모형.
집단의 포괄성 | 소속되고 싶은 욕구 | 구별되고 싶은 욕구 |
|---|---|---|
너무 낮음 | 높음 | 낮음 |
중간 수준 | 두 욕구가 균형을 이룸 | 두 욕구가 균형을 이룸 |
너무 높음 | 낮음 | 높음 |
실제 소비자 선택을 다룬 네 차례의 연구(Chan, Berger, & Van Boven, 2012)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났는데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여주는 요소에서는 구성원과 비슷한 선택을 하면서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에서는 덜 대중적인 선택지를 고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같은 브랜드를 선택하되 색상은 다르게 고르는 식이죠. 연구진은 이를 ‘알아볼 수는 있지만 똑같지는 않은 상태(identifiable but not identical)’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유행이 너무 커지면 이 균형이 깨지기도 합니다.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게에 긴 줄이 생기고, 오랫동안 좋아했던 아이돌이나 브랜드가 누구나 아는 대상이 되면 괜히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죠. 대상 자체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그 취향이 나를 설명해주는 힘은 약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의 선택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해당 상품이나 취향의 매력을 낮게 느끼는 현상은 스노브 효과(Snob Effect)와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희소했던 것이 대중화되면서 특별함이 줄어들고, ‘나만의 취향’이라고 여겼던 선택이 더 이상 나를 구별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유행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유행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은 지키고 싶어 합니다. 함께 좋아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같아지고 싶지는 않은 마음입니다.
하나의 유행이 크게 확산된 뒤 정반대처럼 보이는 새로운 취향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이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흐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피로감을 느끼거나, 자연스럽게 다른 선택지에 눈이 가기도 합니다. 꼭 의식적으로 차별화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방향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거나 새롭게 다가오는 거죠.
2. 좋아하던 것도 반복되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잠시 다른 메뉴를 먹고 싶어집니다. 처음에는 신선했던 콘텐츠 형식도 비슷한 제목과 편집이 계속 이어지면 쉽게 예상되기 시작하고요.
소비자 연구에서는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즐거움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포화(satiation)라고 설명합니다. McAlister가 제시한 ‘동적 속성 포화 모델’에 따르면 소비자의 선택은 매번 독립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전에 무엇을 얼마나 소비했는지가 다음 선택에 영향을 주고, 특정한 속성을 충분히 경험한 뒤에는 다른 특징을 가진 선택지가 끌릴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다양성 추구(variety-seeking)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좋아했던 것을 완전히 싫어하게 됐다기보다는, 반복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다른 메뉴와 브랜드, 콘텐츠 형식을 선택하는 행동입니다. 실제로 소비자의 다양성 추구는 지루함을 줄이고 포화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연구돼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반복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건데요. 네 차례의 실험에서는 반복을 ‘충성’과 연결하도록 자극받은 사람들은 익숙한 선택을 이어가는 경향을 보였고, 반복을 ‘지루함’과 연결하도록 자극받은 사람들은 포화를 더 크게 느끼며 새로운 선택지를 찾았다고 해요. 더 놀라운 점은, 이 과정은 참여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유행이 오래 이어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그 유행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아니죠. 어떤 사람은 익숙함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비슷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새로운 것을 찾게 됩니다.
3. 하나의 욕구가 커질수록, 반대편의 욕구도 선명해진다
하나의 방식이 크게 유행하면 사람들은 그 방식에 빠르게 익숙해집니다. 동시에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피로와 아쉬움도 쌓이기 시작하죠. 빠른 콘텐츠가 넘치면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성취를 계속 증명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그리워지는 것처럼요.
이때 유행의 반대편에 있던 선택지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존 흐름을 무조건 거부해서가 아니라, 그 흐름이 채우지 못한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늘 기존 유행의 대척점에서 등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빠른 것과 느린 것, 성취와 휴식, 자극과 절제는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한 사람의 일상 안에서 함께 소비되기도 합니다.
3-1. 더 빠르게 볼수록,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숏폼이 일상적인 콘텐츠 형식이 되면서 정보와 재미를 얻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핵심만 짧게 잘라낸 영상이 많아질수록 이야기의 맥락과 한 사람의 생각을 오래 따라갈 기회는 줄어들었죠. 트렌드모니터의 2025년 조사에서 롱폼 시청 경험률은 78.4%였고, 응답자의 80.3%는 숏폼과 롱폼이 각자의 영역에서 계속 소비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핑계고》나 《도시여자대피소》처럼 긴 대화가 중심인 콘텐츠에서는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과 생각이 바뀌는 과정까지 볼 수 있습니다. ‘텍스트힙’ 역시 빠르게 요약된 정보 사이에서 오래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을 다시 매력적으로 만들었고요. 숏폼이 속도를 높였다면, 그 과정에서 부족해진 맥락과 몰입이 롱폼과 텍스트를 다시 불러낸 것입니다.
