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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트렌드’라고 뭉뚱그려 일컫는 변화는 조금 더 잘게 쪼개볼 수 있다.
필립 코틀러의 <Principles of Marketing>에 따르면 변화는 ‘1년 이내로 짧게 유지되는 유행(Fad)’, ‘대략 5년 정도 지속되는 중장기적인 트렌드(Trend)’, 그리고 ’10년 이상 계속되는 메가 트렌드(Megatrend)’로 구분할 수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체감상 ‘메가 트렌드’와 ‘트렌드’는 점점 사라지고, ‘유행’만 가득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른 나머지 변화에 적응을 하는 건지 적응을 하는 것에 적응하는 것인지 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마치 3,000원짜리 자장면을 시켰는데 먹을 때는 30,000원, 계산할 때는 300,000원이 된듯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적인 변화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나는 뷰카(VUCA)가 가장 적절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뷰카(VUCA)는 변동성(Voli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Uncertainty), 모호성(Ambiguity)을 뜻하는 영어 단어들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1987년에 워런 버누스와 버트 나누스가 리더십 이론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wikipedia.org 참조). 아주 쉽게 말하면 ‘알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뷰카의 세상에서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트렌드’라는 단어에 목을 매고, 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유튜버나 TV 유명인의 말을 신의 계시처럼 받들고 있다. 나 또한 이러한 현상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홀린 듯 이러한 콘텐츠에 혹하고 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비판적 사고’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한 손에 안전끈을 꼭 쥔 채 수많은 책과 영상을 비판적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와닿은 뷰카 대응법이 몇 가지 있었다. 혹은 그렇게 해석되는 이론과 주장이 있었다. 그것을 공유해볼까 한다.
1. 바벨 전략(Barbell Strategy)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측했고 ‘블랙스완(Black Swan: 검은 백조처럼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단 벌어지면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온다는 개념)’이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한국인에게는 다른 개념으로 더 유명하다. 바로 르세라핌이 부른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다. 안티프래질은 나심 탈레브가 주장한 개념이자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Antifragile>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 충격이 발생했을 때 약화되거나 현상태를 가까스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강해지고 나아지는 것을 안티프래질이라고 한다. 즉 뷰카라는 현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나아지고 더 강해지는 것이 안티프래질이다. 뷰카가 독이 아닌 영양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안티프래질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바벨 전략이다.
바벨 전략은 이름이 말해주듯 쇠막대 양쪽에 끼는 원판을 한쪽은 로우리스크 로우리턴(Low Risk Low Return: 리스크는 낮으나 수익도 적다) 다른 한쪽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리스크는 높으나 수익 또한 크다)으로 끼우는 것이다. 이러한 바벨은 전체적으로 로우리스크 하이리턴(리스크는 낮은데 수익이 크다)을 제공하여 안티프래질을 가능하게 만든다.
특허청에서 안정적인 일(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을 하면서 수입과 결과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연구(하이리스크 하이리턴)를 지속해서 결국 세상을 뒤집어 놓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바벨 전략의 대표적인 예다.
2. 미의식
뷰카의 시대에는 ‘진선미’ 또한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참이 오늘의 거짓(진), 어제의 합법이 오늘의 불법(선), 그리고 어제의 아름다움이 오늘의 추함이 된다(미). 변화의 속도에 비해 느리게 변하는 외부기준에 근거한 진선미이기 때문이다.
전략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How to 미의식 직감, 윤리 그리고 꿰뚫어 보는 눈>이라는 책에서 ‘미의식’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풀어서 말하면 “무엇이 올바른가(진)?”는 논리와 분석과 같은 외부기준이 아닌 직감과 이성과 같은 내부기준을 통해서 판단하고, “무엇이 바람직한가(선)?”는 같은 논리로 법률이 아닌 도덕과 윤리로, 마지막으로 “무엇이 아름다운가(미)?”는 시장조사가 아닌 심미안으로 판단하라고 말이다. 뷰카의 시대는 이처럼 외부기준이 아닌 내부기준을 통해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미의식이라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는 미의식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크게 ‘회화’, ‘철학’, ‘문학’, ‘시’를 꼽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변화에 무력한 외부기준이 아닌 유연하고 단단한 내부기준 즉 미의식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3. 다양성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진화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로버트 찰스 다윈에 따르면 답은 간단하다. 바로 ‘종의 다양성’이다. 추위에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한 생명체, 반대로 더위에는 강하지만 추위에 약한 생명체와 같이 종의 다양성이 확보되면 극심한 환경변화에도 종은 살아남게 된다. 투자 고수들이 자산을 ‘채권’, ‘주식’, ‘부동산’, ‘금’ 등과 같이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투자하듯이 자연도 생명체를 다양한 바구니에 분산투자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는 어떻게 다양성을 확보할 것인가? 나를 여러 명으로 쪼갤 수도 없지 않은가?
종의 다양성을 사고의 다양성으로 치환하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한다. 패션 회사를 다닐 때 “정장은 무조건 입어보고 사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분 덕분에(?) 우리 회사는 남성정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판매에 있어서 많은 기회를 놓쳤다. 북극의 추위를 오랫동안 버텼던 북극곰은 빠르게 사막으로 변하고 있던 환경을 눈치채지 못하고 본인만의 두툼한 털에 갇혀 그대로 쪄 죽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사고의 다양성이 없는 개인은 변화에 무력하고 때로는 직업인으로서 생명도 위협을 받게 된다.
사고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함과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동물이 자연을 원망하지 않듯 우리도 변화라는 자연현상을 원망하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극심한 변화 속에서도 인류는 생존해 왔고 앞으로도 답을 찾아나갈 것이다. 어찌 보면 뷰카는 138억 년의 우주역사라는 맥락에서 보았을 때 꽤나 평범한 혹은 호숫가의 잔잔한 평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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