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
그런데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2038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이라고 쓰는 이유는 뭐랄까.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일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날짜라는 게 그냥 늘 보던 천장의 타일 같은 게 된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것.
나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몇 시간 째인지는 모른다.
세어보려다 관뒀다.
세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서.
AI 스피커가 파란 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인후 씨, 오늘 세 번째 알람이에요."
손을 뻗어서 껐다. 팔이 무거웠다. 팔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던가. 잘 모르겠다.
내 방은 3평이다.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 창문 없음. 작지만, 물건은 넣는 벽의 공간은 그럭저럭 된다. 국가에서 월 10만원에 제공하는 주거 공간이다. 예전 기준으로 치면 고시원 정도 되는 사이즈 정도. 좁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누워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사람에게 3평은 충분히 넓다.
벽에 붙은 수납장 안에는 회색 후드가 일곱 벌이 걸려 있다. 선이 달린 것 네 벌, 없는 것 세 벌. 전부 같은 색이다. 옷을 고른다는 행위가 귀찮아서 같은 걸로 채워놨는데, 생각해 보면 귀찮다기보다는 고를 이유가 없었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어딜 가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 뭘 했냐고 누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오전에 눈을 떴고, 배달 앱을 켰고, 나라행복카드로 결제했고, 기다렸고, 먹었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맛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먹으면서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입에 들어간 게 뭐였는지 의식하지 못했다는 쪽에 가깝다.
AI가 만들어준 드라마를 틀었다. 공짜다. 16부작이었고, 1부에 10분씩. 옛날에는 하나에 1시간짜리였다고 하는데 신기하다. 광고가 나올 때마다 좋아요를 눌렀다. 누르면 포인트가 쌓이고, 그 포인트는 현금화할 수 있다. 그게 이 시대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성실하게 하는 것.
드라마가 끝났을 때 방이 어두웠다. 창문이 없으니까 원래 어두웠지만, 뭐랄까, 시간이 한꺼번에 지나가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가 통째로 어딘가로 빠져나간 것 같은.
누웠다.
그게 내 하루였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자기 전에 민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뭐 해?'
읽지 않음.
이번 주에만 세 번째였다.
민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연락하는 유일한 사람. 원래는 밝은 애였다. 같이 편의점에 가서 아무 이유 없이 웃고, 게임하면서 새벽까지 떠들고, 별것도 아닌 일에 자지러지던 녀석. 내가 말수가 적은 편이라 우리 둘이 있으면 민수가 떠들고 나는 언제나 들었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내가 채우지 못하는 빈 공간을 민수가 알아서 채워줬으니까.
3년 전에 유연이랑 헤어지고 나서 민수는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냥 힘들어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졌고, 만나자고 하면 다음에 보자고 했고, 다음은 계속 오지 않았다. 요즘은 메시지를 보내면 하루 지나서 답이 오거나, 아예 안 온다.
바쁜가 보지.
그렇게 넘겼다.
2038년의 대한민국. 누가 나한테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일하지 않아도 된다.
일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나머지 아홉은 나처럼 산다.
국가는 모든 성인에게 월 300만원을 지급한다. 기본소득법이라는 게 통화되고 나서 예외 없이, 조건 없이. 어제 먹은 컵라면이 5천원, 오늘 먹은 돈가스덮밥이 2만원 정도. 딱 먹고살 정도의 돈이지만 굶지는 않는다. 3평짜리 주거 공간이 월 10만원에 공짜로 놀 건 널렸으니까. AI가 소설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찍는다. 그걸 소비하고 좋아요를 누르면 포인트가 쌓이고, 포인트는 현금이 된다. 많이 볼수록 돈도 모인다.
일자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일할 이유가 사라진 시대. 20년 전만 하더라도, 취업을 하려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몇 년간 준비를 했다고 한다. 10년 전에도 그랬다던데. 먹을 것이 없었던 원시시대, 놀기 좋아하는 유인원이 있었다면 죽었을 거다. 이제 그들이 바라던 꿈 꿔온 세상이 와버린 것이다.
이곳은 천국이다 —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사이 악플도,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고질병들도 반 이하로 줄었으니까. TV에 나온 어떤 의사는 이런 말을 했다. 위험한 천국이라고. 내 기억이 맞다면 이런 말을 했다.
비만율은 40%를 넘었고, 우울증 진단은 매년 기록을 경신했고, AI 마스터베이션 머신이 대중화된 뒤로 현실의 연애는 10년 전의 5분의 1로 줄었다. 20대의 80%가 연애를 해본 적 없다고 한다. 나도 그 80%에 들어간다.
작년에 국가가 대기업 연구소 두 곳과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을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건강지수, 행복지수, 사회관계 지표 전부에서 일하는 그룹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일을 해야 한다고?
뉴스 댓글에서 사람들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래서 어쩔.’
‘월 500 줘도 안 함.’
‘나 지난달 포인트로 1천만원 범ㅎ.’
