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무뎌진 얼굴들

오늘도 출근한다.

오늘은, 마지막 출근이다.

로비를 가로지른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걷는다.

30년을 버텼다.

마지막 10년 동안, 999명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일이 끝난다.

엘리베이터 화면에 문구가 뜬다.

근속 만료 당일입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그날.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는다.

이날을 향해 달려왔다.


30년이다.
드디어.

화면이 바뀐다.

지정 좌석: 없음.

층 표시는 없다.

번호도 없다.

처음이다.

추가 정보는 없나?
화면이 곧이어 꺼진다.

잠깐, 멈춰 선다.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시험은, 원래 제일 어려운 법이다.

대표의 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내 자리를 매일 찾았다.
오늘이라고 못 찾을 리 없다.

ㅡ

09:10

9층부터 간다.

어제 앉은 자리가 오늘도 자리일 리는 없다.
그래도 몸이 먼저 걷는다.

책상 한 줄을 훑는 데 걸리는 시간을, 몸이 익혔다.

오늘은, 훑을 책상이 없다.

층 전체가 비어 있다.

하루 만에 이게 가능한가.

책상이 있던 자리마다 바닥에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다.

기둥은 그대로다.
저 기둥 옆이, 예전 내 자리였다.

책상은, 없다.

철거인가.
아니다.
마지막 날이니까.

근속 만료 전 최종 현황 확인.

그 제목이 떠오른다.
최종 확인이니까,

책상까지 다 치워놓고 찾게 하는 거다.

ㅡ

11:30.

지하실로 내려간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처음 통보를 전하던 날.

서류를 든 손이 떨렸었다.

손이 그날을 기억한다.

끝까지 내려간다.
먼지 쌓인 바닥에, 자국만 있다.

이곳도 텅 비었다.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

돌아선다.

ㅡ

12:00.

손에는 언제나처럼

김밥 두줄과 물 한병이 있다.

배는 고프지 않다.

2층부터 오른다.

빠르게 방을 확인한다.

3층.

4층.

5층.

..?

모든 방에 책상이 없다.

내 책상뿐 아니라 모든 것이 없다.

마치 작정하고 없앤 듯이.

엘리베이터는 저 멀리 끝,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가까운 비상구.

계단을 뛰어오른다.

6층.

휴게실.

수많은 것들이 붙어 있던 곳.

그 어떤 공지문도 없다.

뭔가 이상하다.

ㅡ

13:10

걸음이 빨라진다.

나는 이곳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가 남아야 한다.

그동안 뛴 적이 없다.

회사 안에서 뛰는 건,

대표의 모습이 아니니까.

빠른 걸음은 어느새

나를 뛰게 만들고 있다.

땀이 난다.

호흡이 빨라진다.

몸이 무겁고, 손에 들린 것이 거추장스럽다.

봉지를 바닥에 던진다.

밥 따위 하루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봉지 안의 김밥이 떨어져 나온다.

굴러서, 복도 구석에 놓인다.

나는 줍지 않았다.

ㅡ

14:20.

옥상.

이곳일 줄 알았다.

바람이 차다.
난간뿐이다.

텅 빈 옥상.

여기서 전화를 받던 날이 있었다.
그날도 바람이 찼다.

오늘은 받을 전화도, 앉을 곳도 없다.

난간으로 걸어간다.

손을 얹는다.
쇠가 차갑다.

아래를 본다.

저 멀리 늘어선 건물들.

오늘따라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도시는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했을까.

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선다.

내가 찾는 건 딱 하나, 앉을 자리다.
떠날 자리가 아니다.

몸이 무겁다.

넥타이를 잡아 뜯는다.

이날을 위해 사둔 넥타이였다.

풀어서 손에 쥔 채, 뛴다.

ㅡ

15:19

103호.

198번을 헤맨 끝에 찾았던 방이다.

문을 연다.

이곳에도 없다.

방 한가운데에, 바닥 자국만 있다.
책상다리가 놓였던 네 개의 자국.

그날, 책상 밑에서 본 흠집이 떠오른다.

숫자가 있었다.

0001이었던가.

그 흠집을 남긴 책상도, 이제 없다.

"어디냐고."

누군가에게 닿지 않을 소리를 외친다.

목소리가 방에 부딪히고 돌아온다.

"어디에 있냐고!"

대답은 없다.
알림음도 없다.

누군가는 듣고 있겠지.

AI코퍼레이션은.

손이 떨린다.

이렇게 떨린 건 10년 전 그날뿐이었다.

떨리던 손이, 오늘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다른 손으로 손목을 붙잡는다.

아직 시간은 있다.

ㅡ

16:12.

복도 시계가 숫자를 가리킨다.

며칠 전, 이 시각에 앉았다.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앉았다.

그 시간을 넘어간다.

그냥, 지나간다.

괜찮다.

찾으면 된다.
찾으면 남는다.
찾으면…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때, 그 문장이 떠오른다.

※ 근속 만료일 당일 출근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본 기준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한 줄만, 이상하게 또렷하다.

휴대폰을 연다.

승인 대기함: 0건

늘 쌓여 있던 것이 하나도 없다.

승인.

그것은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권한이었다.

ㅡ

16:50

17층, 사내 방송실.

마이크 앞에서 말한다.

천장 스피커가 울린다.

“999”

내 목소리가 건물에 울린다.

"목표 달성 확인. 해냈잖습니까!"

대답은 없다.

"잔여 확인 대상. 접니다. 이제 다 끝났잖아요."

"내 차례라고 했잖아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반응도 없다.

"규정대로라면… 규정대로라면, 이제 마쳐야죠."

기둥도, 벽도, 천장도 조용하다.

나는 안다.

이럴 때 시스템이 하는 일은 하나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

목표는 달성했다.

10년에 걸쳐.
그런데 왜, 앉을 곳이 없지.

남은 시간을 뛴다.

손에 쥔 타이를 복도에 내던진다.

덥다.

쟈켓도 벗어던진다.

6시까지, 이제 한 시간 남짓 남았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지하 1층을 누른다.

남은 곳은, 하나다.

ㅡ

17:40.

B1.

복도 끝, 화장실.

3번 칸.

여기다.

드디어 왔다.

가장 나중으로 미뤄둔 곳이다.

내 이야기의 끝이, 이래선 안 되니까.

온몸이 젖었다.

처음이다.

회사에서 이렇게 된 건.

절규하며 외친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

나는 찾았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안은.

비어 있다.

변기 자리만 남아 있다.

그 옆에 있던 책상이 없다.

마지막 내 자리는 여기일 거라 믿었다.

그날 아침, 나는 이 문 앞에서 투덜거렸다.
이런 장난 같은 배치가 어디 있냐고.

그때는 짜증 났던 자리.


지금은, 앉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내 자리.

나의 모든 시간과 맞바꾼 자리.

앞으로 남은 인생이 놓일 내 자리.

30년 동안, 그걸 향해 달려왔다.

나는 텅 빈 화장실에 대고 말한다.

"내 자리가,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어요."

목소리가 갈라진다.

"혹시, 아시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허공을 향해 말한다.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게 전부다.

등을 벽에 대고 미끄러져 앉는다.

바닥이 차갑다.

17:59.

자리가 아닌 곳에 앉는 건,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 내 자리]

다음 편. <내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