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한창 판을 칠 때, 나는 AI 그리고 AI를 잘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다. 빠르게 진화하는 AI, 그와 함께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지는 것 같은 내 실무 스킬들...(두려움에 대한 넋두리는 대포모시대 글에서도 볼 수 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고, 많은 분들이 이 두려움에 이렇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려주셨다. 그중 가장 공감되는 조언은 바로 이것이었다.
"AI를 가볍게라도 시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안 써보고 무서워하고 욕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써보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야 AI가 진짜 나를 대체하겠네 안 하겠네를 판단할 수 있다. 마침 이 두려움을 토로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사내에서 클로드(claude) 유료 플랜을 써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마침 회사에 엄청난 일이 들이닥치면서 반강제로(?) AI를 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5월 한 달 동안 AI를 써보고 느낀 점을 기록해보려 한다. 난 AI의 어느 부분에서 신세계를 보고 어느 부분에서 빡침을 느꼈을까. 막연히 두려워하던 AI를 본격적으로 업무에 써보면서 조금 더 친해졌던 순간들을 써봤다.
비주얼 만들러 AI 써본 썰
마케팅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키비주얼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 중 대다수의 시간을 키비주얼 아이데이션 하는데 다 써버린다. 특히나 UI/UX, 앱 지면 등이 빠르게 자동화되면서 마케팅 디자인에서는 [누가 AI로 비주얼을 잘 만드느냐] 그리고 [누가 AI로 배너랑 페이지 제작을 효율화시켜서 사람 손 안 타게 하냐] 이 2가지로 방향이 갈리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후자로 가게 되는 경우 디자이너의 일이 줄어드는 함정...)
gpt의 이미지 생성 대화. 최근 몰라보게 성능이 좋아졌다.
내가 몸담은 부서는 주로 전자에 집중을 한다. 그래서 비주얼을 만드는 과정에서 AI를 필수로 사용한다. 단, 회사에서 별도의 프롬프트 지침이나 MCP 연동 이런 게 있진 않고, 아직까진 각개전투로 사용한다. 5월 중에 우리가 비주얼 제작단계에 사용하는 AI는 제미나이(나노바나나), 챗GPT, 힉스필드 정도이다. (현재 보안 이슈로 gpt와 힉스필드는 회사 업무에는 사용하지 않음) 참고로 나노바나나는 이를 모델로 AI를 쓸 수 있는 피그마와 Adobe 포토샵도 포함이다.
1달간 여러 번 AI를 잡도리하면서 비주얼을 만들어봤을 때, 각자 특징과 쓰임새가 있더라.
- 제미나이 : 이미지 수정에 탁월하다.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사실감 있는 이미지를 만들거나 기존 이미지를 수정할 때 사용한다. 특정 캐릭터나 로고가 포함된 이미지를 다룰 때 사용한다. 그리고 부분수정도 잘한다.(참고로 나는 별도의 gems에서 다룬다) 동영상 제작도 가능하지만 퀄리티는 글쎄...
- 챗GPT : 예전에는 지피티 특유의 노란끼가 있었는데 이전에 대대적인 업데이트 이후 제미나이보다 더 잘 만든다. 가상의 이미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만들며, 그래서 비주얼 초안 제작에 자주 사용한다. 다만 개인 계정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저작권 이슈가 있는 캐릭터, 로고가 포함된 이미지는 [이를 활용해 작업할 수 없다]며 뱉어낸다.
- 힉스필드 : 모션그래픽 제작할 때 자주 사용한다. 이미지 제작 기능도 있으나 기존 정지이미지 리소스를 활용한 영상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한다. 물론 이 영상을 만드는 데까지 여러 번의 잡도리가 있으며, 토큰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절대 만들지 못할 영상들을 만들어내서 잘 사용한다.
이 3가지를 잡도리하는 프롬프트에 대해 몇 가지 더 첨언하자면, 함께 비주얼을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원하는 바를 만들 수 있는] 특정 프롬프트가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작업한 캐릭터 이미지 같은 경우 AI로 시안 작업할 때 “3D 찰흙(클레이) 질감의 인형(+손자국도 남으면 더 좋음)”으로 만들 것을 꼭 추가한다. 참고로 이런 프롬프트를 쓰면 제미나이는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리얼하게 질감을 구현해 낸다.
