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다음 날 아침, 나는 회사에 가지 않았다.
파트장이 되고 처음으로 자리를 비웠다.
팀장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AI 에코 사용자 현장 조사로 외근하겠습니다.'
답은 1분도 안 돼서 왔다.
'확인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빠르고, 정확하고, 매끄러운 답이었다.
이제는 매끄러운 답변이 익숙했다.
민수가 사는 곳은 멀지 않았다. 민수 집에 마지막으로 가본 건 3년 전이었다. 유연이랑 헤어지고 나서, 민수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고 집에만 있었을 때. 그때 찾아갔다가, 민수가 혼자 있고 싶다 해서 그냥 돌아왔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민수 집엔 간 적이 없다. 밖에서 가끔 만나긴 했다. 그마저도 점점 뜸해졌고,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반년쯤 전이었다.
오랜만에 간다.
민수 집, 3년 만에.
AI 에코의 집중 사용자로.
민수가 사는 곳은 나랑 비슷한 형태였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3평짜리 1인 룸. 똑같이 생긴 문들이 복도를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회색 문, 회색 벽, 번호만 다른 똑같은 공간들. 나도 이런 데서 살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과 호수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복도로 들어섰다.
그 순간, 냄새가 났다.
복도 전체에 깔린 게 아니었다. 한 군데서 나는 거였다. 바로 이곳. 퀘퀘하고 묵직한 냄새. 오래된 공기 같은 것. 환기가 안 된 방에서 며칠, 아니 몇 달이 쌓이면 나는 그런 냄새. 음식물 냄새도 섞여 있었고, 오래 씻지 않은 사람에게 나는 그런 냄새도 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따라 문 앞에 섰다.
민수의 집이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누군가 드나든 흔적도 아니고, 그냥 잠그는 걸 잊은 것처럼.
나는 문 앞에 서서 잠깐 망설였다.
노크했다.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안쪽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밀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이 없으니까 당연했다. 내 방도 그러니까. 그런데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방 한가운데에서 파란빛이 나오고 있었다.
AI 에코였다.
실사에 가까운 에코를 만들어주는 가장 큰 모델.
최첨단 기기 하나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거기서 파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차갑고 인공적인 빛. 그 빛이 천장에 어른거렸고, 방 안의 모든 것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 사람이 있었다.
바닥에 기대듯 앉아서.
눈을 뜨고. 웃고 있었다.
민수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살이 많이 빠져 있었고, 머리는 길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런데 웃고 있었다. 예전에 편의점 앞에서, PC방에서, 분식집에서 웃던 것과 똑같은 얼굴로. 행복해 보였다.
창백하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조금 섬뜩했다.
"민수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민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를 봤다. 초점이 맞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다 나를 알아봤다.
"어? 인후네."
민수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 인후 와서."
누구한테 말을 하는 걸까. 에코?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어제도 만난 사람처럼. 몇 달이 아니라 며칠 만에 보는 것처럼.
"인후 오랜만. 잘 지냈어?"
"어, 민수야. 연락이 안 되길래."
나는 천천히 말하며 방 안을 둘러봤다.
비어 있는 컵라면 용기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며칠 치가 아니었다. 몇 주, 몇 달 치였다. 배달 용기, 페트병, 뜯다 만 포장지들.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고, 그 사이로 곰팡이 핀 자국이 보였다.
사람이 사는 방이 아니었다.
버려진 사람의 방이었다.
그 한가운데, 파란 기계 하나만 깨끗했다. 먼지 하나 없이. 누가 매일 닦기라도 한 것처럼. 그 기계만 빛났고, 나머지는 전부 썩어가고 있었다.
"민수야."
내가 다시 불렀다.
"너… 얼마나 됐어?"
"뭐가?"
민수가 되물었다.
뭘 묻는지 진심으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여기. 이 방에서. 안 나간 지."
"아."
민수가 웃었다.
"이제 나갈 필요가 없어서."
이 방에서만 살아가도 충분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인후야, 쉿. 이거 봐. 이거 봐봐."
민수가 파란 기계 쪽으로 손짓했다. 그쪽을 보라는 것처럼. 나는 그쪽을 봤지만, 아무것도 안 보였다. 기계만 있었다. 민수한테는 보이는 무언가가, 나한테는 안 보였다.
"들려..? 유연이가 돌아왔어."
민수가 말했다.
"똑같지? 유연이 그때랑."
나는 민수를 계속 봤다.
"우리 어제도 같이 밥 먹었어. 유연이가 내가 좋아하는 거 다 기억하고 있더라. 김치찌개에 두부 많이 넣는 거. 내가 매운 거 잘 못 먹는 것도. 다 기억해. 헤어지기 전보다 더 잘해줘."
