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분 요약
  • 귀여움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과 돌봄 반응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오래된 심리 코드에 가깝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귀여운 것을 보면 그냥 “예쁘다”에서 끝나지 않고, 가까이 두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갖고 싶은 마음까지 이어지곤 합니다.
  • 여기에 가심비, 자기표현, 감각적 만족이 더해지면서 귀여움은 오늘날 더 강한 소비 코드가 되었습니다.
  • 특히 요즘의 귀여움은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랑한 촉감과 ASMR 같은 청각적 만족까지 확장되며 감각 전체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오늘날의 귀여움은 유행하는 취향을 넘어, 피로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작지만 확실한 만족과 위로를 찾는 방식 중 하나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에 녹아든 귀여운 것들
출근한 A씨의 책상 위에는 작은 캐릭터 인형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모니터 옆에는 귀여운 동물 모양 피규어가 놓여 있고, 가방에는 키링이 두세 개쯤 주렁주렁 매달려 있죠. 오전 업무에 지쳐갈 때쯤이면 우유빵 말랑이나 청사과 슬랑이를 한 번씩 꾹꾹 눌러보며 잠깐 숨을 돌립니다. 집중이 필요할 때는 백색소음을 틀고, 잠들기 전에는 ASMR을 재생해요. 잠시 쉬는 시간에도 두 눈은 SNS 피드를 염탐하기 바쁩니다. 그러다 발견한 귀여운 굿즈는 다음 월급날을 기약하며 일단 저장해두곤 합니다.


어때요, 조금 찔리셨나요? 일부는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귀엽고, 도파민 터지고, 촉감과 청각을 극도로 만족시키는 것들에 흠뻑 빠지게 되었을까요?

요즘 우리는 눈으로 보기에 귀여운 것만 찾지 않아요. 손으로 눌렀을 때 기분 좋은 것, 귀로 들었을 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흐트러진 무언가가 반듯하게 정리되는 장면까지 찾아보고 저장합니다. 눈과 손, 귀에 작지만 확실한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 곳곳을 차지하게 되었죠.

물론 누군가는 이런 물건들을 ‘예쁜 쓰레기’라고 부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요즘의 소비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필요해서 무언가를 사는 방식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이 주는 기분과 만족감까지 함께 소비하는 데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흔히 이런 소비를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라고 표현하죠. 여기에 더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나다운 삶을 표현해 주는 경험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요즘 소비는 기능보다 감정에, 설명보다 감각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귀여움은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피로한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영리한 소비 코드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귀여운 것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굳이 돈을 내고 내 곁에 두려는 걸까요?

오늘은 우리가 왜 귀여운 것 앞에서 쉽게 무장해제되는지, ‘귀엽다’는 감정이 어떻게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귀여움이 왜 눈을 넘어 손과 귀까지 자극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해요.

논문과 실제 소비 현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왜 쓸모를 따지다가도 귀여움 앞에서는 자꾸만 지갑을 열게 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지 않을까요? (물론 이유를 안다고 해서 소비를 멈출 수는 없겠지만요!😂)


이번 글에서 함께 살펴볼 것들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움에 약할까

귀여움은 어떻게 지갑을 열게 만들까

귀여움은 왜 시대를 막론하고 강력할까

현대의 귀여움은 어떻게 시각을 넘어 감각으로 확장됐을까


1.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움에 약할까

사실 누군가 귀여운 걸 왜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귀여우니까요.”

어쩌면 성의 없는 답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설명도 없는 것 같아요. 귀여움은 장단점을 따져보고 분석한 뒤에 내리는 판단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해달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의 랏코
해달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의 랏코

가령 우리는 캐릭터의 눈과 코가 어떤 비율로 배치됐고 어떤 원리와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분석한 후에 ‘좋아, 이건 귀엽군’하며 결론을 내리지 않죠. 커다란 머리에 비해 짧은 팔다리, 동그란 눈을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운 것들 앞에서 쉽게 무장해제가 되고 마는 걸까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오래된 공식

아기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머리와 둥근 얼굴, 커다란 눈, 작은 코와 입 같은 특징을 ‘유아도식(baby schema)’이라고 합니다.