그 외에 배경 색상 변경, 이미지 누끼, 배경 연장 등은 이미 AI에게 맡기고 있다. (특히 배경 연장은 어도비가 잘함) 이미지 제작 과정에서 자잘한 과정들은 이미 AI에게 대체가 완료된 것 같다. 특히나 이미지 누끼는 어떤 이미지냐에 따라 시간을 꽤 많이 잡아먹는데, 이 부분에서는 엄청나게 시간을 단축했다.
이 과정에서 또 크게 느낀 점이 있는데, 이 AI 툴만 가지고 우리가 원하는 퀄리티의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래는 AI로 비주얼을 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심한(?) 부분들이다.
AI는 이미지를 [통이미지]로 만든다. 즉, 레이어로 분리되지 않는다. 때문에 위치 이동이나 배치 변경 등의 단순 작업을 위해서는 psd 파일이나 피그마 내에서 레이어 분리가 필요한데, 이 때문에 각 레이어 오브제만 부분 생성하고, 다시 포토샵이나 피그마에서 합친다.
내가 원하는 색 레벨, 조도, 디테일한 명암 등을 잡으려면 내가 결국 포토샵이나 피그마에서 다듬어야 한다. 이걸 AI에게 다듬으려 하다가 엉뚱하게 이미지가 변해버린다. (이걸 AI에게 시키려다가 성격 여러 번 버렸다)
사이즈별 이미지 베리에이션이 많은 마케팅 디자인 특성상 작업 원본이 필수인데, 이 경우 통이미지보다 레이어가 나뉜 이미지가 훨씬 수월하다. 이는 영상 제작도 동일하다. 이미지 리소스를 찾는데 결국 이미지 1장보다 psd를 찾는 함정.
위의 3가지는 아마도 기존에 일하는 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디자이너의 넋두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변수가 많고 베리에이션(variation) 작업이 많은 마케팅 디자인 특성상, 내가 원하는 대로 자잘한 수정을 빠르게 진행하려면 아직까지는 내가 직접 하는 게 나은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수정을 위해서라면 각 오브젝트별 레이어가 나뉜 고화질의 원본 파일이 필수인지라... 결국 [각 오브젝트별 AI로 생성 -> 포토샵으로 옮겨서 배경 없애고 디테일 다듬기 -> 하나의 psd 파일로 합치기] 방식으로 비주얼을 만든다. 여기서 마지막에 각 레이어만 배치해서 AI로 다시 생성해 달라고 하면, 불필요한 합성작업(그림자 그리기, 배경 다듬기 등) 필요 없이 비주얼 1장 진짜 최종 버전이 완성된다. 물론 AI가 내 뜻대로 잘 그려줘야 한다.
1달간의 이 경험을 봤을 때, 결국 [AI로 비주얼을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디자이너가 비주얼에 대한 디테일을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올릴 것이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AI가 다듬는 것만으로 끝나는 비주얼도 있지만, AI 이 놈이 내가 제시한 심벌이나 텍스트를 이상하게 만들어내면 결국 내 손을 탈 수밖에 없다. 오래전 그림자나 레이어 개수에 까다로웠던 디자이너들은 이 부분 하나마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AI는 어도비 툴이나 피그마 같은 또 다른 혁신적인 도구일 뿐 이를 활용해서 얼마나 디테일과 퀄리티를 올릴 것이냐는 디자이너의 몫이다.
바이브코딩해본 썰
(feat. 사내 AI강의)
두 번째로, 강의를 들으면서 바이브코딩을 찍먹 한(?) 후기도 써보려 한다. 회사에서 업무 툴로 AI(커서, 클로드 등)를 도입하면서 사내에서는 구성원들을 위한 AI 강연을 진행하기도 하고, 이미 AI로 원하는 자동화를 이룬 동료들이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나는 그중 바이브 코딩 강의를 하루 풀로 투자해서 들어보았다.
