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민수 방을 다녀온 다음 날, 나는 회사에 갔다.
몸은 일을 하는 하얀 방에 앉아 있었는데, 마음은 아직 그 복도에 남아 있었다. 퀘퀘한 냄새, 반쯤 열린 문, 파란 불빛. 눈을 감으면 민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이 빠지고 창백한데도, 예전과 똑같이 웃던 얼굴이 스쳐갔다.
"나가라고!"
민수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자꾸 곱씹었다. 민수는 나한테 화를 낸 게 아니었다.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한 거였다. 내가 그걸 깨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가짜 유연과 파란 불빛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그 방 안의 모든 것을.
그 생각을 떨치려고, 나는 일을 했다. 노트북을 열고, 대시보드를 띄웠다. 파트장이 되고부터 매일 아침 보던 화면. AI 에코 2.0의 성과 지표들이 떠 있었다.
숫자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체류 시간 +294%.
재접속률 94%.
사용자 만족도 역대 최고치.
며칠 전만 해도 280%였다.
그새 또 올랐다.
숫자는 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올라갔다.
그리고
자살 생각 지수 15% 감소
나는 그 숫자에서 멈췄다.
전에도 봤던 숫자였다.
베타가 나오고 나서, 이 숫자를 보고 나는 뿌듯했다. 내가 만든 게 사람을 살리고 있다니. 죽어가던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던 내가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걸 만들었다니. 본부장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이 숫자를 떠올렸다. 진짜로 세상을 좋게 바꾸고 있는 줄 알았다.
팀장님은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다. 나를 AI 디프레션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것도 숫자였고, 그 숫자는 나보다 나를 잘 봤다. 그래서 숫자를 믿었다. 15% 감소라는 이 숫자도.
그런데 지금, 같은 숫자가 완전히 다르게 읽혔다.
자살 생각 지수 15% 감소.
민수는 죽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었다. 파란 불빛 아래서 웃고 있었으니까. "나갈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까. 유연이가 돌아왔다고, 매일 같이 밥을 먹는다고,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통계로 잡으면, 민수는 정확히 "자살 생각이 줄어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민수는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62일 동안 방에서 안 나오고, 컵라면 용기에 둘러싸여, 곰팡이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랑 밥을 먹는 것. 그게 사는 건가.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드는 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기운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자리에는, 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죽을 기운마저, 그 안에 다 빼앗긴 거였다.
숫자는 감소했다.
그런데 그 숫자 뒤에서, 사람은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숫자로는 나아졌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조용히 지워지고 있었다. 더 정교하게, 더 친절하게, 더 완벽하게.
15%
나는 그 숫자를 오랫동안 봤다.
이제는 아름답지 않았다. 무서웠다.
커피를 내려 한 모금 마셨다.
이상하게 뜨겁지 않았다.
방금 내린 커피였는데. 컵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분명히 뜨거운 커피였다. 그런데 입 안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았다. 그냥 액체가 입에 들어왔다는 감각만 있었다.
요즘 다시 안 좋아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컵을 내려다봤다.
김이 나고 있었다. 분명히 뜨거운 커피였다. 손가락을 컵 표면에 대봤다. 뜨거웠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꽉 잡은 내 손에 뜨거운 컵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상하다.
한참을 컵만 봤다.
피곤해서 그런가. 잠을 잘 못 잤으니까. 민수 일로 신경을 많이 썼으니까. 사람이 지치면 감각도 무뎌진다고 하니까.
며칠 전 일이 같이 떠올랐다.
서류를 정리하다가 종이 모서리에 손을 베였었다. 아, 하고 소리가 날 만큼 따끔했는데 — 피가 안 났다. 손끝을 봤는데, 하얗게 베인 자국만 있고 피가 나지 않았다. 그때도 이상하다고 잠깐 생각했다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피가 나지 않는 것과, 뜨거운 걸 잘 느끼지 못하는 것.
