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님도 있지만, 대부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먹는 ‘한강라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번에 오뚜기가 ‘한강라면’을 신상품으로 출시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한강라면 - 오뚜기

한강라면 – 오뚜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엉뚱한 질문 하나가 떠오르더라고요. 한강라면은 한강의 것일까요, 라면의 것일까요? 한강이라는 장소가 맛의 절반을 만든다면 한강의 것이고, 결국 끓여 먹는 건 라면이니 라면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을 붙잡고 몇 가지 사례를 따라가 보면, 공간을 마케팅에 쓰는 방식이 생각보다 여러 갈래라는 걸 알게 됩니다.

1. 이름은 소비자가 먼저 지었다

한강라면이라는 말은 기업이 만든 게 아닙니다. 2019년 한 보도에 따르면 한강 주요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이 봉지라면과 호일그릇을 묶은 즉석조리라면이었습니다. 한강라면이 유명해진 것은 라면이 특별해서라기보다는 한강이라는 공간과 결합하여 라면을 먹는 것 이상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한강라면 한 젓가락 면발 사이로 보이는 한강의 풍경은 라면 한 그릇에 이런 호사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색다른 느낌입니다. 사람들이 이 장면을 반복해서 즐기고 사진으로 남기면서 하나의 이름이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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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이 장면은 국경도 넘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는 한강 피크닉을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대표 체험으로 소개하고, 한강 라면 조리기를 만든 국내 중소기업은 해외에서 8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습니다. 모스크바에는 벽에 ‘HANGANG RAMEN’ 네온사인을 걸고 그 아래 즉석조리기를 둔 라면 매장까지 생겼고요. 한강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도 한강의 장면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에요. 여행 사이트에도 한강에서의 라면먹기 체험이 포함될 정도입니다.

Hangang Ramen Picnic at Yeouido - creatrip.com

Hangang Ramen Picnic at Yeouido – creatrip.com

2. 오뚜기는 그 장면을 봉지에 담았다

오뚜기의 새 제품을 보면서, 그 라면을 한강에서 먹었기에 특별해진 것일 텐데 라면만으로 한강을 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강라면은 9월 9일 전국 편의점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오뚜기는 그래서 즉석조리기로 끓이는 환경에 맞춰 면이 쉽게 퍼지지 않도록 조정하고, 한강에서 토핑으로 많이 곁들이는 청양고추와 계란을 골라 기존보다 크고 계란 함량을 높인 전용 계란블럭으로 넣었다고 합니다. 포장에는 제품명을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함께 적었습니다. 과연 그 감성이 제품의 특성으로 잘 전달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광고도 같은 방향입니다. 일반인 모델의 일상 에피소드를 담았고, 외국인이 등장하는 편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맛을 자랑하기보다 ‘한강에서 먹던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데 힘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4개 언어 표기도 한강의 기억을 가진 외국인 관광객까지 겨냥한 선택으로 읽히죠.

3. 이름의 주인을 법에 물어보면

이 소식을 접하고 KIPRIS(특허·상표 정보 검색 사이트)에 접속해 ‘한강라면’이라는 상표는 어떤 사람들이 출원했고 어떤 상표들이 등록받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명칭으로 등록을 받은 것은 식당·라면전문점업(43류)의 냄비 캐릭터 상표와 종이 용기·식품 포장재(16류)의 라면 그릇 캐릭터 상표였습니다. 실제로 ‘한강라면’ 문자 상표는 2016년에 한 식품업체가 라면 상품류(30류)로 출원했다가 최종 거절됐습니다. ‘한강’은 널리 알려진 지명이고 ‘라면’은 상품의 보통명칭이라, 둘을 붙여도 어느 회사 제품인지 가려 줄 힘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번 오뚜기도 제품을 출시하면서 ‘오뚜기 한강라면’이란 명칭의 상표를 출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강라면 관련 상표 출원 현황 - KIPRIS

