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정신이 브랜딩이 된 ‘이케아’

2024-03-20

국내에 이케아가 진출한 지 약 10년의 시간이 지난 요즘, 이케아는 신혼부부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되었을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케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데요. 이케아는 놀랍게도 열입곱 살의 청년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가 부모님의 농장 창고에서 창립한 기업입니다.

이케아의 첫 회사 주소지가 된 캄프라드의 고향 집에 있는 가로세로 1m 크기의 농장 창고

IKEA는 자신의 이름인 잉그바르 캄프라드의 이니셜인 I와 K, 농장 이름인 에름타리드의 E, 엘름타리드가 위치한 지역 아군나리드의 A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캄프라드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보다 돈 버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이런 성향 덕분에 열일곱 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창업 초반에 전화기로 주문을 받고 부모님 농장에서 짜낸 우유를 배달해 주는 트럭 기사에게 배송비를 지급하여 고객들에게 물건을 배송하는 방식으로 통신판매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었지만 금세 더 저렴한 가격의 경쟁사들이 생겼고 캄프라드는 아이템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어떤 아이템을 판매할지 고심한 끝에 그는 가구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그의 고향 아군나리드가 울창한 침엽수로 뒤덮인 고장이라 가구 생산에 필요한 목재가 많다 보니 가구 제조업체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제품 매입의 용이성)

② 통신판매업의 특성상 대부분 배송이 쉬운 작은 물건들만 취급하기 때문에 가구를 판매하는 업체는 전무했고, 이것이 이케아의 경쟁력이 될 수 있었다. (시장 경쟁도 낮음)

③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 집을 지으면서 가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스웨덴의 가구값은 41%나 상승하였다. 가구를 싸게 사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는 더욱 커진 것이다. (수요 폭증의 시장 상황)

이케아를 창업한 지 3년째인 1948년, 드디어 이케아는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판매 제품은 의자와 커피 테이블이었는데 이는 대박이 났습니다. 이후에 자신감을 얻은 캄프라드는 스웨덴 전역으로 가구를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에 신문 광고에 제품 홍보 책자를 끼워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케아를 알리기 시작했지만 구매하기 전에 실물을 꼭 확인해봐야 하는 품목인 가구의 특성상 홍보 책자만 보고 전화 주문을 하는 고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1951년 이케아 광고 카탈로그

더 깊은 고민에 빠진 캄프라드에게 한 직원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가구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전시장을 설치하면 어떨까요?” 캄프라드는 그의 말을 바로 수용했고, 그렇게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케아의 쇼룸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1953년에 열린 이케아의 첫 쇼룸

요즘에야 브랜드가 쇼룸을 운영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1953년에 가구 브랜드가 판매점이 아닌 쇼룸을 여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쇼룸이 열린 첫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쇼룸을 방문하면서 대박이 났고, 그 인기가 상상을 초월하여 쇼룸이 위치한 마을이 관광명소로 거듭날 정도가 됐습니다.

쇼룸의 성공으로 이케아는 매년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늘어날수록 커지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케아의 사업 형태는 여전히 ‘통신판매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매출이 늘어날수록 운송 비용과 창고 비용이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고민에 빠진 캄프라드에게 또 다른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디자이너 길리스 룬드그렌은 홍보 책자에 실을 가구 사진을 찍기 위해 가구를 창고에서 꺼내올 때마다 자신의 자동차에 가구를 넣기가 불편하다 생각했고,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는 탁자의 다리를 잘라서 넣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탁자는 트렁크에 쉽게 들어갔고 심지어 트렁크의 공간이 반이나 남았습니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캄프라드에게 조립식 가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얘기했고 캄프라드는 이전에 쇼룸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용했던 것처럼 이 아이디어도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이케아에 방문한 고객들은 쇼룸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은 뒤, 창고에 방문하여 해당 제품을 직접 가져간다. 이는 원가절감에도 도움이 되고 고객에겐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렇게 1955년에 ‘막스’라는 이름의 조립식 탁자를 선보인 이케아는 오늘날까지 조립식 가구를 통해 운송비와 창고비를 절감하여 고객에게 더 저렴하게 가구를 판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짠돌이 정신이 그대로 적용된 브랜드 아이덴티티

캄프라드는 1974년에 <어느 가구상의 유언>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이케아 전사 직원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이케아가 앞으로 꼭 지켜야 할 핵심가치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케아는 보기 좋고 질도 좋은 가구를 가능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싼값에 공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품질은 어디까지나 고객의 생활 형편을 고려하는 수준이 돼야 합니다. 품질을 지나치게 높은 수준에 맞춰서는 안 됩니다. 너무 높은 품질은 의미 없이 가격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그의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케아가 성공하는데 가장 주요하게 작용한 것은 ‘가격’입니다. 캄프라드는 소문난 짠돌이였는데요. 그런 그의 성격이 이케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도 그대로 녹아있어서 이케아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케아는 대부분의 매장을 부동산이 저렴한 외곽지역에 만든다.

사실 원가 절감은 제조 및 유통을 하는 기업이라면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데요. 이케아가 일반적인 기업들과 다른 점은 앞서 소개된 캄프라드의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가를 절감하는 이유가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에게 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가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원가 절감의 방법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앞서 언급했던 조립식 가구를 제공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고 그 외에도 신소재 개발을 통한 원가 절감이나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통용되는 제품 설명서를 제작하여 인쇄비를 절감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이케아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의 가구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캄프라드는 2018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러한 짠돌이 정신은 여전히 이케아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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