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옥의 방



1.2 - 보낼 인간





이상한 침묵


대표님과의 미팅 이후,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이상하게 사무실 공기가 달라졌다.

누가 나를 대놓고 혼내진 않았다.
누가 나를 직접 다그치진 않았다.
그런데 딱 하나,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인사팀은 원래 말이 많은 부서가 아니다.


회사에서는 조용히.

사람들과는 필요한 말만.


말은 '회의'나 '통화'로 많이 하고,

대화는 '조율'을 위해 많이 한다.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기에.


인사팀 안에서는 자주 눈으로 대화했다.

나는 그 눈의 대화가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말을 꺼낼 때마다

내가 꺼져가는 기분이 든다.


말을 잘 ‘안’하면 혼나는 게 아니다.
말을 잘 ‘못’하면 사람들이 꺼려한다.


그게 무서운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조용한 인간’이 되기로 했다.


말을 줄이고, 웃음을 줄이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줄이고.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미 한 번 튄 사람은,
조용해져도 ‘튀었던 사람’으로 기록되는 걸까.







조대리의 “이슈”, “체크”


조대리님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조대리님은 뭐든지 ‘이슈’라고 불렀고

어느 순간마다 항상 ‘체크’라고 말했다.


“조대리, 그 미팅이랑 또 아침에 회의실 있잖아..”

“네. 그 이슈 제가 잘 체크하겠습니다.”


이 대화가 모니터 너머로 살며시 들렸다.

..아침에 회의실?


조대리님은 늘 내 자리 뒤쪽을 지나가며,
모니터 화면을 딱 1초 보고 갔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엔 충분한 1초였다.

그리고 나는 그 1초가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조대리님이 내 자리 앞에 섰다.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서류철은 늘 사람을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신입에게는.


“인후님.”


내 이름을 불렀다.
친근하게 불렀지만 친근하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네.”
“대표님 앞에서 말한 거.”

나는 목이 잠깐 말랐다.


“나쁘단 얘긴 아니야.”
“근데… 회사는 말이야.”
“말이 그 순간 기록처럼 남아요.”


말을 잇는다.
반 박자 늦게.


“그런데 너는 아직…
그 기록을. 할. 때가 아니야.”


그 말은 단순한 충고처럼 들렸지만,
무언가의 경고였다.


조대리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냥 ‘체크’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체크의 대상이 되었다.

회사에서 사람을 가장 빨리 무너뜨리는 건

바로 체크의 대상이 되었을 때이다.




아침신문 2라운드


나는 오늘도 가장 일찍 출근해

빈 회의실에 들어갔다.

신문을 펼쳤다.


보이는 곳에서 읽다가 지적받은 후로는

보이지 않게 회의실에서 이어간다.


적어도 신문을 보는 순간에는

내가 틀린 인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조대리님이었다.


조대리님은

내 신문을 한 번 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봤다.


“야, 너 여기서 뭐 하냐?”

“…신문 보고 있었습니다.”

“신문.”


그는 그 단어를 먼지 털듯 내뱉었다.

“너 지금 회사 와서 신문 볼 때냐.”

“…죄송합니다.”

“접어.

회사에서 그런 거 보지 말고.”

나는 바로 신문을 접었다.


이상했다.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42분이 남아 있었다.


신문을 보는 게

죄가 아닌데,

죄처럼 숨겨야 하는 느낌.

조대리님이 말했다.


“너는 아직 회사가 뭔지 모르는 거 같아.

내가 알려줄게.”

그것이 조대리님의 ‘체크’였다.

나는 ‘이슈’가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알게 됐다.


이 회사에서 필요한 건

‘좋은 회사원’이 아니라,

‘문제없는 회사원’이라는 걸.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업무의 연장


그 주 목요일 오후,
남팀장님이 팀회식을 공지했다.


“오늘… 팀회식 할까?”
신입 왔으니 간단히 가자고.”


‘간단히’란 뭘까?

간단히라는 말은 회사에서 참 어려운 단어다.

