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분 요약
  • 귀여움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과 돌봄 반응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오래된 심리 코드에 가깝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귀여운 것을 보면 그냥 “예쁘다”에서 끝나지 않고, 가까이 두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갖고 싶은 마음까지 이어지곤 합니다.
  • 여기에 가심비, 자기표현, 감각적 만족이 더해지면서 귀여움은 오늘날 더 강한 소비 코드가 되었습니다.
  • 특히 요즘의 귀여움은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랑한 촉감과 ASMR 같은 청각적 만족까지 확장되며 감각 전체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오늘날의 귀여움은 유행하는 취향을 넘어, 피로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작지만 확실한 만족과 위로를 찾는 방식 중 하나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에 녹아든 귀여운 것들
출근한 A씨의 책상 위에는 작은 캐릭터 인형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모니터 옆에는 귀여운 동물 모양 피규어가 놓여 있고, 가방에는 키링이 두세 개쯤 주렁주렁 매달려 있죠. 오전 업무에 지쳐갈 때쯤이면 우유빵 말랑이나 청사과 슬랑이를 한 번씩 꾹꾹 눌러보며 잠깐 숨을 돌립니다. 집중이 필요할 때는 백색소음을 틀고, 잠들기 전에는 ASMR을 재생해요. 잠시 쉬는 시간에도 두 눈은 SNS 피드를 염탐하기 바쁩니다. 그러다 발견한 귀여운 굿즈는 다음 월급날을 기약하며 일단 저장해두곤 합니다.


어때요, 조금 찔리셨나요? 일부는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귀엽고, 도파민 터지고, 촉감과 청각을 극도로 만족시키는 것들에 흠뻑 빠지게 되었을까요?

요즘 우리는 눈으로 보기에 귀여운 것만 찾지 않아요. 손으로 눌렀을 때 기분 좋은 것, 귀로 들었을 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흐트러진 무언가가 반듯하게 정리되는 장면까지 찾아보고 저장합니다. 눈과 손, 귀에 작지만 확실한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 곳곳을 차지하게 되었죠.

물론 누군가는 이런 물건들을 ‘예쁜 쓰레기’라고 부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요즘의 소비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필요해서 무언가를 사는 방식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이 주는 기분과 만족감까지 함께 소비하는 데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흔히 이런 소비를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라고 표현하죠. 여기에 더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나다운 삶을 표현해 주는 경험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요즘 소비는 기능보다 감정에, 설명보다 감각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귀여움은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피로한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영리한 소비 코드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귀여운 것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굳이 돈을 내고 내 곁에 두려는 걸까요?

오늘은 우리가 왜 귀여운 것 앞에서 쉽게 무장해제되는지, ‘귀엽다’는 감정이 어떻게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귀여움이 왜 눈을 넘어 손과 귀까지 자극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해요.

논문과 실제 소비 현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왜 쓸모를 따지다가도 귀여움 앞에서는 자꾸만 지갑을 열게 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지 않을까요? (물론 이유를 안다고 해서 소비를 멈출 수는 없겠지만요!😂)


이번 글에서 함께 살펴볼 것들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움에 약할까

귀여움은 어떻게 지갑을 열게 만들까

귀여움은 왜 시대를 막론하고 강력할까

현대의 귀여움은 어떻게 시각을 넘어 감각으로 확장됐을까


1.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움에 약할까

사실 누군가 귀여운 걸 왜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귀여우니까요.”

어쩌면 성의 없는 답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설명도 없는 것 같아요. 귀여움은 장단점을 따져보고 분석한 뒤에 내리는 판단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해달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의 랏코
해달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의 랏코

가령 우리는 캐릭터의 눈과 코가 어떤 비율로 배치됐고 어떤 원리와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분석한 후에 ‘좋아, 이건 귀엽군’하며 결론을 내리지 않죠. 커다란 머리에 비해 짧은 팔다리, 동그란 눈을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운 것들 앞에서 쉽게 무장해제가 되고 마는 걸까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오래된 공식

아기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머리와 둥근 얼굴, 커다란 눈, 작은 코와 입 같은 특징을 ‘유아도식(baby schema)’이라고 합니다.

실제 아기 얼굴의 생김새를 조절해 보여준 실험에서는 이러한 유아적 특징이 강할수록 참가자들이 얼굴을 더 귀엽게 평가했고, 돌보고 싶다는 마음도 더 크게 느꼈다고 해요.[1]

생각해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캐릭터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머리는 몸보다 유난히 크고, 팔다리는 짧으며,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합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것처럼 작게 만들어지기도 하죠.

