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 추어탕은 ‘일부 성인 남성만 먹는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인식에 균열을 낸 게 남원식 추어탕이에요. 미꾸리를 익힌 뒤 살만 체에 걸러 깔끔하게, 된장에 버무린 시래기로 구수하게, 들깨로 걸쭉하게. 한국 사람이 ‘추어탕’ 하면 떠올리는 기본값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첫 번째 대중화였죠.
그로부터 60년. 추어탕은 여전히 남원을 대표하는 보양식입니다. 다만 추어가 쓰이는 자리는 그 한 그릇에 머물러 있어요. 추어탕은 복날이나 몸이 허할 때, 특별한 날에만 가끔 찾는 음식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사단법인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의 행보를 보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사업단은 ‘미꾸야’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추어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상품을 하나씩 개발했습니다. 2023년부터 3년 동안 만든 17가지 상품을 늘어놓으면 보양식 추어탕 옆에 해장국, 육개장, 국수, 만두, 전골 밀키트, 과자, 초콜릿이 나란히 섭니다. 사업단이 내건 비전도 ‘추어 식품의 대중화’입니다. 60년 만에 다시 시작된 대중화라 부를 만합니다.
추어를 먹는 자리가 늘어나면, 무엇이 같이 달라질까요?

보양식 온추어탕 옆에 선 남원추어 미꾸야 상품. 해장국, 어탕국수, 한우곱창전골, 한판불고기, 꾸이랑이 아침 식탁부터 아이 간식까지 추어의 자리를 넓혔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소마코 편집팀 재구성
1. ‘보양식’이라는 이미지가 추어를 먹는 때를 한정했다
사업단이 상품 개발에 앞서 한 일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남원 지역 외식업체와 제조업체, 양식 현장, 그리고 수도권과 전국 유통업체까지 네 갈래로 돌았죠. 결론은 네 줄로 요약됩니다. 젊은 세대가 추어를 선호하지 않는다. 추어탕 말고는 메뉴가 거의 없다. 살아 있는 추어를 처음부터 손질하는 전통 방식 그대로는 여러 제품으로 가공하기 어렵다. 원물 공급이 불안정하다.

미꾸야 상품을 만든 사람들, 일명 ‘추벤저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앞의 세 문제는 서로 이어져 있어요. 그 한가운데에는 추어를 ‘특별한 날의 보양식’으로만 보는 인식이 있습니다. ‘보양식’이라는 이미지가 먹는 때를 한정하고, 그것이 상품의 확장성에 한계를 만든 셈이에요.
생산자는 ‘몸에 좋은 전통 음식’을 팔고 있었지만, 소비자는 ‘특별한 날에 어른들이 먹는, 손질이 복잡한 음식’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의미는 만든 쪽이 아니라 보는 쪽이 정하거든요.
그래서 사업단은 상품 개발의 방향을 두 갈래로 나눴습니다. 한쪽은 추어를 좋아하는 기존 소비층을 위한 상품, 다른 한쪽은 추어를 잘 모르거나 거부감이 있는 소비층이 부담 없이 처음 맛볼 수 있게 만든 상품이에요. 보양식을 찾는 손님은 계속 맞이하면서, 보양식을 찾지 않던 손님도 집어 들 수 있는 자리를 더 마련한 겁니다.

