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좌석: 없음

지난 이야기 - 안내문이 사라진 날

오늘도 출근한다.

매일 내 자리는 바뀐다.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

엘리베이터 화면에 문구가 뜬다.

근속 만료까지 D-1.

엿새가 지났다.

엿새 동안, 나는 매일 내자리를 찾았다.

아슬아슬한 날에도 결국 찾았다.

요령이 생겼다.

발로 찾는 법.

책상 한 줄을 훑는 데 걸리는 시간을, 몸이 익혔다.

확인 대상 층: 9층.

9층.

예전에 인사팀이 있던 층이다.

책상 배치는 바뀌었어도, 기둥 위치는 그대로다.

저 기둥 옆이, 예전 내 자리였다.

이 층은, 눈을 감고도 걷는다.

내 책상을 찾았다.

09:48.

표시등이 켜진다.

지정 좌석 — 배정 완료.

이번 주 들어, 가장 빠르다.

며칠 전의 16:12가, 아득하게 멀다.

의자에 앉아 숨을 내쉰다.

손을 본다.

어제까지는 한번씩 떨려왔는데, 오늘은 아니다.

근태 확인이 진행됩니다.
지정 좌석 착석이 감지되었습니다.
출근이 인정되었습니다.

인정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말을 듣는 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하루다.

하루만 지나면 된다.

30년.

다 왔다.

오전 업무를 시작한다.

승인, 승인, 승인.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60분.

나는 봉지를 연다.

자리에 앉아 먹으니, 김밥도 음식 같았다.

내일이 지나면 김밥 말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

김밥도 나쁘진 않지만.

식사를 마치고, 창가로 간다.

9층 창가에서는, 도시가 보인다.

어제와 같고, 내일도 같을 풍경이다.

내일이면, 이 창가도 마지막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쉽지 않다.

아쉬워할 만큼 오래 본 적이, 없으니까.

자리로 돌아온다.

오후가 되자, 승인 대기함에 생전 처음 보는 항목이 떠 있다.

근속 만료 전 최종 현황 확인 요청.

심장이 철렁했다.

이걸 기다렸다.

이전에는 승인요청이 오는 모든 내용을 읽었다.

두 번씩, 세 번씩, 샅샅이.

언젠가부터는, 제목만 보고 승인했다.

어차피 나에게는 승인 말고 다른 권한은 없었으니까.

오늘은, 천천히 읽어보기로 한다.
마지막이니까.

화면이 열린다.

전환 목표: 관리자 1인을 제외한 전 직원 (총원 최대 1,000명)
[보상 지급 기준 안내]
대상: 근속 30년 도달자 중, 전환 목표 달성자
내용:
① 잔여 관리자는 대표 권한을 승계한다.
② 평생 고문자격으로 연금을 지급한다.
③ 매년 일정 지분과 배당을 보장한다.
지급 시점: 근속 만료일 최종 확인 직후
※ 근속 만료일 당일 출근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본 기준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1인 CEO.

평생 연금.

지분 배당.

그게, 내가 30년을 버틴 이유였다.

인사팀 신입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엔, 이 회사의 대표로 남는다.

내일부터는, 점심 메뉴도 직접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정해준 시간이 아니라.

내가 정한 시간에.

관리자 1인을 제외한, 전 직원.

그 한 명이 누구인지는, 따로 적혀 있지 않다.

적을 필요도 없다.

이제 나밖에 없으니까.

세부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 아래로, 기록이 나타난다.

가장 오래된 것부터.

이름: 한상우 / 부서: 영업 2팀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자: 초인후
처리일: 2038.04.18

한상우.

이 사람은, 기억난다.

10년 전, 내가 처음 승인한 사람이다.

마지막 날,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인후팀장님. 제 자리가,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더라고요."

말하면서도, 자꾸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어딘가에 자기 책상이 놓여 있을 것처럼.

"혹시, 아시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애써 떨리는 손을 모른 체했다.

이름: 오지현 / 부서: 총무팀
처리일: 2038.08.07

오지현.

같은 해 여름이었다.

이 사람은,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옆팀이었다.
점심시간 샌드위치를 들고 있던 사람.

가끔 나에게 샌드위치를 사주곤 했다.

그리고 나는 승인했다.

스크롤을 내린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부서: 영업 3팀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부서: 법무팀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부서: 총무팀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그때는, 부서로 기억했다.

총무팀은 마지막 인원이 처리된 뒤, 부서명만 남았다.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동화 시스템이 더 말끔하게 처리하게 됐으니까.

스크롤이 빨라진다.

처리 번호 871.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처리 번호 872.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처리 번호 873.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이름도, 부서도 보이지 않는다.
숫자와, 한 줄.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자: 초인후.

기록이 바뀐 건지,

내가 보는 방식이 바뀐 건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이름을 봤다.

그다음엔 부서를 봤다.

나중에는, 숫자만 남았다.

자동화 시스템이 확장될수록, 자리는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자리를 찾았고,
누군가는 끝내 찾지 못했다.

자리를 못 찾으면, 출근 의사 없음.

출근한 사람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렇게 처리되는 것이다.

마지막 쪽으로 간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둘은 나와 함께 이 작업을 정리해 온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마저도 사라졌다.

하나는,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다른 하나는, 끝까지 외쳤다.

회사가 자기에게 이렇게 할 수 있냐고.

자기 자리가 안에 있다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처리 번호 : 999
사유: 출근 의사 미확인.
승인: 초인후.

처리 번호.

처음에는, 그게 사람이었다.

어느새 보니 그냥, 숫자처럼 보였다.

목표 수치.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다.

나는 해냈다.

찾으면 남는다.

그리고 나는 매일 찾았다.

지금까지.

한참 동안 오래된 기록들을 넘기다, 오후 업무를 마친다.

승인, 승인, 승인.

여섯 시가 되면, 퇴근 문구가 뜬다.

퇴근 시간입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노트북을 덮으려는데, 화면에 한 줄이 더 뜬다.

누적 처리 인원: 999.
목표 달성 확인.
잔여 확인 대상 : 1명.

나는 그 마지막 줄을, 오래 본다.

잔여 확인 대상.

드디어, 내 차례였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 내 자리]

다음 편. <지정 좌석: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