함께 있으면 두 배로 귀여운 ‘포켓몬스터’의 플러시와 마이농
함께 있으면 두 배로 귀여운 ‘포켓몬스터’의 플러시와 마이농

내 옆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기도, 동물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경우도 종종 있죠. 커다란 곰인형이 쓰레기장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쓸쓸해 보인다고 느끼고, 오래 쓰다 닳고 구멍이 난 애착인형은 쉽게 버리지 못한 채 계속 곁에 두는 것처럼요. 물건에는 아무 감정이 없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은근히 마음을 주고 있어요.

이렇듯 귀여움은 그저 ‘예쁘다’는 감상으로만 끝나지 않는 걸 볼 수 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고, 대상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귀여운 아기 동물의 이미지를 본 사람들이 이후 작은 부품을 다루는 과제에서 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2] 단순한 이미지를 본 것뿐인데도 손끝과 행동이 달라지는 걸 보면, 귀여움은 그저 기분 좋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이쯤 되면 귀여움은 디자인 취향을 넘어 인간의 주의와 돌봄 반응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오래된 공식에 더 가까워 보이네요.

귀여움은 눈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귀여움은 꼭 생김새로만 느껴질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작고 높은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보송보송한 인형을 만졌을 때도, 작은 동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봤을 때도 우리는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귀여움은 얼굴의 생김새를 넘어 목소리와 움직임, 촉감 등 여러 감각을 통해 경험될 수 있어요. 시선을 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상을 가까이하고, 말을 걸고, 만져보고 싶게 만드는 복합적인 자극인 거죠.[3]

치와와를 쓰다듬는 짤 원본
강아지를 쓰다듬는 짤
출처: Paul Rugg Relaxes By Petting His Dog, Lucky Youtube

털이 부드러워 보이는 인형은 한 번쯤 안아보고 싶고, 말랑해 보이는 볼은 괜히 눌러보고 싶습니다. 작은 동물이 무언가를 먹는 영상을 볼 때는 오물거리는 모습뿐 아니라 사각사각 씹는 소리까지 찾아 듣곤 하죠.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이내 움직이게 하는 귀여움의 힘!

아기처럼 생기지 않았는데도 귀여운 이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진 않으셨나요? 요즘 인기 있는 캐릭터가 모두 아기처럼 생긴 것은 아니니까요.

어떤 캐릭터는 선이 삐뚤빼뚤하고, 표정은 어딘가 억울하며, 하는 행동도 제법 허술합니다. 매일 부지런히 살아가기보다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싶어 하고, 일을 미뤄놓고 “내일의 내가 하겠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공감하게 되죠.

“엥, 이거 완전 난데? 사생활 침해 아님?”

몽총미 있고 현실적이고 귀여운 캐릭터
출처: 누덕이 X 계정 @Nudeoke

귀여움에 관한 소비자 연구에서는 아기처럼 작고 연약한 ‘유아도식형 귀여움’과 장난스럽고 엉뚱한 ‘익살스러운 귀여움’을 구분하기도 합니다.[4]

전자가 돌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면, 후자는 재미와 친근함을 만들어내요. 완벽하고 멋진 존재라서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고 지치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 하는 모습이 나와 닮아서 정이 가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의 귀여움은 생김새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귀여운 외형이 시선을 붙잡지만, 오래 좋아하게 만드는 건 그 이후의 모습들인데요. 허술한 행동이나 솔직한 말투, 어딘가 나와 닮은 태도가 더해지면서 단순히 귀여운 대상을 넘어 정이 가는 존재가 되어 갑니다. 그렇게 어떤 귀여움은 돌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귀여움은 지친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귀여움은 별것 아닌 순간에 피식 웃게 만들기도 하죠.

이내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귀여움은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돼요. 그저 보고 웃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내 곁에 두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2. 귀여움은 어떻게 지갑을 열게 만들까

귀여운 것을 보고 난 뒤 우리의 행동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일단 한 번 더 쳐다봐요. 사진을 확대해보고, 캐릭터의 이름을 검색하고, 공식 계정까지 들어가 보죠. 그러다 키링이나 인형, 스티커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슬그머니 가격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하나쯤 사도 되지 않을까?”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정신 차리면 결제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경험,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그렇다면 ‘귀엽다’는 감정은 언제부터 ‘갖고 싶다’는 마음이 되는 걸까요?