3-2. 더 많이 해낼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해진다
‘갓생’이 유행하면서 운동과 공부, 수면까지 기록하고 인증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을 주는 한편,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을 남기기도 했죠. 쉬는 시간마저 관리와 평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 피로 속에서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와 웰니스가 떠올랐죠. 특별한 성취가 없어도 무사히 보낸 하루를 인정하고, 수면과 휴식, 스트레스 관리에 관심을 두는 흐름인데요.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커질수록, 모든 시간을 결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회복의 시간이 더 절실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3-3. 더 강하게 즐길수록, 몸을 관리하고 싶어진다
마라탕과 불닭, 탕후루처럼 맵고 달고 강한 맛은 짧은 시간 안에 확실한 즐거움을 줍니다. 강한 맛을 찾는 문화가 커지는 동안 당과 나트륨, 체중과 혈당에 관한 걱정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저당·저염 제품과 혈당 관리, 저속노화 식단이 또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포기하자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즐긴 만큼 부담을 줄이고 싶다는 욕구에 가까운데요. 강한 즐거움이 커질수록, 그 즐거움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절제와 관리도 함께 중요해진 것입니다.
3-4. 더 매끄럽게 만들어질수록, 사람의 흔적을 찾게 된다
AI와 TTS, 자동 편집 도구 덕분에 누구나 빠르게 매끄러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반면 비슷한 문장과 말투, 익숙한 구성의 결과물도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인스타 릴스 '템플릿'이 생기고 유행하는 포맷이 흔해질수록 편집만으로는 누가 만든 콘텐츠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고요.

그래서 실제 경험에서 나온 구체적인 이야기와 실수, 망설임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죠. 긴 인터뷰와 솔직한 개인 채널,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오가는 오프라인 경험이 관심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완벽하게 정돈된 결과물이 많아질수록, 그 안에 남은 사람의 판단과 흔적이 더 희소해지고 있어요.
4. 마케터는 유행의 반대편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모든 트렌드를 안다고 해서 사람들의 다음 선택을 정확히 맞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유행을 보고도 좋아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고, 누군가는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마케터가 트렌드를 봐야 하는 이유는, 트렌드가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는 언어와 맥락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에 웃는지, 무엇을 촌스럽다고 느끼는지, 어떤 장면을 굳이 저장하고 공유하는지를 알아야 사람들과 엇박자 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유행하는 형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숏폼이 뜬다고 모두 짧은 영상을 만들고, 특정 말투가 유행한다고 브랜드까지 똑같이 따라 하면 금세 어색해집니다. 어떤 밈은 재미있어도 우리 브랜드의 톤과 맞지 않을 수 있고,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신뢰를 깎을 수도 있어요. 단순히 ‘지금 뜬다’는 이유로 가져오기 전에, 그 형식 아래에 어떤 재미와 욕구가 있는지, 우리 브랜드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빠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유행의 반대편도 함께 봐야 합니다. 지금 잘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이 슬슬 무엇을 뻔하다고 느끼는지, 어떤 부분에서 불편을 말하기 시작했는지 살펴보는 거예요. 비슷한 콘텐츠가 쏟아질수록 이전에는 평범했던 형식이 오히려 새롭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가끔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것들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SNS를 내리다가 “이게 진짜 무슨 뜻이야?”, “이게 왜 웃긴 거지?” 싶은 영상이나 챌린지를 마주칠 때가 있는데요. 처음에는 한두 계정에서만 보이던 말이 며칠 뒤 여기저기에서 반복되고, 별 의미 없어 보였던 장면이 어느새 하나의 밈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유행이 거대한 사회 변화나 뚜렷한 욕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커뮤니티의 장난이나 말실수, 우연히 찍힌 장면이 알고리즘을 타면서 갑자기 커지기도 하죠. 이유를 아직 설명할 수 없더라도, 전에 없던 것이 자꾸 보인다면 한 번쯤 멈춰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마케터가 살펴봐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어떤 언어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크게 유행한 흐름에서 무엇이 뻔해지거나 빠져 있는가
아직 뜻도 이름도 분명하지 않은 낯선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는가
이미 이름이 붙은 트렌드만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움직임을 뒤늦게 발견하기 쉽죠. 지금 유행하는 것뿐 아니라 그 반대편, 그리고 아직 설명되지 않은 낯선 움직임까지 함께 바라봐야 하는 이유예요.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빠르게 따라가는 능력이 아니라, 아직 작고 이상해 보이는 변화의 시작을 알아보는 시선이 아닐까요?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 속에서 다음 움직임을 조금 더 먼저 발견하고 싶은 분들께, 이 글이 가벼운 인사이트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