회식 장소는 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

그날은 인사지원 담당자부터

대표님의 비서님까지 함께였다.


그 두 여성분은 언제나

조대리님의 양 옆을 차지하고 있는 커피 메이트였다.

커피를 들고 셋이 다닐 때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고기 굽는 연기, 소음, 소주 냄새.
삼겹살집에서는

회사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을 본다.

남팀장님이 잔을 들었다.


“자, 건배.”
“신입 왔으니까 우리 잘해보자.”

“위하여—”
소리가 한 번 울렸다.

“짠하면, 간단히 다들 알아서, 알지?”


간단히. 알아서. 잔을 비워야 한다.

고기가 익었다.
술은 계속 비워져 갔다.

그리고 본게임이 시작됐다.

남팀장님이 나를 봤다.


“인후야. 이제 일주일 되었네.

회사 생활… 할 만해?”


정신이 번쩍 든다.

정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네! 너무 좋습니다.”

이 답을 원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짧게 말한다.

“네.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남팀장님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대리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근데 인후님은,
대표님 앞에서 말도 참 잘하더라고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팀장님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별말 없이 먹다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어. 지금 근처에 있다고?

나 잠깐만 옆에 다녀올 테니까,

이야기들 하고 있어.”

잠시 팀장님 없는 자리가 되었다.


조대리님이 말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말 많이 하는 애들 있죠?
대부분 오래 못 가요.

튀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오래가지.”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동시에 나에 대해 테이블 전체에 뿌린 말이기도 했다.


그 순간 알았다.
이 회식은 밥 먹는 시간이 아니라
‘체크’ 아니, ‘교육’을 위한 업무의 연장이란 걸.


그날 조대리님은 나를 직접 혼내지 않았다.


대신 ‘이런 애다’라는 설명을

사람들 앞에 펼쳐진

고깃집 테이블 위에 잘 보이게 올려두었다.

회사에서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신입의 선택


간단히, 시작한 술자리.

2차는 노래방이었다.


회식이 노래방으로 가는 순간,
그건 이미 ‘간단히’가 아니다.

남팀장님은 술이 꽤 올라왔다.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이름 모를 옛날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웃었다.
조대리님은 박수를 잘 쳤다.
박수를 치는 타이밍이 노래에 맞춰 아주 정확했다.


남팀장님이 기분 좋아하는 포인트를
조대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두 분의 한 손엔 탬버린,

한 손엔 마이크가 쥐어있다.

얼굴은 싱글벙글


시간이 지나자 남팀장님이 비틀거렸다.

옆에 있던 비서분과 지원담당님이 말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물 좀 드세요.”


남팀장님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야, 나 괜찮아.
나 이 정도는…”

그리고 그 순간,
남팀장님이 한 번 크게 휘청했다.


“어, 어!”

다행히 내가 붙잡아드렸다.

잘 일어나실 수 있게 부축을 도와드렸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

3차 가. 3차! 갈 사람은 들어가고!

진짜로~ 편하게!”


그 순간,
나는 군대식 판단을 했다.


‘지금은 물러날 때다.’
1시간 동안 조대리님에게 들은

쓰디쓴 이야기가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또 실수한다.

막내가 늦게까지 있을 자리는 아니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노래방을 나와서 모두가 서 있는 애매한 시간.

인사를 드렸다.


“팀장님…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서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있는 게 좋을까요?”


남팀장님은 눈을 반쯤 뜬 채 대답을 했다.
“어… 아니야~ 늦었는데 들어가야지. 잘 들어가고.”


조대리님은 내 말을 들었다.
아주 짧게 나를 봤다.
눈빛은 건조했다.

그 건조함이 조금 싸늘했다.

“그래, 들어가.”


나는 노래방 앞을 빠져나왔다.
밖 공기가 차가웠다.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실수하기 전에 잘 끝났으니까.’
‘오래 있다가 눈치 없는 사람 될 테니까.’


