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회사 인트라넷에서 사라진 동료의 기록을 찾던 초인후는 자신의 이름과 연결된 이상한 파일명을 발견합니다.

지난 이야기 - 흔적이 남지 않는 방

회사 인트라넷 검색창에 커서가 깜빡였다.

강준노.

준노 씨의 이름 세 글자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나는 화면을 봤다.

오타인가 싶어서 다시 쳤다. 천천히. 한 글자씩.

강, 준, 노.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이상했다.

퇴사자라도 기록은 남는 법이다.

나는 전에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지만, 그 정도는 안다.

입사일, 퇴사일, 소속 부서.

사람이 일했으면, 어딘가에는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검색 조건을 바꿔봤다.

퇴사자 포함. 전체 기간. 전 부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다른 경로를 찾아봤다.

회의록 저장소를 열었다. 준노 씨와 나는 입사 첫 주에 미팅을 함께했다. 그때 참석자 명단이 있었을 거였다.

2038년 4월 첫째 주 회의록을 열었다.

참석: 테스터 초인후

한 명이었다.

나는 그 줄을 다시 읽었다. 그날 준노 씨는 분명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을 보면서 팀장 발표가 지루하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숙였다.

그날 준노 씨가 까먹던 삼각김밥 포장지 소리가 아직도 기억났다.

그런데 명단에는 나 혼자였다.

사내 주소록을 열었다. ㄱ으로 시작하는 이름들을 훑었다.

강준노는 없었다.

출입 기록을 찾아봤다. 3층 출입 로그. 4월 첫째 주.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메신저에서 지워진 건 알고 있었다.

계약 종료되면 계정이 삭제되는 회사 정책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회의록에서도, 주소록에서도, 인사 기록에서도 없다는 건 다른 얘기였다.

강준노라는 사람이 이 회사에 다녔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내 기억 말고는.


나는 잠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만약 내가 준노 씨를 못 만났다면. 그 하얀 방에서 삼각김밥 먹는 걸 못 봤다면. 프라모델 얘기를 안 들었다면.

준노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등이 서늘해졌다.

다른 걸 검색해 봤다.

퇴사자 명단. 접근 권한이 없다고 떴다.

인사 기록.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보안팀을 검색했다.

그런 부서는 없습니다.

보안팀이 없다.

준노를 끌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보안복을 입은 두 명. 그날 문을 열고 들어와서, 준노 씨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보안팀이라는 부서가 없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뭐였을까.

나는 화면을 오래 봤다. 답이 안 나왔다.

물어볼 사람은 없을까.

한 명은 있었다.

오후에 팀 화상 미팅이 있었다.

평소처럼 업무 얘기가 오갔다. 은빈님이 이번 주 사용자 리포트를 정리해서 공유했다. 언제나처럼 정확하고, 빠르고, 오타 하나 없었다.

미팅이 끝날 무렵,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은빈 씨, 혹시 강준노라는 분 아세요?”

“강준노요?”

“네. 저 입사할 때 같이 있던 분인데요. 테스터 담당이었어요.”

은빈님이 잠깐 화면 안에서 나를 봤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테스터 담당에 그런 분 계셨어요?”

“…네. 저랑 같은 방에 있었어요. 두 달 전쯤이요.”

“제가 알기로는 신사업팀 테스터는 인후 씨 한 분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분명히.”

“혹시 다른 데랑 헷갈리신 거 아니에요?”

은빈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확인해 볼게요. 음… 기록에도 없는데요.”

“…아니에요. 제가 착각했나 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화면을 껐다.

착각.

내가 착각한 걸까.

일주일 넘게 같은 방에서 밥을 먹고, 회사 욕을 듣고 했던 게 착각일 수 있나.

그 사람이 끌려나가는 걸 눈앞에서 본 게 착각일 수 있나.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의 모든 기록이 없다. 은빈님도 아니라고 했다.

세상이 아니라고 하면, 내 기억은 뭐가 되는 거지.


그러다, 무심코 내 이름을 쳤다.

초인후.

왜 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검색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엔터를 눌렀다.

결과가 떴다.

초인후 — 신사업팀 파트장

입사일: 2038.04.01.

나는 있었다.

그런데 목록 아래쪽에, 뭔가가 더 있었다.

파일이었다.