미꾸야 온추어탕. 화학조미료 없이 천연 재료로 맛을 내고, 국내산 토하를 넣어 텁텁하지 않고 개운하게 만들었다. 보양식 추어탕의 자리를 지키는 상품이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원래의 자리와 새로 더한 자리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보양식의 원래의 자리를 지키며 그 옆에 새로움을 더했다. / 출처 = 소마코 편집팀 정리
추어를 멀리하던 소비자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추어탕이 아니라, 익숙하지만 색다른 모습으로 부담 없이 추어를 처음 만나는 경험이었다.
2. 익숙하지만 색다른 모습으로 다섯 자리를 더했다
사업단은 3년 동안 세 단계로 나눠 접근했습니다. 첫해에는 추어라는 원물을 다루기 쉬운 형태로 만들고, 추어탕의 장점을 살린 상품부터 여러 방식으로 시험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상품 종류와 판매 채널을 최대한 넓혔고, 마지막 해에는 시장 반응을 바탕으로 상품을 검증하고 다듬었죠. 그 결과가 17개의 상품인데, 이걸 단순 카테고리별로 볼 것이 아니라 ‘어느 진열대에서 추어와 소비자를 만나게 했나’로 다시 읽으면 설계가 보입니다.
첫 번째 자리는 아침 식탁이에요. 남원추어 해장국과 육개장은 추어를 추어탕이 아닌 새로운 탕으로 맛보게 하는 색다른 상품입니다. 늘 먹던 해장국, 육개장 한 그릇 안에 추어가 들어 있으니, 아침상에서도 부담 없이 추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보양의 속성은 그대로 살리면서, 추어를 먹는 때에 아침을 더했습니다.

남원추어 해장국. 아침 속풀이 한 그릇으로 추어를 만나는 상품이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두 번째 자리는 라면 옆 간편식 매대입니다. 남원추어 어탕국수는 라면처럼 끓이기만 하면 되고, 추어탕 블럭은 뜨거운 물만 부으면 추어탕 한 그릇이 됩니다. 소비자가 추어에 대해 품고 있던 ‘손질이 복잡한 음식’이라는 인상을 조리 과정에서부터 덜어냈습니다.

남원추어 어탕국수. 라면처럼 끓여 먹는 추어 국수로, 간편식을 고르던 손에 추어를 쥐여 준 상품이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세 번째 자리는 주말 저녁 식탁. 한우곱창전골, 해물전골, 마라전골은 냄비 하나에 끓여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밀키트입니다. 추어탕 한 그릇이 각자 앞에 놓이는 음식이라면, 전골은 가운데 냄비를 두고 함께 나누는 음식입니다. 덕분에 추어는 가족이나 친구와 모이는 저녁 자리에도 오릅니다.

남원추어 한우곱창전골 밀키트. 남원산 미꾸라지가 들어간 소스를 함께 담아, 여럿이 둘러앉는 전골 냄비에 추어를 넣었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네 번째 자리는 냉동고. 한판불고기, 아란치니, 납작만두로 국물 요리가 아닌 반찬과 한 끼 식사에 추어를 넣었습니다. 추어를 잘 모르거나 선입견이 있는 10~20대를 떠올리며 기획한 상품들입니다. 불고기와 만두, 아란치니는 젊은 세대에게 이미 친숙한 메뉴라, 낯선 재료인 추어도 아는 맛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다섯 번째 자리는 아이 간식. 꾸이랑, 젤리, 캔디, 그리고 브랜드 마스코트 캐릭터인 미꾸야와 추냥이를 본뜬 초코팝으로 아이들이 즐겨 찾는 간식 매대에 추어 브랜드를 올렸습니다. 추어를 아직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미꾸야’라는 캐릭터를 먼저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 간식들은 추어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고 재미있게 다가가기 위해 기획한 상품입니다. 맛을 설명하기 전에 친근함부터 건네는 거죠.