귀여움은 물건과 나 사이의 관계를 만듭니다

보통 물건은 기능으로 구분됩니다. 컵은 물을 마시는 데 쓰고, 파우치는 물건을 담으며, 열쇠고리는 열쇠를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여기에 캐릭터가 붙는 순간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집니다.

굿즈가 가진 힘 : 귀여움의 소비 심리
소비 욕구를 부르는 귀여운 캐릭터 굿즈들...!

평범한 머그잔 하나라도 좋아하는 캐릭터의 얼굴이 그려져 있으면 집에 비슷한 컵이 여러 개 있어도 괜히 눈길이 갑니다. 캐릭터 인형에는 이름을 붙이고, 여행을 갈 때 데려가 사진을 찍기도 해요. 또 음식을 먹기 전 예절샷도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가방에 매달아둔 키링이 보이지 않으면 물건 하나를 잃어버린 것 이상의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캐릭터는 제품 위에 덧붙은 장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물건에 성격과 이야기를 더하고, 소비자가 그 물건에 자연스럽게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요. 같은 기능을 가진 물건이라도 어떤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예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긴 정과 애착은 바로 구매로 이어질까요?

의외로 소비 과정은 생각보다 이성적입니다!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캐릭터 상품의 구매 요인을 살펴본 연구에서도 캐릭터가 친구처럼 느껴지는 친근감 자체만으로는 구매에 뚜렷한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대신 소비자가 기대했던 즐거움이나 가치가 실제로 충족되는지, 캐릭터가 상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구매 의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됐죠.[5]

즉, 관계구매의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실제로 결제를 하게 만드는 조건은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결제를 결심하는 기준은 '좋아하니까 산다'기보다 '좋아하는데, 내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산다'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만족감과 비용을 저울질하는 가심비 소비
아무리 귀여워도 만족감과 비용을 저울질하게 됩니다.

책상 위에 두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고, 가방에 달면 나다운 느낌이 날 것 같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계기가 될 것 같다는 기대까지 함께 따져보는 거죠.

그래서 귀여운 물건의 가치는 물건 자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을 내 일상에 들여놓았을 때 생길 감정과 경험까지 함께 판단하게 돼요. 그래서 키링과 텀블러, 파우치, 휴대폰 케이스처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캐릭터가 더해졌을 때 구매는 조금 더 쉬워집니다. 새로운 물건을 하나 더 사는 것보다, 익숙한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드는 선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필요한 물건보다 기분 좋은 물건

아무리 귀여워도 값이 지나치게 비싸면 잠시 멈칫하게 됩니다. 이미 비슷한 제품이 집에 있다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캐릭터 굿즈는 대체로 이런 망설임을 절묘하게 파고들어요.

당장 파산할 정도로 비싸지는 않지만, 그날의 기분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가격이며 (물론 때로는 두 눈 꼭 감고 사야 하는 것도 있지만요..^^)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있으면 그날 하루가 즐겁고 행복해지는 물건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귀여운 굿즈 앞에서 큰 투자를 결정하듯 고민하기보다,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처럼 구매를 정당화하곤 합니다.

“오늘 힘들었으니까.”
"이건 한정판이니까.”
“커피 몇 잔만 안 마시면 되니까.”

그렇다고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얼마나 유용한지와 함께, 얼마나 즐거움을 주고 일상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지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이모티콘을 구매하는 이유
카카오 이모티콘샵 이번 주 주목할 이모티콘 모음 (https://e.kakao.com/)

이모티콘 구매 연구에서도 구매 의도에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단순한 심미성뿐 아니라 즐거움과 자아표현이었다고 해요.[6]

생각해보면 우리가 굳이 유료 이모티콘을 사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는 “알겠어”, “고마워”, “미안해”라는 텍스트만으로도 충분하죠. 그런데도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거나, 바닥에 드러눕거나, 어딘가 억울한 표정을 짓는 캐릭터를 골라 보냅니다.

그편이 내 마음을 더 정확하고, 더 재미있게 대신 말해주기 때문이에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물건

키링은 원래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하지만 요즘 가방에 달린 키링을 보면 열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제 키링은 실용적인 역할보다 가방을 꾸미고 취향을 드러내는 역할이 더 커졌죠.

