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릭터 IP를 만들고 있거나, 브랜드 캐릭터를 키우고 싶은 마케터
- 캐릭터 콜라보와 굿즈를 기획하는 브랜드 마케터
- 팬덤을 만들고 싶은 콘텐츠 마케터
- 좋아하는 캐릭터가 왜 좋은지 궁금했던 마케터
이전 글 「귀여움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소비 코드」에서는 왜 귀여운 걸 보면 한 번 더 쳐다보고, 가까이 두고 싶어지고, 결국 지갑까지 열게 되는지 심리와 소비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지난 글귀여움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소비 코드↗
이번에는 귀여운 캐릭터를 ‘최애’로 만드는, 치밀하게 설계된 성격과 서사, 세계관을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세상에는 귀여운 게 너무 많고, 사람마다 귀여워하는 포인트도 다릅니다. 물론 큰 눈과 둥근 얼굴, 짧은 팔다리처럼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귀엽다고 느끼는 특징도 있어요. 그래도 귀엽기만 하면 다 좋아한다면, 세상의 귀여운 캐릭터는 전부 잘됐어야 하지 않나요?
요즘 가장 뜨거운 캐릭터 중 하나인 치이카와(국내에서는 ‘먼작귀’로도 불리죠!)도 귀여움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귀여운 외형에 끌려 보기 시작해도, 캐릭터마다 다른 성격과 이야기 때문에 더 빠져들게 되거든요. 최근 개봉한 첫 극장판 「영화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을 보면 그 인기가 체감됩니다. 2026년 7월 24일 개봉해 59일 만에 흥행수입 158.4억 엔, 관객 1,085만 명을 넘기며 2026년 개봉작 흥행 1위에 올랐어요. [1]
오타쿠의 심금을 울리려면 귀여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귀여움 너머에 있는 캐릭터성과 서사를 하나씩 살펴볼게요.
01. 귀엽다고 다 최애가 되진 않는 이유
누군가 왜 귀여운 걸 좋아하냐고 물으면 답은 간단합니다.
성의 없는 답 같지만 틀린 말은 아니에요. 캐릭터의 눈과 코 비율을 분석한 다음 귀엽다고 판단하지는 않으니까요. 큰 머리와 둥근 얼굴, 큰 눈, 작은 코와 입처럼 아기에게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 있어요. 아기 얼굴 사진의 비율을 조절한 실험에서는 이런 특징이 강할수록 사람들이 더 귀엽다고 평가하고, 돌보고 싶은 마음도 커졌어요. [2] 귀여운 얼굴을 봤을 때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연구도 있어요. [3]
그래서 처음 눈길을 끄는 데는 귀여움만 한 게 없어요. 그런데 눈길이 간다고 다 좋아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피드를 넘기다 귀여운 캐릭터를 보고 “귀엽다” 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훨씬 많지 않으신가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어떤 캐릭터는 이름을 검색해보고, 새 에피소드가 올라오면 챙겨 보고, 굿즈가 나오면 가격까지 확인하죠. 둘 다 귀여운 건 같은데,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이만큼 차이가 납니다.
귀여움은 관심을 만드는 데 강합니다. 그렇지만 계속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02. 같은 ‘귀여움’도 좋아하는 포인트는 다르다
‘짜증나’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조금 이해하기 쉬워요. 진짜 화가 나서 짜증 날 수도 있고, 서운하거나 아쉬워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너무 웃기거나 너무 좋아서 “아 진짜 짜증나ㅋㅋ”라고 할 때도 있죠.
‘귀엽다’도 다양하게 쓰입니다. 작고 동글동글해서 귀엽고, 행동이 웃겨서 귀엽고, 허술해서 귀엽고, 나랑 닮아서 귀여울 수도 있어요.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 나왔을 때 느끼는 갭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봐도 그래요.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 최애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가 60.2%로 가장 많았어요. 그런데 ‘익숙해서, 자주 봐서’(40.5%), ‘캐릭터의 행동이 좋아서’(32.9%), ‘등장하는 콘텐츠가 좋아서’(24.2%)라는 답도 적지 않았습니다. [4] 캐릭터 외형 말고도 자주 보는 것, 캐릭터의 행동, 등장하는 이야기가 좋아하게 된 이유로 꼽혔어요.