내 이름으로 연결된 문서 하나. 제목이 잘려서 보였다. 초인후 — 뒤에 뭔가가 더 있는데, 목록에서는 끝이 안 보였다.

클릭했다.

화면이 열리려는 순간,

화면 전체가 한 번 어긋났다.

글자들이 픽셀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그 사이였다.

1초쯤.

HUMAN_SIM_023 — 초인후

그리고 화면이 닫혔다.

요청하신 문서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방금 뭘 본 거지.

다시 클릭했다. 목록이 새로고침 되었고, 아까 있던 파일이 없었다. 내 이름을 다시 검색했다. 인사 정보만 떴다. 파일은 없었다.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커피 자국처럼.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방금 본 걸 다시 떠올렸다.

HUMAN_SIM_023

그 뒤에 분명 내 이름이 있었다. 초인후.

나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의자를 뒤로 뺐다. 책상 밑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긁힌 자국이 만져졌다.

같은 숫자였다.

준노 씨가 남긴 023. 그리고 방금 내 이름 앞에 붙어 있던 023.

같은 숫자였다.

그 숫자가 가리키는 건.

나였다.

준노 씨는 뭔가 알아냈고, 그게 나와 관련된 거였고, 말로는 못 하니까 숫자만 남긴 거였다.

그런데 왜 하필 숫자로 나를 부를까.

사람에게 번호를 붙이는 곳은 정해져 있다.

죄수. 환자. 실험.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멈췄다.

HUMAN_SIM.

그건 뭐지.

휴먼 심.

심이 뭐지.

어디서 많이 본 약자였다.

시뮬레이션.

인간 시뮬레이션?

나는 곧바로, 다른 뜻을 찾기 시작했다.

사용자 시뮬레이션 데이터일 수도 있었다.

회사가 인간 사용자를 모델링한 자료.

나는 테스터였으니까.

내 반응 데이터를 그렇게 부르는 걸 수도 있었다.

023번 샘플.

그럴 수 있었다.

충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023이 나라면.

022도 있는 걸까.

나는 인트라넷 검색창에 입력했다.

HUMAN_SIM_022

해당 데이터는 삭제되었습니다.

삭제일: 2038.04.08.

나는 그 날짜를 봤다.

준노 씨가 끌려나간 날이었다.

준노 씨였다. 022는.

아니,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됐다.

그런데 준노 씨는 왜 끌려나갔을까.

준노 씨도 뭔가를 봤던 걸까? 나처럼.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그리고 그걸 봤다는 이유로 끌려나갔고, 회사의 모든 기록에서 지워진 걸까.

022는 사라졌다.

023은 남아 있었다.

HUMAN_SIM_023

다시 검색했을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화면을 봤다.

인트라넷 창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검색창 아래에 작은 문구가 있었다.

최근 검색 기록은 보안 정책에 따라 저장됩니다.

나는 그 문장을 그제야 읽었다.

검색 기록이 남아 있었다.

강준노.

퇴사자 명단.

인사 기록.

보안팀.

초인후.

지워야 하나.

지운다고 사라질까.

나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내가 있는 하얀 방을 둘러봤다.

매일 보던 방이었다. 하얀 벽, 형광등, 의자 두 개, 창문 없음.

누군가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준노 씨가 끌려나갈 때, 그건 뭐 때문이었을까.

준노 씨가 뭘 했는지 누가 알았을까.

이 방엔 카메라가 없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카메라는 없었다.

그런데 회사는 알았다.

전부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준노 씨는 뭔가를 알아냈다.

그래서 사라졌다.

지금 나는, 준노 씨가 갔던 길을 그대로 가는 걸까.

멈춰야 하나.

여기서 멈추면, 나는 안전할까.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지금까지처럼 넘기면서 살면. 그러면 되는 걸까.

그런데 이제는 못 넘길 것 같았다.

내 이름 앞에 붙어 있던 숫자를 봤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메모장을 열었다.

회사 시스템이 아닌 곳. 인트라넷도, 사내 메일도 아닌 곳.

한 줄을 적었다.

HUMAN_SIM_023

적고 나서, 그 글자를 봤다.

준노 씨는 책상 밑에 긁었다.

지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폰에 적었다.

이게 지워지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적었다.

준노 씨가 그랬던 것처럼.

023.

그게 나라면.

나는, 뭐지.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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