조금 엉뚱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 귀엽지만 무표정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 어린 시절부터 봐온 익숙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 사람마다 선택은 모두 다른데요. 무심코 골랐더라도, 그 안에는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취향과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 귀여운 물건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는 귀여운 것들

그래서인지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생각보다 쉽게 가까워집니다. 우연히 같은 키링을 발견하고 반가워하거나, 한정판 굿즈 소식을 서로 공유하고, 팝업스토어 후기를 주고받기도 해요. 가방에 달린 작은 인형 하나는 처음 만난 사람과의 스몰토크 주제로 아주 제격이죠.

이처럼 귀여운 물건은 개인적인 만족에서 끝나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년 캐릭터 이용자 조사 결과
「2025 캐릭터 이용자 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런 소비는 이제 꽤 익숙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캐릭터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캐릭터 상품 구매 경험률은 79.8%로, 열 명 중 여덟 명 정도가 한 번쯤 캐릭터 상품을 구매해봤다고 하는데요.[7]

이처럼 캐릭터 소비가 대중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귀여운 물건을 소비하는 방식은 이제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따지다가도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감정적으로 끌린 뒤에는 나름의 이유를 덧붙여요. 그래서 귀여운 물건의 소비는 언제나 충동구매와 계획 소비 사이 어딘가에 있고, 때로는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기도 하죠.

결국 현대인의 지갑을 여는 귀여움은, 곧 귀여움이 보장하는 감정과 경험인 것 같습니다.

3. 귀여움은 왜 시대를 막론하고 강력할까

귀여움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유행이 아닙니다.

지금은 가방에 키링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지만, 이전부터 사람들은 인형을 모으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학용품을 사용했어요. 모습은 조금씩 달라져도 작고 사랑스러운 것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늘 존재해왔죠.

그렇다면 유행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도 귀여움은 왜 좀처럼 식지 않는 걸까요?

시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귀여움

귀여움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귀여움의 모습이 딱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큰 눈과 둥근 얼굴처럼 돌봄 반응을 자극하는 특징은 정석적인 귀여움으로, 여전히 잘 통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삐뚤빼뚤한 그림이나 무기력한 표정, 어딘가 허술한 ‘몽총미’와 엉뚱한 말투도 충분히 귀여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귀여움의 소비 심리학이 시대의 영향을 받는 이유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귀여움'

듀오링고처럼 지나치게 집요하고 약간은 광기 어린 캐릭터조차 사람들에게 웃음과 애정을 얻는 걸 보면, 요즘의 귀여움은 꼭 얌전하고 사랑스럽기만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귀여움의 공식은 달라진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으로 계속 다시 번역되고 있어요.[8]

SNS는 귀여움을 지나치지 못하게 만듭니다

SNS는 귀여움을 전 세계에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더 자주 눈에 띄게 해줍니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귀여움은 SNS 환경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기도 해요.

거기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한 것들과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추천해주기에 '내가 좋아하는' 귀여움을 정말 말 그대로 끊임없이 만나게 됩니다.

귀여움의 소비 심리가 SNS와 잘 맞는 이유
SNS에 넘쳐나는 귀여운 것들

요즘에는 완성된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SNS에 올라온 그림 한 장이나 짧은 콘텐츠가 먼저 공감을 얻고, 이후 이모티콘이나 키링, 인형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귀여움 자체가 예전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기보다 귀여움을 만나는 횟수와 좋아할 수 있는 방식이 훨씬 많아진 것 같습니다.

4. 현대의 귀여움은 어떻게 시각을 넘어 감각으로 확장됐을까

지금까지의 귀여움이 눈으로 보고 좋아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의 귀여움은 우리의 감각까지 자극하고 있습니다.

말랑한 스퀴시, 매끈하게 잘리는 비누, 반듯하게 정리되는 물건들을 보며 화면 너머의 촉감까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죠. 그리고 '100점짜리 소리'를 찾을 때까지 여러 영상을 넘겨보기도 합니다.

이제는 눈뿐 아니라 손과 귀도 만족해야 하니까

슬라임과 키네틱 샌드, 왁뿌볼, 고무짜기처럼 직접 만지는 장난감뿐 아니라 무언가가 눌리고, 늘어나고, 매끈하게 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상하게 만족스러운(oddly satisfying)’ 영상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실제로 손으로 만지고 있지는 않지만 화면 속 질감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고, 그 과정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끼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9]

왜 사람들은 이렇게 단순한 장면을 계속 찾아보는 걸까요?