귀여움을 오래 연구해온 일본의 심리학자 닛토노 히로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귀여움(kawaii)은 아기 같은 외형에만 반응하는 감정이 아니라고 해요. 여러 이유로 생겨나는 감정이고, 아기 같은 외형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5]
생각해보면 우리가 캐릭터를 보면서 “귀여워”라고 말할 때도 이유가 전부 같지는 않아요. 아기자기해서 좋아할 수도 있고, 너무 허술해서 웃길 수도 있습니다. 강한 캐릭터가 의외로 디저트를 좋아해서 귀엽고, 회사에서 열받아 하는 햄스터를 보면서 “저거 완전 나잖아” 싶어서 좋아할 수도 있어요.
공감, 웃김, 허술함, 갭, 친근함까지 전부 ‘귀엽다’ 한마디에 담겨 있어요. 그렇기에 캐릭터의 매력을 귀여운 외형 하나로만 설명하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03. 귀엽기만 하면 앙꼬 없는 찐빵 아닐까?
귀여운 얼굴까지는 잘 만들었는데, 그 캐릭터로 보여줄 장면이 없다면 콘텐츠도 금방 비슷해집니다. 저는 약간 앙꼬 없는 찐빵 같다고 생각해요.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으니까요.
캐릭터 소비를 연구한 2022년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논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연구진은 ‘얼마나 귀여운가’만 보지 않았어요. 캐릭터가 가진 상징적 의미, 소비자가 캐릭터에서 자기 모습을 느끼는 정도, 캐릭터가 주는 감정적 가치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세 가지가 강할수록 캐릭터를 더 좋게 봤고, 그 마음은 구매 의도로 이어졌어요. 캐릭터에서 내 모습이 보이거나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면 충동구매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6]
정리하면, 캐릭터를 사게 만든 건 귀여운 얼굴보다 그 캐릭터가 뜻하는 것, 나와 닮은 점, 보면서 드는 기분이었다고 해요!
터프한 쿠로미가 연애소설을 좋아한다는 갭
산리오는 이 부분을 보기 좋은 사례입니다. 쿠로미는 검은 두건과 분홍색 해골부터 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설정을 알고 보면 다른 면이 보여요. 터프해 보이지만 소녀스러운 취향이 있고, 일기를 쓰고 연애소설을 좋아합니다. [7] 센 척하는 쿠로미가 몰래 일기를 쓰거나 연애소설에 빠져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면이 됩니다. 외형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에요.
이런 생각은 2025년 넷플릭스 「My Melody & Kuromi」를 만든 미사토 토모키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8]
다정한 마이멜로디와 투덜대는 쿠로미는 같은 일을 겪어도 전혀 다르게 반응해요. 그 차이에서 둘 사이의 갈등도, 화해도 생겨납니다. 귀여운 캐릭터를 수십 년간 만들어온 산리오도 ‘just cute’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브랜드 캐릭터를 운영하고 있거나 새로 만들려는 분, 개인적으로 캐릭터 IP를 키워가고 싶은 분이라면 이 점을 참고해보세요!
세계관에 진심인 디즈니와 픽사의 집요한 디테일
주토피아는 ‘동물이 직접 설계한 도시라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예요. [9] 그 답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세계부터 조사했습니다. 공동감독 재러드 부시는 처음 8개월 동안 이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조사만 했다고 해요. [10]
조사는 책상 앞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제작진은 케냐로 2주 동안 사파리 답사를 떠났고, 거기서 영화의 핵심 설정을 찾았습니다. 리치 무어 감독에 따르면 야생 동물의 90%는 피식자, 10%는 포식자이고, 둘은 같은 물웅덩이에 모인다고 해요. 이 관찰에서 포식자와 피식자가 한 도시에 섞여 사는 주토피아가 나왔습니다. [11]
세세한 설정은 세계관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주토피아는 동물이 사는 환경에 맞춰 사하라 스퀘어, 툰드라타운, 열대우림 지구처럼 구역을 나눴고, 작은 설치류는 리틀 로덴시아에 따로 모여 살아요. [10] 쥐부터 기린까지 함께 다닐 수 있게 크고 작은 출입구와 이동 통로도 곳곳에 있죠. [12] 관객이 ‘이 도시라면 정말 동물들이 살 수 있겠다’고 믿게 되는 건 이런 디테일 덕분이에요.