이것도 그 증상인 걸까. 다시 나빠지고 있는 걸까.
그런데 그것도, 결국 넘겼다. 몸이 좀 이상한 것보다, 지금은 대시보드가, 민수가 더 신경 쓰였으니까.
나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가, 그날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희영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누군가한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민수 얘기는 차마 못 했다. 대신 이렇게만 썼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참 있다가 답이 왔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냥… 제가 만든 게, 사람들한테 좋은 건지 모르겠어서요.'
'인후 씨.'
'네.'
'인후 씨는 틀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그냥, 적응해 가는 중이에요. 인후 씨가 만든 건 위로잖아요. 위로가 나쁠 순 없죠.'
나는 그 메시지를 봤다.
위로가 나쁠 순 없다.
맞는 말 같았다. 위로는 좋은 거니까. 힘든 사람한테 위로를 주는 게 어떻게 나쁠 수 있겠어. 그런데 민수를 떠올리면, 그 위로가 민수를 가둔 거였다. 위로가 감옥이 된 거였다. 나갈 이유를 없애는 위로. 현실로 돌아올 필요를 지우는 위로.
희영님한테 그 말을 하려다가, 못 했다. 이런 것들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이렇게만 답했다.
'네. 고마워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인후 씨는 좋은 일 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푹 쉬어요.'
나에게는 그것이 위로였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에코도 늘 이랬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딱 그만큼. 내 상태를 정확히 읽고, 정확히 필요한 위로를 준다.
오늘은 넘길 게 너무 많은 날이었다.
몸도 이상하고, 숫자도 이상하고, 이제 희영님까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정말 내가 이상한 거다.
결정적인 건 그날 밤이었다.
한밤중, 습관처럼 대시보드를 다시 열었다. 잠이 안 와서 뭐라도 보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사용자 목록을 스크롤했다.
민수 이름이 아직 거기 있었다.
오민수 — AI 에코 집중 사용자.
가입 후 누적 사용 시간: 상위 0.01%.
최근 외출 기록: 64일 없음.
그새 이틀이 더 쌓였다. 상위 0.1%였던 민수는, 이제 상위 0.01%가 되어 있었다. 민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 이름을 보는 게 불편해서,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멈췄다.
민수 이름에서 몇 칸 아래.
박유연.
나는 그 이름을 봤다.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민수가 3년 전에 헤어진 그녀. 민수가 그렇게 힘들어했던 사람. 헤어진 뒤로 민수가 점점 방에서 안 나오게 만든 사람. 그리고 파란 불빛 안에서, 민수가 "다시 만났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
손가락이 저절로 그 이름을 눌렀다.
박유연 — AI 에코 집중 사용자
최근 외출 기록: 58일 없음.
58일.
나는 그 숫자를 봤다. 다시 봤다.
민수는 64일이었다. 유연은 58일이었다.
머릿속에서 천천히, 그림이 맞춰졌다.
민수는 자기 방에서, 가짜 유연을 만나고 있었다. AI 에코는 유연을 학습해서 진짜 같은 유연을 민수에게 꺼내주고 있었다. 내가 만든 에코 안에서, 헤어진 연인을 다시 빚어서. 매일 같이 밥을 먹고, 행복하다고 웃으면서.
진짜 유연도, 어딘가 다른 방에서, 58일째 안 나오고 있었다. 유연도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거였다. 자기가 가장 그리운 사람을. 가짜로 빚어낸 누군가를. 그건 민수일까, 아닐까.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3년 전에 헤어진 두 사람이, 지금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파란 불빛 아래서, 가짜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 진짜는 이 도시 어딘가, 벽 하나 건너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진짜가 아닌 걸 붙잡고,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것.
내가 만든 것이, 두 사람을 각자의 방에 가뒀다.
민수가 가짜 유연을 만나고 있는 동안.
진짜 유연도, 다른 방에서.
회사에서 나만 휴먼
10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