이제 귀여움은 공감각을 자극한다
보고 만지고 느끼고 듣는 사람들

생각해 보면 귀여운 캐릭터 인형을 쓰다듬거나, 폭신한 쿠션을 끌어안고, 말랑이를 손으로 주무르는 행동은 꽤 닮아 있어요. 모두 부드럽고 안전한 대상을 직접 접촉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과 만족감을 얻는 행동이라는 점에서요!

말랑이는 누르면 들어가고, 손을 떼면 다시 돌아오죠. 매끈하게 잘리는 비누와 반듯하게 정리되는 물건은 예상한 결과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현실의 일은 좀처럼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누르면 돌아오거나 부서지는 자극들은 내가 예상한 범위 내의 반응과 결과를 가져오죠. 언제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해요.

사람들이 이런 대상에 끌리는 이유는 귀엽거나 신기해서도 있지만, 잠시나마 통제 가능하고 안전한 감각적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청각도 마찬가지인데요.

종이를 넘기는 소리,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 키보드를 일정하게 두드리는 소리처럼 평범한 소리들은 집중을 돕거나 긴장을 낮추도록 돕습니다. 실제로 ASMR을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영상을 시청할 때 심박수가 낮아지는 반응이 나타났다고 해요.[10]

물론 말랑이와 ASMR을 모두 귀여움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현대의 소비가 이제 눈으로 보기 좋은 것을 넘어 내 감각을 어떻게 느끼게 만드는가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귀여움은 약해서 강합니다

지금까지 귀여움을 살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귀여움은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귀여운 캐릭터는 우리에게 대단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고, 말랑이는 복잡한 사용법을 익히라고 설명서를 늘어놓지도 않아요. ASMR 역시 집중해서 의미를 해석할 필요가 없죠. 그저 보고, 만지고, 듣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가볍게 넘기고, 내 취향에 맞는 또 다른 귀여움을 찾으면 그만이구요.

어쩌면 귀여움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이미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와 광고, 선택지를 마주합니다. 모든 것이 더 유용하고, 더 특별하고, 더 뛰어나다고 경쟁하기 바쁘죠. 이런 바지런한 하루 속에서 귀여움은 별다른 설명 없이 어느새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새로운 캐릭터와 굿즈,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는 계속 등장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오겠죠. 물론 형태와 유행은 바뀌겠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찾는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를 조금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저는 그 작고 만만한 행복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역시나 아주 대단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귀여우니까요!


참고 자료 및 논문 정보

Sherman, G. D., Haidt, J., & Coan, J. A. (2009). Viewing Cute Images Increases Behavioral Carefulness. Emotion, 9(2), 282–286.

Nenkov, G. Y., & Scott, M. L. (2014). “So Cute I Could Eat It Up”: Priming Effects of Cute Products on Indulgent Consump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41(2), 326–341.

임선경·문철(2019). 이모티콘 표현 유형이 캐릭터 애착 및 구매 의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 『조형디자인연구』, 22(4), 161–179.

한국콘텐츠진흥원(2025). 2025 캐릭터 이용자 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Granot, E., Brashear Alejandro, T., & Russell, L. T. (2014). A Socio-marketing Analysis of the Concept of Cute and Its Consumer Culture Implications. Journal of Consumer Culture, 14(1), 66–87.


이 글을 네 가지 질문으로 정리하면🔎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움에 약할까요?

귀여움은 인간의 시선과 돌봄 반응을 자연스럽게 자극하는 오래된 심리 코드이기 때문입니다. 큰 눈과 둥근 얼굴, 짧은 팔다리 같은 특징을 보면 우리는 이유를 분석하기도 전에 먼저 귀엽다고 느낍니다.

왜 귀여운 것을 보면 자꾸 사고 싶어질까요?

귀여운 물건은 기능만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곁에 두었을 때 느끼게 될 기분과 만족감, 자기표현의 경험까지 함께 상상하게 만들어요.

귀여움은 왜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귀여움의 모습은 시대마다 달라지지만, 사람들이 그 안에서 찾는 친밀감과 공감, 작은 즐거움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에요. 귀여움은 매번 그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왜 요즘 말랑이와 ASMR 같은 감각 콘텐츠가 함께 유행할까요?

모든 감각 콘텐츠를 귀여움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소비가 시각을 넘어 촉감과 청각으로 넓어지면서, 내 감각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경험 자체가 중요한 소비 가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