바이런 하워드 감독은 2편을 만들 때도 같은 기준으로 영화를 점검했다고 해요.
여기서 눈여겨볼 건 ‘이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나’를 끝까지 묻는 태도예요. 관객이 굳이 찾아보지 않을 코끼리 체육관까지 챙기는 건, 이 세계가 진짜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기 위해서죠. 캐릭터가 사는 세계를 믿을 수 있어야, 그 안의 캐릭터도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니까요.
이런 집요함은 픽사의 「호퍼스」에서도 볼 수 있어요. 2026년 개봉한 「호퍼스」는 숲과 연못에 사는 동물들, 그중에서도 비버의 세계를 무대로 한 영화인데요. 프로듀서 니콜 그린들은 제작진이 먼저 이 주제의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며, 2021년 9월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현장 답사를 떠났다고 해요. [14]
비버를 연구하는 에밀리 페어팩스 교수에게는 5년 동안 자문을 받았어요. 교수는 아트팀 전체를 일주일 동안 연못으로 데려가 비버가 사는 환경을 직접 겪게 했다고 합니다. [15] 비버가 어떻게 앉고, 어디에 집을 짓고,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아야 그 세계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제작사의 집요함이 영화 밖까지 이어지면, 팬은 그 세계관에 더 깊이 빠져들어요. 상하이 디즈니랜드가 그 예시죠! 주토피아 구역을 짓는 동안 공사장 가벽에는 주토피아의 세계관을 반영해 큰 동물용부터 아주 작은 동물용까지 크기가 다른 문을 세 개 배치해두었는데요. [16] [17]
2023년 12월 문을 연 주토피아 구역도 영화 속 도시를 옮겨온 것처럼 벤치, 음수대, 출입문까지 동물 크기에 맞춰 만들었어요. 덕분에 방문객은 영화 속 주토피아에 들어온 것처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18]
팬 입장에서는 이런 디테일을 찾는 재미도 생깁니다. 영화에서 봤던 설정을 테마파크에서 다시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여기에도 이걸 넣었네?” 하면서 공유할 소재도 생겨요. 세계관을 촘촘하게 만들어두면 캐릭터가 움직일 장면도 많아지고, 팬이 찾아볼 거리도 많아집니다.
04. 결국 서사다! 계속 보고 싶은 캐릭터의 조건
여기까지 오면 결국 서사를 빼놓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는 서사는 꼭 거대한 모험이나 복잡한 세계관만 뜻하지 않아요. 매번 반복하는 행동, 늘 붙어 다니는 친구, 회사에서 매일 벌어지는 짧은 에피소드도 서사가 될 수 있어요. 사랑받는 캐릭터들이 어떤 서사를 쌓아왔는지 예시로 정리해봤어요.
