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지정좌석 : 없음

18:00

화장실 바닥에 앉아 있다.

숨이 가빠진다.

눈앞이 흐려진다.

휴대폰이 울린다.

화면에 알림이 뜬다.

퇴근 시간입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매일 이 시각에 뜨던 문구다.

어제도 떴고, 그제도 떴다.

나는 벽에 기댄 채, 화면을 본다.

그 아래, 한 줄이 더 붙는다.

근태 확인이 종료되었습니다.
지정 좌석 착석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읽을 필요가 없는 문장이다.


999번이나 본 문장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출근 의사가 없다니.


나는 오늘 아침부터 이 건물을 다 뒤졌다.
뛰고, 소리치고, 온몸이 젖을 때까지.

처음이었다.

그때, 화면 구석에 숫자가 생긴다.

승인 대기함: 1건

하루 종일 0이었다.

나는 안도한다.
이상하게도.

아직 내 권한이 남아 있다.

이 회사는 내가, 필요하다.

제목은 이렇다.

금일 근태 확인 결과 승인 요청

늘 하던 것이다.
제목만 보면 안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화면이 바뀐다.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18:01

곧바로 한 줄이 더 도착한다.

퇴직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개인 비품 회수 절차를 진행해 주세요.
회수 위치: 외부인 출입구 옆 좌석

퇴직.

나는 그 단어를 오래 보지 않는다.
눈이 다른 곳에 걸린다.

출구 옆 자리.

오늘 하루 종일 찾아다닌 그것.

몸이 먼저 일어선다.

ㅡ

18:09

엘리베이터로 1층을 향한다.

로비.

아침에 매일 오던 로비를, 반대로 가로지른다.
아침엔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로.
지금은 엘리베이터에서, 끝으로.

건물 맨 끝에, 초록색 '출구' 표시등이 켜져 있다.

외부인 출입구.

매일 지나던 게이트는 직원 전용.
이쪽 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가까이 간다.

출구 바로 옆.

책상이 하나 있다.

바로 내 책상이다.

한눈에 알아본다.

책상 위에 물건들이 놓여 있다.

봉지. 김밥 두 줄과 물.
타이.
재킷.

내가 어딘가에 던진 것들이다.
복도 구석에, 계단 모서리 어딘가에.

내가 줍지 않았던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책상 앞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나는 의자에 앉는다.

진짜 퇴직이라고.

내가.

기다린다.

앉았는데 아무 변화가 없다.

허리를 숙여, 책상 밑을 본다.

103호에서는, 앞쪽에서 보았다.

지금은 반대편이다.

흠집이 있다.

숫자가 있었다.


0001이었던가.

아니다.

거꾸로 보니, 다르게 읽힌다.

나는 숫자를 다시 읽는다.

1000

마지막 번호.
999 다음의 숫자.

나였다.

책상 다리를 짚고 일어난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 간신히 선다.

그때, 휴대폰에 알림이 온다.

퇴직자 개인 비품 회수 절차.
처리 번호 1000.
이름: 초인후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1분 만에 퇴직자라니.

대상자: 초인후
부서: 인사팀
처리일: 금일 18:01
승인자: 초인후.

조금 아까 내가 눌렀다.
제목만 보고.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봤다.
그다음엔 부서를 봤다.


승인자는 나였다.

화면 아래에 문서가 하나 더 있다.

근거 규정: 출근 인정 기준.

적용 대상: 전 직원
예외: 없음
규정 작성자: 초인후

규정 작성자.

나는 그 줄을 오래 본다.

ㅡ

10년 전.

회의실이었다.

화상회의 중이었다.

화면 속 그 남자.

본사의 본부장.

지금도 목소리가 뚜렷하게 떠오른다.

"관리자 한 명만 남기고, 전원 정리하세요."

나는 놀란 채 물었다.

"전원이, 얼마죠?"

"최대 천 명입니다."

"기한은요?"

"없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손으로 해야 한다.

"끝까지 남는 관리자는요?"

"회사를 넘겨받게 될 겁니다."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무능한 사람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건 잔인한 게 아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방법은 뭐가 좋을까요."

화면 속 남자가 물었다.

"직접 해고하면, 이슈가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사유도 하나씩 찾아야 하고, 이의 신청도 받게 됩니다."

"그럼?"

"본인이 출근하지 않은 걸로 하면 됩니다."

처음 통보하던 그 순간, 손이 떨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떨리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자리를 빼죠."

"그게 무슨 말이죠?"

"책상부터 없애죠. 못 찾으면.

출근 거부로 퇴직 처리하면 됩니다."

잠깐의 침묵.

"간단하군요. 찾으면 된다."

나는 웃었다.

"찾으면, 남는 겁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10년 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말.

내가 만든 규칙의 요약이었다.

기록에서는, 내 말이 다듬어져 있다.

출근 거부는, 출근 의사 미확인이 되어 있다.

ㅡ

예외 조항은, 쓰지 않았다.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못 찾을 리 없었으니까.

한참, 화면을 본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목표는 위에서 내려왔다.
나는 방법을 만들었을 뿐이다.

999명, 모두 규정대로 처리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화면 속 글자가 한 줄씩 사라진다.

처리 번호 1000.

처리 완료.

사원 정보: 없음.

AI 코퍼레이션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30년이다.

그 끝에 받은 마지막 메시지가, 접속 불가다.

규정대로다.

찾지 못한 사람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한 말이다.

떨리던 손과 발이 멈춘다.

내가 찾던 자리가 출구 옆에 있었다.

나는 앉았다.

하지만 남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나가는 자리였다.

책상 위 봉지 속 김밥은 그대로다.
배는 고프지 않다.

출구는 바로 옆이다.
외부인이 나가는 길.

ㅡ

18:30

나는 봉지를 그대로 두고 일어선다.

재킷과 타이를 챙긴다.

외부인 출입구로 걸어가 자동문 앞에 선다.

문이 열린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출근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 내 자리]

다음 편.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