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30~40편의 글을 읽습니다. 저도 글을 씁니다. 위픽레터에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관련 기사나 포스팅, 잔뜩 모아둔 데이터와 자료들을 AI에 넣습니다. 초안을 받아 제가 고쳐 쓸 요량이었습니다.

받은 초안을 읽어보면 딱히 손댈 곳이 없어 보입니다. 그대로 발행했습니다. AI 특유의 엠 대시(긴 하이픈)나 어색한 부분은 나중에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그럴듯해서 출처를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처음과 끝의 맥락이 납득되는지 꼼꼼히 살피지 않았습니다.

AI 글쓰기, 초안을 그대로 발행했습니다

우선순위가 앞선다고 생각한 다른 일(대부분 이걸 왜 계속 반복해야 하나? 싶은 일들)을 모두 마치고 나서 글을 다시 열었습니다. 어색한 단어나 표현은 그럭저럭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거나 설명을 고치려니 일이 커졌습니다. 책상만 옮기려다가 방 안의 가구를 전부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럴 바엔 처음부터 글을 다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원상 복구 후 그대로 두었습니다.

책상만 옮기려다가 방 안의 가구를 전부 옮겨야 하는 상황

이렇게 OpenAI의 매출에 기여하는 경쟁사 글과 똑같은 또 하나의 콘텐츠가 완성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완성된 글은 ChatGPT에 자세히 프롬프팅해 나올 법한 답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고 빈틈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면 그 흐름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말하고자 했던 요점은 사라졌고, 나조차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었고, 왜 이 이야기를 또 하나의 글로 쓰려고 하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킥'이 없습니다.

문제는 멍청한 AI 모델일까요? 저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AI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거기서 생각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글쓴이의 책임입니다. AI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주제로 세 편, 여러분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 가보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AI가 쓴 초안을 거의 그대로 발행한 경험을 돌아봅니다. 일종의 성찰인 것이죠!

글 마지막에 마케터 여러분들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여러분의 답을 읽고, 글을 쓰며 직접 생각한 것과 고객(독자)이 계속 읽고 싶은 글을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 글에서는 그렇게 모인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AI와 함께 글을 쓸 때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확인할 일을 작업 순서에 맞춰 정리하겠습니다.

Clay의 AI 글쓰기 지침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Clay 공동창업자 바룬 아난드(Varun Anand)가 링크드인에 올린 포스팅을 읽고 나서입니다.

위픽레터를 큐레이션하기 위해 많은 글을 읽게 됩니다. 마케팅을 위한 글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서 여러 가지 목적의 글을 읽게 됩니다. 이메일이나 보고서, 상세 페이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해서요. 형식은 완벽한 듯한데 애써 집중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또한, 글을 쓸 때도 '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며 현타가 오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직 한글 못 뗀 아기가 영어 유치원에 입학해서 한국어도 영어도 못하게 되는 0개 국어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

Clay(클레이)는 영업과 마케팅팀이 AI로 잠재 고객을 조사하고 고객 데이터를 정리하도록 돕는 플랫폼입니다. 사내에서 만들어진 AI 글쓰기 지침이 외부로도 퍼져나가고 있더군요. 우리도 함께 참고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포스팅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Clay 공동창업자 바룬 아난드(Varun Anand)가 링크드인에 올린 포스팅

Clay에서 공식 AI 글쓰기 지침 링크드인 캡쳐.png

Clay에서 공식 AI 글쓰기 지침을 도입했습니다. 이 지침을 작성한 엔지니어링팀의 소피 앨퍼트(Sophie Alpert)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엔지니어링팀에서만 사용했지만, 다른 팀에서도 유용하다는 반응이 나와 전사로 확대했습니다. 지침의 바탕이 되는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생각과 문장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문서를 공유하기 전에, 문서 전체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확인할 책임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2. 글쓰기는 생각하는 일입니다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들이면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건너뛰면 그 주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마무리하게 됩니다.

3. 문서를 읽는 시간보다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짧은 프롬프트로 긴 문서를 생성하고 독자에게 전부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독자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독자도 원한다면 직접 ChatGPT에 물어볼 수 있습니다.

4. 길다고 더 좋은 글은 아닙니다

AI를 쓰면 긴 문서를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AI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 문장으로 분량을 늘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짧은 프롬프트로 문서를 만들고 있다면, 차라리 그 프롬프트를 공유하는 편이 나을지 생각해 보세요.
아래에서 지침 전문을 읽고 가져다 쓰셔도 좋습니다. 이 지침 덕분에 우리 모두 조금 더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바룬 아난드, Clay 공동창업자 · 링크드인 포스팅 번역
Clay의 AI 글쓰기 지침 전문 읽기

최근에 글을 쓸 때 주제를 고르고 참고 자료를 넣는 일은 물론 제가 했습니다. 초안의 문장과 구성부터 AI가 만들었습니다. 빠르게 읽었을 때는 그럭저럭 제가 하려던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글을 고치려고 다시 읽고서야 어떤 설명을 어디에 배치하고, 무엇을 빼고, 어디에서 결론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제야 생각하게 된 거죠.

Clay의 지침은 글을 쓰며 생각의 순서와 강조할 내용을 정하는 과정 자체가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문서를 완성하는 일보다, 쓰면서 충분히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글쓰기는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생각하는 것을 발행한 뒤로 미뤘습니다.

글이 완성되었으니 나중에 손보면 된다고 간과했던 일이, 사실은 글을 쓰는 일의 핵심이었습니다.

기억해 보니 2025년 1월, 폴 그레이엄의 글을 읽고 「글을 쓰거나 혹은 죽거나: 마케터의 글쓰기」 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다 정리했다고 생각해도 막상 글로 쓰기 시작하는 일은 다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며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고, 사고력이 전부가 될 것이므로 마케터는 글을 쓰기로 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차! 싶습니다. 이후 1년이나 지난 지금 AI 모델이 완벽해지면서, 이 글에서 말한 핵심인 '생각하는 것'마저 통째로 위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글을 쓰는 이유는 주제에 관한 정보를 정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글도 있습니다.) 글쓴이의 생각과 판단, 의도와 취향이 녹아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겪었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표현해야 합니다.

지금 이 글도 AI와 함께 쓰고 있습니다. 참고할 자료를 확인하고, 구성과 문장을 읽습니다. 제 경험을 설명하다가 질문을 받으면 더 생각해 확장하고 다른 데서 알게 된 정보와 나의 가설들을 연결합니다. 한국어로 읽기에 어색한 문장은 고치고, 접속사는 줄여달라고 했습니다.

답은 AI가 줍니다. 어떤 질문을 할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최근에 쓰는 양이 평소보다 많이 늘었다면 글 하나를 다시 열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글인가요?

위픽레터에는 읽는 마케터와 쓰는 마케터가 함께 있습니다. 다음 글을 쓰기 위해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최근 읽은 글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AI와 함께 글을 쓴 적이 있다면 무엇을 직접 판단했는지 궁금합니다. AI가 더 잘 쓰게 되고 모두 똑같이 글을 잘 쓸 수 있어도 고객이 계속 읽게 될 글은 무엇일까요? 마케터가 써야 할 글은 어떤 글일까요? 제가 놓친 질문도 발견하고 싶습니다.

다음 편을 함께 씁니다

여러분은 AI가 쓴 초안을
어디까지 고치나요?

그대로 써도 만족했던 경험,
고치려다 포기했던 경험 모두 궁금합니다.

여러분의 답을 읽고, 다음 편에서 마케터가 직접 판단한 일과 계속 읽고 싶은 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 경험 보태기

익명 참여 · AI로 글을 써본 적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읽은 글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