| 사례 | 캐릭터 설정 | 이야기가 생기는 방식 | 팬이 빠져드는 지점 |
|---|---|---|---|
| 치이카와 | 울보지만 착한 치이카와, 밝고 긍정적인 하치와레, 자유분방한 우사기 | 같은 상황에 대한 세 캐릭터의 서로 다른 반응 | 귀여운 외형과 위험한 세계의 대비, 1~2분 분량의 짧은 회차 |
| 스누피 | 상상하길 좋아하는 강아지 | 개집 지붕 위에서 펼치는 상상 속 변신(소설가, 전투기 조종사, 멋쟁이 대학생 등) | 변하지 않는 스누피다움과 매번 새로운 역할 |
| 김햄찌 | 소심하고 정서불안인 회사원 햄스터 | 운영자가 직장에서 겪은 일을 각색한 에피소드 | 직장인의 공감과 대리만족 |
| 다이노탱 | 덜렁대는 쿼카, 머리카락 열두 가닥을 아끼는 아빠 쿼카, 이야기 도중 조는 할아버지 쿼카 | 캐릭터별 버릇과 취향에서 시작되는 작은 사건 | 가족과 친구 사이의 소소한 일상 |
같은 일도 셋이 겪으면 다른 이야기가 되는 치이카와
치이카와의 주인공들은 성격이 뚜렷해요. 치이카와는 조금 울보지만 착하고, 하치와레는 밝고 긍정적이에요. 우사기는 “우라”, “야하” 같은 말을 큰 소리로 외치는 자유인입니다. [19]
성격이 이렇게 뚜렷하니 같은 상황에서도 셋의 반응이 다르고, 그 차이에서 에피소드가 생겨요. 한 화가 짧다는 점도 커요. 원작은 며칠에 한 번 1페이지 8컷 정도로 올라오고, 애니메이션도 한 화가 1~2분이라, 앞 이야기를 몰라도 자투리 시간에 아무 화나 골라 볼 수 있어요. [20]
짧은 에피소드들은 맛있는 걸 먹고, 물놀이하고, 춤추는 작은 행복을 주로 그려요. [21] 이런 일상을 보다 보면 캐릭터에게 정이 들고, 오늘은 셋이 또 뭘 할지 궁금해서 다음 화를 찾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괴물을 토벌하러 나가는 긴 에피소드도 있어서, 귀여운 외형만 보고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해요. [22]
상상 하나로 50년을 이어간 스누피
스누피의 가장 큰 설정은 ‘상상하길 좋아하는 강아지’예요. 현실의 스누피는 빨간 개집에 사는 강아지지만, 개집 지붕 위에 누우면 상상 속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스누피는 상상 속에서 여러 인물로 변신합니다. 개집을 전투기 삼아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되기도 하고, 선글라스를 쓴 멋쟁이 대학생이나 타자기 앞에 앉은 소설가가 되기도 해요. 이렇게 변신한 모습이 100가지가 넘는다고 해요. [23]
변신이 이렇게 많아도 스누피는 늘 스누피예요. ‘상상하길 좋아하는 강아지’라는 설정이 그대로라, 어떤 역할을 맡든 스누피다운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작가가 매번 새 캐릭터를 만들지 않아도 이야기가 계속 나왔고, 그렇게 50년 동안 1만 7,897편이 만들어질 수 있었죠! [23]
“이거 완전 나잖아” 3개월 만에 50만 명을 모은 햄스터
김햄찌는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와요. 운영자는 디자이너 회사에서 7년 동안 일하며 겪은 ‘웃기면서도 슬픈’ 에피소드를 주제로 삼는다고 밝혔습니다. [24] 시작도 그랬어요. 직장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 “혼자 하는 넋두리” 같은 영상을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위로해줬다고 해요. [25]
영상 속 김햄찌는 출근하자마자 애매한 업무 지시를 받고, 사고를 치고, 로또에 당첨돼 사직서를 내는 상상을 합니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지만 댓글에는 “내 생각 들킨 것 같아서 흠칫했다”, “햄찌가 내 속마음 대변해 준다” 같은 반응이 있었는데요. [26] [27]
운영자의 말처럼 귀여운 햄스터가 먼저 눈길을 끌고, 직장인이라면 다 아는 상황이 공감을 만들어요. 이 공감이 쌓이면서 김햄찌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었어요. 편의점 GS25에서는 김햄찌 브리또가 나왔고, 신세계 강남에서는 김햄찌 팝업이 열렸습니다. [29] [30]
머리카락 열두 가닥도 이야기가 되는 다이노탱
다이노탱은 캐릭터마다 버릇과 취향을 정해뒀어요. 쿼카는 낙천적이지만 덜렁대고, 아빠 쿼카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 열두 가닥을 매일 빗을 만큼 아끼고, 할아버지 쿼카는 이야기 도중 자꾸 잠듭니다. [31] 이런 설정이 있으면 큰 사건을 만들지 않아도 장면이 나와요.