미꾸야와 추냥이 초코팝. 캐릭터로 추어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굿즈형 상품이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그렇다면 추어탕의 재료였던 추어를 어떻게 국수와 전골, 불고기와 과자에까지 넣을 수 있었을까요?
답은 추어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사업단은 첫해부터 남원산 추어를 ‘남원추어 페이스트골드’라는 소재로 표준화했어요. 살아 있는 추어를 매번 처음부터 손질하는 대신 소재로 만들어 두면, 품질과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넣을 양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소재에서 여러 모습의 상품이 나올 수 있게 된 겁니다. 사업단이 밝힌 각 제품들의 추어 페이스트 함량은 해장국 10%, 어탕국수 13%, 전골류 6%, 한판불고기 4.5%, 꾸이랑 1.7%입니다. 함량은 제품의 특성과 레시피에 따라 정해집니다. 숫자를 보면 같은 소재가 국물 요리부터 과자까지 제품에 맞춰 양을 달리하며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소재 하나에서 다섯 가지 모습으로. 남원추어 페이스트골드에서 뻗어 나온 일상의 다섯 자리.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자료, 소마코 편집팀 정리
진열대는 여러 곳으로 늘었지만, 브랜드는 하나로 묶었습니다. 국과 탕 파우치부터 과자 봉지까지 ‘미꾸야’ 브랜드 로고를 그대로 달았거든요. 브랜드 미꾸야는 ‘추어의 맛있는 변화를 선도해 나아갑니다’라고 약속합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은 남원의 추어를 담백하고 개운한 맛으로, 더 간편하고 특별하게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죠. 어느 진열대에서 처음 만나든 같은 미꾸야 로고를 보게 되니, 흩어진 다섯 자리가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쌓입니다.
소재 하나로 추어는 다섯 가지의 새로운 모습이 되었고, 미꾸야라는 브랜드 아래 다섯 자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3. 기존 시장을 축으로 방향을 틀자 새 손님을 만났다
진열대가 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경쟁 상대입니다. 추어탕집의 경쟁자는 옆 동네 추어탕집이지만, 남원추어 해장국은 편의점 해장국과, 어탕국수는 라면과 견주게 됩니다. 추어는 ‘기존 추어탕 시장’에 더해 ‘아침 국밥 시장’, ‘간편면 시장’, ‘밀키트 시장’에도 서게 된 거죠.
만나는 사람의 폭도 넓어집니다. 사업단은 해마다 다양한 식품박람회에 참가하여 완판을 이어 왔고, 남원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인 춘향제와 흥부제 때 미꾸야 부스는 늘 북적입니다. 그 밖에도 이색 추어 요리 대회와 쿠킹 클래스로 다양한 손님을 만났습니다. 모두 ‘추어를 먹는 사람’을 넘어 ‘추어를 아직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향한 자리입니다. 낯선 음식일수록 긴 설명보다, 한 입의 즐거운 경험이 먼저일 때가 많거든요.

남원 춘향제 ‘방자마당’의 미꾸야 부스. 축제장에서 손님이 추어 상품과 캐릭터를 함께 만나는 자리다. / 출처 = 남원추어식품클러스터 사업단
다만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양식을 버리고 일상식으로 가야 한다’고 읽으면 오해입니다. 보양식 추어탕은 지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해장국과 육개장도 보양의 가치를 그대로 품고 있거든요. 새로 늘어난 자리는 모두 그 옆에 더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브랜드에 던져볼 질문이 세 개 생깁니다. 우리 제품은 지금 어느 진열대에 있나요? 그 진열대가 주는 이미지가 먹는 때를 한정하고 있진 않나요? 그리고 지금 자리 옆에 더할 수 있는 진열대는 어디인가요?
자리가 늘면 새 경쟁자와 새 손님을 만난다. 이때 필요한 건 기존 시장을 포기하는 변화가 아니라, 기존 시장이라는 단단한 축을 바탕으로 방향을 트는 영리한 피벗이다.

남원 광한루. 상품이 여러 진열대로 넓어져도 이야기의 출발점은 여전히 남원이다. / 출처 = 남원시
돌이켜보면 남원추어 미꾸야의 17가지 상품은 신제품이라기보단, 추어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자리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보양식 한 그릇에 더해 아침 식탁, 라면 옆 간편식 매대, 주말 저녁 식탁, 냉동고, 아이 간식까지. 과거 남원식 추어탕이 ‘추어는 일부 성인 남성만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에 균열을 만들었다면, 이번 3년은 보양식 추어탕 옆에 ‘일상의 한 끼’를 더한 두 번째 대중화를 만든 셈이죠.
그러니 브랜드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더 좋은 추어탕을 만들까’에 더해 ‘추어를 또 어느 자리에 둘 수 있을까’입니다. 향토 음식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건 대표 상품 하나에 기대고 있는 모든 브랜드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제품이 놓일 수 있는 자리는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