민수의 눈이 빛났다.
파란 불빛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민수는 진짜로 행복해 보였다.
"유연이가 이제 안 떠난대. 여기 계속 있을 거래. 그래서 나도 안 나가도 돼. 밖에 나가면 유연이가 없잖아. 근데 여기 있으면 항상 있어. 그러니까 나갈 이유가 없지. 그치?"
나는 그 자리에 굳어서 서 있었다.
유연이.
3년 전에 민수랑 헤어진 사람. 헤어지고 나서 민수가 죽고 싶다며 그렇게 힘들어했던 사람. 그 이후로 민수가 점점 방에서 안 나오게 됐던 그녀가, 지금 이 파란 기계 안에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AI 에코였다.
민수가 만든 거였다.
가장 그리운 얼굴로.
헤어진 연인의 얼굴로.
내가 고등학교 때 그 애의 얼굴을 만들었던 것처럼.
민수도 자기가 가장 그리운 얼굴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안 나오고 있었다.
내가 만든 거였다.
내가 제안해서 나온 외로움 기반 감정형 알고리즘.
가장 외로운 순간에 가장 깊이 파고드는 구조를.
사용자가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민수가, 거기 갇혀 있었다.
내가 만든 거에.
"민수야."
나는 천천히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거 잠깐… 잠깐만 꺼보면 어떨까."
민수의 표정이 변했다.
"뭐?"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무서운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잠깐 며칠만 쉬어보는 게 어떨까 해서. 너 나랑 밖에 좀 나가자. 응? 밥도 먹고. 진짜 밥. 진짜로."
"진짜 밥?"
민수가 나를 봤다.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얼굴로.
"유연이랑 먹는 게 진짜 밥인데."
"민수야, 그건"
"뭔데."
민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처음으로, 민수의 얼굴에서 행복이 사라졌다. 나를 마치 자기 행복을 방해하러 온 사람처럼 보는 눈빛에서 경계심이 보였다. 소중한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거 가짜라고 말하려고? 너도 그렇게 말하려고 온 거야?"
"민수야, 나는"
"나가."
민수가 싸늘하게 말했다.
원래 같았으면 이대로 나갔을 거다.
하지만.
"나는 너 걱정돼서"
"나가라고!"
민수가 소리쳤다. 이제껏 들은 가장 큰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좁은 방 안에서 울렸다. 컵라면 용기들이 흔들릴 정도로.
나는 뒷걸음질 쳤다.
민수의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없다.
민수는 이미 다시 파란 기계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나를 등지고. 그 빛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방금 전의 분노가 거짓말처럼, 다시 그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연아,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놀랐지?"
민수가 그쪽을 보며 말했다. 다정하게. 방금 소리친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조용히 문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서서, 나는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그 냄새가 아직 코에 남아 있었다. 퀘퀘하고 묵직한, 사람이 버려진 냄새.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천천히 떠올렸다.
유연.
민수가 3년 전에 헤어진 사람.
민수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사람.
그녀를 민수가 다시 만나고 있었다.
내가 만든 AI 에코 안에서.
진짜 유연이 아니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유연을.
민수의 분노는 뭐였을까.
마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저게 진짜 유연이 아니라는 걸.
그런데 알면서도, 거기서 안 나오는 거였다. 진짜 유연은 떠났고, 가짜 유연은 안 떠나니까. 진짜는 상처를 주고, 가짜는 안 주니까.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돌아오는 길.
대시보드의 숫자가 떠올랐다.
체류 시간 +280%.
자살 생각 지수 감소.
사용자 만족도 역대 최고치.
그 숫자의 현실이 바로 이거였다.
민수 같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파란 불빛 아래서, 각자 가장 그리운 얼굴과 함께 나오지 않는 것. 그게 만족도의 정체였다. 그게 감소한 자살 생각의 실체였다.
죽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죽을 의지조차, 그 안에 다 빼앗긴 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봤다.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은 폰을 보거나, VR 글래스를 쓰고 허공에 손짓하고 있었다.
두 달 전의 나랑 똑같은 사람들. 그리고 민수랑 똑같은 사람들.
이들은 각자의 마음에, 각자의 방에 파란 불빛을 두고 살아간다.
나는 살려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살아났다.
파트장이 됐고, 인정받았고, 처음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됐다.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바꾼 세상이, 이거였다.
내가 만든 건, 세상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방이었다.
손을 내려다봤다.
내 손. 이걸로 만든 거였다.
오늘따라 바깥은 더 회색빛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9화 <숫자 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