2023년 전시 「Quokka & BOBO’s Boxville」의 교실 장면에서도 한 캐릭터는 복도에서 트럼펫을 불고, 다른 캐릭터는 책 뒤에 숨어 과자를 먹어요. 캐릭터마다 정해둔 버릇이 장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32]
쿠키런 개발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결국 서사는 ‘이 캐릭터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가 그려지는 상태 아닐까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못 참는지 정해져 있으면, 좋아하는 음식 하나도 장면이 되고 반복하는 버릇도 장면이 됩니다. 성격이 다른 친구 둘을 붙여두면 그것도 새로운 에피소드가 되죠.
좋아하면 모으고 싶고, 다 모으면 고르고 싶다
이렇게 다음 장면이 기다려지는 캐릭터가 생기면, 그 캐릭터를 곁에 두고 싶어지죠! 굿즈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돼요. 요즘 캐릭터 굿즈에는 블라인드 박스와 가챠, 랜덤 구성, 한정판이 정말 많습니다. 원하는 캐릭터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사고, 몇 개를 모으면 나머지까지 채우고 싶어져요.
2026년 Journal of Retailing 연구를 보면 이 마음은 모으는 단계에 따라 달라져요. 수집 초반에는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스릴을 즐깁니다. 그런데 거의 다 모은 후반에는 불확실성이 불편해지면서,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더 선호했어요. 온라인에도 고를 수 있는 기능을 넣자 이 차이가 줄었습니다. [34]
그래도 순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좋아해야 모으고 싶습니다. 관심 없는 캐릭터를 블라인드 박스에 넣었다고 갑자기 여러 개 사고 싶어지지는 않잖아요? 좋아하는 캐릭터가 생긴 다음, 랜덤과 한정판, 세트 구성이 소장욕구를 더 자극합니다. 캐릭터를 좋아하게 만드는 설계와 굿즈를 사고 싶게 만드는 설계를 따로 봐야 하는 이유예요.
05. 귀여워서 좋아할까, 좋아해서 귀여울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반대 방향도 궁금해집니다.
나중에는 좋아해서 더 귀여워 보이는 건 아닐까요?
최애가 생기면 별거 아닌 장면에도 반응하게 되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이상한 표정인데 팬들은 그 표정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평범한 음식도 최애가 좋아한다는 설정을 알고 나면 괜히 반갑죠. 약간 콩깍지가 씌는 느낌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좋아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미국의 한 대학 운동부에서 팀원들에게 서로의 외모를 평가하게 했더니, 팀을 이끄는 동료는 매력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동료는 매력 없게 봤어요. 그런데 이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외모를 비슷하게 평가했습니다. [35]
귀여움도 비슷해요. 아이 사진에 긍정적인 성격 설명을 붙여 보여줬더니, 사람들이 같은 아이를 처음보다 더 귀엽다고 평가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36]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일정 구간까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37]
캐릭터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귀여워서 관심을 가졌다가, 성격을 알고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생기고 몇 년 동안 보다 보면 같은 얼굴도 더 귀여워 보입니다. 앞서 살펴본 운동부 팀원들에 대한 연구 결과처럼요!
06. 오래 사랑받는 캐릭터는 팬이 함께 키운다
캐릭터가 오래 사랑받으려면 팬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2026년 산리오 캐릭터 대상에는 7,064만7,379표가 집계됐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표였고, 폼폼푸린 한 캐릭터에만 700만 표 이상이 모였어요. [38]

팬들은 매년 최애에게 투표하고, 주변에도 투표를 부탁합니다. 공식 콘텐츠를 보기만 하는 데서 끝나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장면을 캡처해 밈을 만들고, 별명을 붙이고, 친구에게 최애를 영업해요. 다른 팬들과 한 장면을 두고 몇 시간씩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팬 계정이 캐릭터를 띄우는 일도 많아졌어요. 잔망루피는 팬들이 만든 ‘루피 짤’에서 시작됐습니다. 2019년 무렵 온라인에서 짤이 퍼지자, 아이코닉스는 2020년 7월 이를 ‘잔망루피’라는 공식 사업으로 만들었어요. 담당자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퍼졌다”고 말했습니다. [39] 치이카와도 일본어 만화를 한글로 옮겨 올리는 팬 번역 계정이 있는데, 팔로워가 5만 명 가까이 돼요. [40]
이렇게 되면 IP는 제작자가 정한 설정대로만 움직이지 않아요. 팬이 어떤 장면을 좋아하고 어떤 말을 밈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알려지는 방식도 바뀝니다.