한강라면 관련 상표 출원 현황 – KIPRIS

식당업 상표는 2025년 12월 한 외식기업이, 포장재 상표는 2026년 3월 한 개인이 출원한 것입니다. 오뚜기는 8월 21일 자사 심벌과 ‘한강라면’ 글자를 결합해 라면·컵라면 등(30류)에 출원해 둔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건 세 건 모두 글자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로고를 함께 묶었다는 점입니다. 상표 실무에서는 이런 결합상표가 등록되더라도 보호받는 건 로고와 디자인 전체이지, ‘한강라면’이라는 단어 자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른 업체나 편의점이 그 말을 써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죠. 가게는 가게대로, 그릇은 그릇대로, 면은 면대로 한강라면의 한 조각씩을 붙잡고 있지만, 정작 이름은 누구의 손에도 쥐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4. 한강의 것으로, 라면의 것으로

같은 장면을 쓰는 방향도 갈립니다. 한쪽은 라면을 먹던 한강 같은 공간의 느낌을 옮겨 옵니다. 편의점 CU는 한강버스 선착장 7곳에 라면 특화점 ‘라면 라이브러리’를 열었습니다. 대형 라면 진열장과 즉석조리기를 갖춘 체험형 매장인데, 앞서 문을 연 홍대상상점은 개점 후 약 1년 4개월 동안 누적 30만 개를 팔았습니다. 일반 편의점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해요. 장소를 꾸미고 사람을 그곳으로 부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공간 마케팅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장소입니다.

다른 한쪽은 한강에서 먹는 라면의 느낌을 담습니다. 오뚜기의 한강라면이 그렇습니다. 사람을 장소로 부르는 대신 장소를 상품에 담아 집으로 들여보내려 한 것이죠. 오뚜기가 올해 3월 내놓은 진밀면도 같은 방식입니다. 부산 향토 음식인 밀면을 집에서 즐기게 만든 이 제품은 출시 10일 만에 130만 개가 팔렸고, 회사는 지역 맛집 메뉴를 집에서 즐기려는 ‘로컬 미식’ 흐름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부산에 가지 않아도 부산을, 한강에 가지 않아도 한강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상품이고, 장소는 이야기의 배경이 됩니다.

5. 답은 장면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강라면은 한강의 것일까요, 라면의 것일까요? 사례를 따라와 보니 둘 다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은 돗자리를 펴고 라면을 끓이던 사람들이 먼저 만들었고, 법도 그 단어를 누구 한 곳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CU와 오뚜기, 상표를 낸 이들 모두 그 장면을 각자의 방식으로 빌려 왔을 뿐이죠. 브랜드가 공간을 새로 지은 게 아니라, 고객이 이미 만들어 둔 장소를 빌린 공간 마케팅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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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장소에는 힘과 한계가 함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의 기억에 쌓여 있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게 힘입니다. 한계는 집에는 한강이 없다는 점이고요. 오뚜기 관계자도 한 취재에서 맛 자체보다 한강에서 먹는 경험이 좋은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집에서 끓인 한강라면이 강바람과 야경까지 데려올 수는 없으니, 결국 집에서 먹어도 만족스러운 맛이 뒤를 받쳐야 할 겁니다.

6. 공간이 제품에, 제품이 공간에

이 사례를 조금 더 넓혀 보면 두 개의 화살표가 보입니다. 공간이 제품으로 들어가는 방향과, 제품이 공간으로 들어가는 방향입니다. 한강라면과 진밀면이 앞의 경우라면, 라면 라이브러리와 모스크바의 라면 매장은 뒤의 경우죠. 두 방향은 따로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키울 수 있습니다. 한강에서 라면을 먹어 본 사람이 집에서 한강라면 봉지를 집어 들고, 그 봉지를 본 사람이 다음 주말 한강으로 향할 수도 있으니까요.

공간이 제품에, 제품이 공간에. 뭐 이렇게까지 싶지만, 의외로 우리 소비자들은 집에도 있는 봉지라면 하나에도 굳이 한강까지 나가 줄을 선다는 것을 보면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 결합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생각해볼 만합니다. 새 공간을 짓기 전에, 고객이 이미 우리 제품과 함께 머물며 만들어 둔 장면부터 찾아보는 것. 그 장면이 곧 우리 브랜드의 한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