실제 아기 얼굴의 생김새를 조절해 보여준 실험에서는 이러한 유아적 특징이 강할수록 참가자들이 얼굴을 더 귀엽게 평가했고, 돌보고 싶다는 마음도 더 크게 느꼈다고 해요.[1]

생각해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캐릭터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머리는 몸보다 유난히 크고, 팔다리는 짧으며,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합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것처럼 작게 만들어지기도 하죠.

함께 있으면 두 배로 귀여운 ‘포켓몬스터’의 플러시와 마이농
함께 있으면 두 배로 귀여운 ‘포켓몬스터’의 플러시와 마이농

내 옆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기도, 동물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경우도 종종 있죠. 커다란 곰인형이 쓰레기장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쓸쓸해 보인다고 느끼고, 오래 쓰다 닳고 구멍이 난 애착인형은 쉽게 버리지 못한 채 계속 곁에 두는 것처럼요. 물건에는 아무 감정이 없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은근히 마음을 주고 있어요.

이렇듯 귀여움은 그저 ‘예쁘다’는 감상으로만 끝나지 않는 걸 볼 수 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고, 대상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귀여운 아기 동물의 이미지를 본 사람들이 이후 작은 부품을 다루는 과제에서 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2] 단순한 이미지를 본 것뿐인데도 손끝과 행동이 달라지는 걸 보면, 귀여움은 그저 기분 좋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이쯤 되면 귀여움은 디자인 취향을 넘어 인간의 주의와 돌봄 반응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오래된 공식에 더 가까워 보이네요.

귀여움은 눈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귀여움은 꼭 생김새로만 느껴질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작고 높은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보송보송한 인형을 만졌을 때도, 작은 동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봤을 때도 우리는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귀여움은 얼굴의 생김새를 넘어 목소리와 움직임, 촉감 등 여러 감각을 통해 경험될 수 있어요. 시선을 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상을 가까이하고, 말을 걸고, 만져보고 싶게 만드는 복합적인 자극인 거죠.[3]

치와와를 쓰다듬는 짤 원본
강아지를 쓰다듬는 짤
출처: Paul Rugg Relaxes By Petting His Dog, Lucky Youtube

털이 부드러워 보이는 인형은 한 번쯤 안아보고 싶고, 말랑해 보이는 볼은 괜히 눌러보고 싶습니다. 작은 동물이 무언가를 먹는 영상을 볼 때는 오물거리는 모습뿐 아니라 사각사각 씹는 소리까지 찾아 듣곤 하죠.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이내 움직이게 하는 귀여움의 힘!

아기처럼 생기지 않았는데도 귀여운 이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진 않으셨나요? 요즘 인기 있는 캐릭터가 모두 아기처럼 생긴 것은 아니니까요.

어떤 캐릭터는 선이 삐뚤빼뚤하고, 표정은 어딘가 억울하며, 하는 행동도 제법 허술합니다. 매일 부지런히 살아가기보다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싶어 하고, 일을 미뤄놓고 “내일의 내가 하겠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공감하게 되죠.

“엥, 이거 완전 난데? 사생활 침해 아님?”

몽총미 있고 현실적이고 귀여운 캐릭터
출처: 누덕이 X 계정 @Nudeoke

귀여움에 관한 소비자 연구에서는 아기처럼 작고 연약한 ‘유아도식형 귀여움’과 장난스럽고 엉뚱한 ‘익살스러운 귀여움’을 구분하기도 합니다.[4]

전자가 돌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면, 후자는 재미와 친근함을 만들어내요. 완벽하고 멋진 존재라서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고 지치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 하는 모습이 나와 닮아서 정이 가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의 귀여움은 생김새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귀여운 외형이 시선을 붙잡지만, 오래 좋아하게 만드는 건 그 이후의 모습들인데요. 허술한 행동이나 솔직한 말투, 어딘가 나와 닮은 태도가 더해지면서 단순히 귀여운 대상을 넘어 정이 가는 존재가 되어 갑니다. 그렇게 어떤 귀여움은 돌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귀여움은 지친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귀여움은 별것 아닌 순간에 피식 웃게 만들기도 하죠.