팬이라는 마음이 왜 중요한지는 웹툰 독자 293명을 조사한 2026년 연구에서도 드러나요. 이 연구에서 굿즈를 더 가치 있게 본 사람은 이야기에 푹 빠진 독자가 아니었어요. 스스로를 그 작품의 팬이라고 느끼는 독자였죠. 이 마음은 캐릭터에게서 나를 발견할 때, 세계관이 풍부하다고 느낄 때, 다른 팬과 이야기할 곳이 있을 때 커졌습니다. [41]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굿즈를 사는 팬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야기를 좋아하게 만들었다면, 팬끼리 이야기하고 응원하고 자기 방식으로 즐길 자리도 필요합니다.
팬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팬이 없으면 브랜드가 계속 새 소식을 알리고, 매번 새로 사람을 모아야 합니다. 팬이 있으면 다음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와 있어요. 2차 창작을 만들고, 소식을 퍼 나르고, 커뮤니티를 꾸리면서 새 팬까지 데려와요. ‘이번엔 뭐 하는데?’가 아니라 ‘이 브랜드니까 가야지!’가 됩니다.
브랜드는 팬이 모일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어요. 산리오 캐릭터 대상처럼 최애에게 투표하는 이벤트를 열 수도 있고,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팝업을 열 수도 있습니다.
07. 귀여움 다음, 브랜드가 만들어야 할 것
캐릭터 IP를 만들거나 캐릭터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다면 “귀여운가?” 다음도 같이 봐야 합니다.
| 항목 | 확인해볼 질문 |
|---|---|
| 외형 | 처음 봤을 때 기억할 특징이 있는가 |
| 캐릭터성 | 외형을 빼고도 성격과 취향,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
| 관계 | 다른 캐릭터와 함께 있을 때 보여줄 장면이 있는가 |
| 서사 | 이번 콘텐츠가 끝나도 다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 |
| 세계관 | 캐릭터가 움직일 환경과 규칙이 마련되어 있는가 |
| 공감 |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겹쳐볼 수 있는가 |
| 소장 경험 | 팬이 굿즈를 모으고 싶어 할 이유가 있는가 |
| 팬 참여 | 팬이 이야기하고 공유할 소재가 있는가 |
| 콜라보 | 이 브랜드와 캐릭터가 만나는 이유를 콘텐츠로 풀 수 있는가 |
특히 요즘 많이 하는 캐릭터 콜라보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해볼 수 있어요. 인기 캐릭터를 패키지에 넣으면 일단 눈길은 갑니다. 여기에 캐릭터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 자주 하는 행동까지 브랜드와 연결하면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많아져요. 디저트를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매장 메뉴와 연결할 수 있고, 캐릭터가 사는 공간을 팝업에 옮길 수도 있습니다. 주토피아처럼 공사장 가벽의 문 하나까지 세계관에 맞춰볼 수도 있고요!
기업에서 자체 캐릭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 모양과 색, 이름을 정했다면 이제 이 캐릭터로 어떤 이야기를 계속 만들 수 있을지 봐야 해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와 친한지,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자주 하는 행동은 무엇인지. 이런 설정이 있어야 다음 콘텐츠를 만들 소재도 생기고, 굿즈와 콜라보에서도 활용할 거리가 늘어납니다.
그러니 캐릭터를 만들거나 콜라보를 기획한다면 ‘얼마나 귀여운가’에서 멈추지 말고 ‘왜 계속 좋아하게 될까’까지 같이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