‘월 1천 안 줄 거면 뽑지마.’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일이라는 건 예전 세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하던 거고, 우리는 그걸 안 해도 되는 세대니까. 그게 진보이고 진화라고 배웠으니까.
새벽 두 시였다.
벽면 스크린이 저절로 켜졌다.
내가 켠 게 아니었다. 리모컨은 침대 반대편에 있었고, 나는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벽 내장형 TV 화면에 문장이 떴다. 이제껏 들은 적 없는 알람음이었다.
'초인후 님,
AI 웰니스 모니터링 결과
정밀 상담 권고 대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가까운 AI 케어센터를 방문해 주세요.'
음성과 함께 문장은 5초쯤 떠 있다가 사라졌고, 화면은 다시 꺼졌다. 방은 원래대로 어두워졌다.
나는 그대로 누워서 꺼진 화면을 봤다. 꺼진 화면 상단에 ‘AI 케어 필요’라고 남겨져 있었다. 집 안 곳곳에 AI 센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면 패턴, 식사량, 동공 반응, 언어 패턴. 국가가 국민 건강 관리를 위해 설치한 것이고, 입주할 때 동의서에 서명도 했다. 언제 서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했을 거다. 다들 하니까.
그런데 알고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저것이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 것. 내 잠을, 내 식사를, 내 눈동자를, 내가 하루에 몇 마디나 하는지를 전부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이 어딘가에서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 시스템이 나를 '분류'했다는 것.
정밀 상담 권고 대상.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건지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보다 기계가 먼저,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상한 게 없는데. 그래도 가야 한다. 월 300만원에 월세 10만원에는 이런 의무사항이 있는 거니깐.
케어센터는 하얗고 조용한 곳이었다.
대기실에 사람이 세 명 있었는데 전부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셋 다 폰을 보고 있었고,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앉았고, 나도 그 공간에 앉아 기다렸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태블릿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초인후 씨."
"네."
"마지막 외출이 19일 전이네요."
19일. 그렇게 됐나.
세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기계는 세고 있었구나.
마지막은 왜 나갔더라.
"그렇네요."
"평소에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진짜로 생각해 봤다.
해보고 싶은 것.
원하는 것.
그런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봤는데, 딱히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뭔가를 원한다는 감각 자체가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있었다. 배가 고프면 시켜 먹고, 심심하면 AI OTT를 틀고, 졸리면 잤다. 그건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였다.
의사가 태블릿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래프였다. 꺾인 선들과 숫자들, 색깔별로 구분된 데이터.
"일을 하지 않는 그룹에서 AI 디프레션으로 인한 자살률은 2%입니다. 대인기피증 25%, 공황장애 16%."
나는 그 숫자들을 봤다. 숫자는 멀게 느껴졌다. 통계라는 건 원래 남 얘기처럼 들린다.
"반면."
의사가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의 회복률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열 배 높았습니다."
"……"
"인후 씨는 현재 AI 디프레션 고위험군입니다."
고위험군.
그 단어만 이상하게 선명했다. 다른 말들은 다 흘러갔는데 그 네 글자만 귀에 남았다. 그리고 ‘일’이라는 말. 고위험군. 위험이 높은 집단. 내가 거기 속해 있다고 했다. 이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5년 내 죽을 확률 80%
의사가 태블릿을 내려놓고 나를 봤다.
"일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나는 의사를 마주 봤다.
“일이요?”
그 단어가 나한테 적용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스물아홉. 나는 한 번도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금 내 나이대의 92%가 일을 해본 적 없다는 기사를 봤다.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300만원이 들어왔고, 먹고 자고 보는 데 부족하지 않았고, 그게 당연한 세상이었으니까. 일을 안 하는 게 게으른 게 아니라 정상인 시대. 오히려 일을 하는 쪽이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시대.
그런 시대에 의사가 처방이라고 내민 것은 바로 일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래서 처음이 어렵죠."
"일을 하면, 나아지나요."
"보장은 못 합니다. 다만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상한 화법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말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말한다. 숫자는 설득력이 있으니까. 나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것도 데이터였고, 그 데이터는 적어도 나보다 나를 잘 보고 있었으니까.
“생각해.. 볼게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가 왔다.
우산이 없었다.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버스에서 내릴 때쯤 잊었다. 어차피 잘 나가지도 않으니까.
방에 들어와서 젖은 회색 후드를 벗고 수납장에서 다른 걸 꺼냈다. 같은 회색이었다.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AI 스피커의 파란 불이 깜빡였다. 이번에는 끄지 않았다. 저게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끄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일.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봤다.
낯선 단어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외국어 단어 같았다.
뜻은 아는데 써본 적은 없는.
스물아홉 평생 한 번도 입에 붙여본 적 없는 단어.
그런데 이제는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언제부터인가 뭔가를 원한다는 감각이 점점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 천장을 보면서 하나는 알았다.
지금.. 죽기는 싫었다.
죽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아무래도 나을 것 같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2화 <단, 인간이어야 함>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