나는 그게 회사에서 막내로서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게 착각이라는 걸
다음 날에 알게 됐다.





“신입이 먼저 갔대”


다음날 아침,
사무실이 평소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팀장님… 다치셨대."

"3차까지 갔다가 제대로 넘어지셨다는데.”


그리고 그 말이 이어졌다.

“근데 신입이 먼저 갔대. 혼자만.”


내 이름은 안 나왔지만
그 말의 주인공은 나였다.


누군가 내 쪽을 흘끔 봤다.
누군가 커피를 마시다가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남아서 끝까지 함께했고,

그때 집에 간 것은 '나' 한 명뿐이었다.


신입의 ‘눈치’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는 ‘도망’으로 기록되었다.


그 순간 알았다.

회사에서는
그 자리에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나 때는 말이야”


점심 직전,
조대리님이 나를 불렀다.


“인후야. 잠깐 와봐.”

회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매일 아침의 그 회의실.
내가 신문을 펼치던 곳.

이제는 아니지만.


문이 닫히자 공기가 달라졌다.
“너 어제 왜 먼저 갔냐?”


“팀장님께서 가시라고 말씀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가 괜히 있으면 더 실수할까 봐…”


조대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 문장으로 나를 찍어 눌렀다.


“야… 나 때는 말이야.
막내가 상사를 끝까지 챙기는 게 기본이야.”


‘기본’이라는 단어가 강하게 남았다.

그 기본이 내가 몰랐던 기본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팀장님 넘어지셨잖아.
그럼 네가 옆에 붙어서 끝까지 케어했어야지.

내가 집까지 모시고 갔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이냐?”
“회사에서 죄송합니다 말로는
아무것도 안 바뀌어.”


그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봤다.


“너는 아직 회사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아.

제대로 일을 한번 해봐야 할까 봐.”

그 말은 ‘평가’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나는 회사라는 세계에 맞게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너 창고로 가”


그날 오후.
조대리님이 내 자리로 와서
서류 한 장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잠깐 우리 같이 좀 갈까?”

“네.”


그리고 향한 곳은 낯선 곳이었다.


“인후야. 오늘부터 업무 좀 바뀐다.”
“…네?”
“노트북.

창고 쪽 업무 네가 맡아.”


나는 잠깐 멍해졌다.


“제가… 그걸요?”

조대리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좀.. 조용한 데서 기본부터 배워보자.”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티 나게 하지 말고’의 진짜 뜻.


네가 여기 있으면 회사가 불편하다.
그러니까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해보자.


그렇게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배정받은 나의 업무는

‘노트북’을 관리하는 ‘창고’의 일이었다.


내가 꿈꿨던 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케팅이었다.

이제 나는 기계들의 재고를 관리하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아닌, 회사의 선택이었다.





문 앞


창고로 가는 길.
복도는 길었다.
회사 복도는 늘 길다.

문 앞에 섰다.
서늘한 공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에어컨 냄새.
전자기기 열기. 그리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쌓여 있는 먼지.

조대리님이 뒤에서 한마디 했다.

“똑바로 해. 알았지?”
놀지 말고.”


잠깐 멈추더니,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티 나게 하지 말고.”


열개 넘는 노트북을 들고 옮기는

내 손에 땀이 찼다.

무거웠다.

노트북이 아니라 마음이.


나는 왜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첫날 나는 질문에 생각을 대답했다.
회사를 일찍 와서 신문을 봤다.
자리에서 들어가라는 대로 들어갔다.
대표님 앞에서는 생각을 말했다.


그게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큰 잘못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것들을 '잘못'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회사는 그걸
‘회사랑 안 맞는다’고 부른다.


그리고 맞지 않는 사람은
조용히 보이지 않는 방으로 보내진다.


마치,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처럼.


그곳은 문고리부터가 차가웠다.


그 방은, 내가 꿈꿨던

‘마케터’의 자리와 정반대에 있는

인사팀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장 차가운 곳이었다.


(1-3. '지옥의 방'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