이내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귀여움은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돼요. 그저 보고 웃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내 곁에 두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2. 귀여움은 어떻게 지갑을 열게 만들까

귀여운 것을 보고 난 뒤 우리의 행동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일단 한 번 더 쳐다봐요. 사진을 확대해보고, 캐릭터의 이름을 검색하고, 공식 계정까지 들어가 보죠. 그러다 키링이나 인형, 스티커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슬그머니 가격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하나쯤 사도 되지 않을까?”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정신 차리면 결제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경험,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그렇다면 ‘귀엽다’는 감정은 언제부터 ‘갖고 싶다’는 마음이 되는 걸까요?

귀여움은 물건과 나 사이의 관계를 만듭니다

보통 물건은 기능으로 구분됩니다. 컵은 물을 마시는 데 쓰고, 파우치는 물건을 담으며, 열쇠고리는 열쇠를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여기에 캐릭터가 붙는 순간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집니다.

굿즈가 가진 힘 : 귀여움의 소비 심리
소비 욕구를 부르는 귀여운 캐릭터 굿즈들...!

평범한 머그잔 하나라도 좋아하는 캐릭터의 얼굴이 그려져 있으면 집에 비슷한 컵이 여러 개 있어도 괜히 눈길이 갑니다. 캐릭터 인형에는 이름을 붙이고, 여행을 갈 때 데려가 사진을 찍기도 해요. 또 음식을 먹기 전 예절샷도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가방에 매달아둔 키링이 보이지 않으면 물건 하나를 잃어버린 것 이상의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캐릭터는 제품 위에 덧붙은 장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물건에 성격과 이야기를 더하고, 소비자가 그 물건에 자연스럽게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요. 같은 기능을 가진 물건이라도 어떤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예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긴 정과 애착은 바로 구매로 이어질까요?

의외로 소비 과정은 생각보다 이성적입니다!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캐릭터 상품의 구매 요인을 살펴본 연구에서도 캐릭터가 친구처럼 느껴지는 친근감 자체만으로는 구매에 뚜렷한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대신 소비자가 기대했던 즐거움이나 가치가 실제로 충족되는지, 캐릭터가 상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구매 의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됐죠.[5]

즉, 관계구매의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실제로 결제를 하게 만드는 조건은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결제를 결심하는 기준은 '좋아하니까 산다'기보다 '좋아하는데, 내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산다'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만족감과 비용을 저울질하는 가심비 소비
아무리 귀여워도 만족감과 비용을 저울질하게 됩니다.

책상 위에 두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고, 가방에 달면 나다운 느낌이 날 것 같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계기가 될 것 같다는 기대까지 함께 따져보는 거죠.

그래서 귀여운 물건의 가치는 물건 자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을 내 일상에 들여놓았을 때 생길 감정과 경험까지 함께 판단하게 돼요. 그래서 키링과 텀블러, 파우치, 휴대폰 케이스처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캐릭터가 더해졌을 때 구매는 조금 더 쉬워집니다. 새로운 물건을 하나 더 사는 것보다, 익숙한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드는 선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필요한 물건보다 기분 좋은 물건

아무리 귀여워도 값이 지나치게 비싸면 잠시 멈칫하게 됩니다. 이미 비슷한 제품이 집에 있다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캐릭터 굿즈는 대체로 이런 망설임을 절묘하게 파고들어요.

당장 파산할 정도로 비싸지는 않지만, 그날의 기분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가격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