바이브코딩 강의답게 강연은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하나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각자 회사 생활 중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3개 정도 추려낸다 -> 이 중 하나를 골라서 서비스를 하나 기획한다 -> 이를 AI와의 대화를 통해 필요 기능과 기획을 구체화한다 -> AI를 통해 입코딩(바이브코딩이라 하지만 나는 왜 입코딩이 정겨울까)으로 웹 서비스를 하나 만든다 -> 구글 앱스 스크립트를 통해 배포하고 피드백을 진행해 본다
(여기서 AI는 제미나이 캔버스, 클로드, 커서 등을 사용)
나는 간단한 서비스라서 구글 제미나이 캔버스로 바이브코딩을 진행했다
나는 우리 팀 위클리의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사연 모으는 서비스(기존에 다른 서비스를 사용했지만, 유료화 이슈도 있고 사용성이 좋지 않아 다들 쓰기 불편해함)를 만들었는데, 정말 너무 신세계였다. 프로덕트 디자인 프로젝트를 잠시 진행한 경험 덕분에 사용성을 더 좋게 만드는 것도 너무 좋았다. 코드에 대한 잡지식 덕에 자잘한 것은 내가 수기로 수정했지만, 좀 더 나은 사용성을 위해 플로우 변경이나 기능 추가 또는 삭제를 프롬프트 하나로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정말 혁신이었다.
아쉬운 점은 구글 앱스 스크립트에서 [최종 배포]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실제 배포를 위해서는 이 서비스에서 수집하는 데이터를 어디에 모아놓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그 부분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배포 이후 사이트 내의 버튼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제미나이 캔버스에서는 잘만 작동했는데, 프런트엔드 개발까지는 정말 쉬웠으나 최종 배포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서버 구축 즉 백엔드 부분은 아직도 개발자의 영역이구나를 실감했다. (실제로 이 오류를 강사님에게 문의했더니 강사님도 해결하기 어려워했다. 백엔드는 개발 지식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 보다)
예전에 나는 피그마 make와 제미나이 캔버스, 안티그래비티를 통해 입코딩을 한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제미나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기능이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구체화했다. 이번 강연에서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경험하게 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위의 비주얼 도출은 AI를 포토샵 같은 도구로 사용했다면,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하나 만들기 위한 이번 바이브코딩 강연에서는 AI가 나를 도와주는 진정한 동료이자 개발자가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강의에서 제대로 배운 점은, [AI가 대세이니 이걸 활용해서 뭘 좀 만들자]가 아니라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 AI로 해결해 볼까?]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주객전도가 되어버려서 있으나마나 한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바이브코딩을 통해 하나의 서비스 또는 웹사이트 등을 만들려면 사람이 PM 역할을 해야 한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설계해야 한다. 결국 이 쉬운 [바이브코딩] 방식을 통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가 주요 목적이 되어야 한다.
클로드와 친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에이전틱 ai 씬의 중심에 있는 클로드
마지막으로 요즘 핫한 AI인 클로드. 회사에서 클로드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사내에서 다양한 클로드 스킬 공유하거나 강의를 진행했다. 정말 많은 분들이 클로드를 사용해서 업무를 자동화했고, [저 이런 걸 만들었어요! 써주세요]라고 하는 중심에는 대부분 클로드 또는 클로드 코드가 있었다.
나는 클로드로 뭘 할 수 있을까?(클로드 디자인 제외) 생각해 보면, 초기에 비개발자 대상의 클로드 강의를 듣고 나서 + 그리고 회사 디자이너가 공유해 준 회의록 자동 작성 방법을 배우고 나서는 주로 [데이터 분석 및 슬랙/위키 자동 작성]에 사용한다. 그 외에는 위에서 얘기한 영문 프롬프트 작성도 있다.
클로드는 내가 일하는 데에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준다. 요즘 마케팅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사용자 관련 데이터다. 나는 수포자라(ㅜㅜ) 데이터 분석, 시트 확인 등을 정말 못하는데 이를 클로드에게 맡기면 정말 잘 정리해 준다. 여기에 내가 가이드를 잘 정리해 주면 더 잘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이드를 만들고 정리하는 것에 강점이 있다 생각해서 잘만 설계하면 누구보다 잘 부려먹는 클로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클로드로 더 해보고 싶은 점은 바로 클로드로 콘텐츠 또는 장표 제작 자동화. 얼마 전 회사 디자이너가 발표하는 것을 봤는데, 장표를 클로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다. 테스트 차원으로 작게 만들어보고 가능성을 파악하면,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 그 외에 클로드에 피그마 mcp를 응용해서 디자인 시스템 넣고 자동으로 만들게 하기 등등.(이전에 피튜님 세미나를 들었으나, 이 때는 단순히 하는 방법만 파악했다) 앞으로 클로드를 잘 써먹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이 산더미이다.
본격적으로 AI를 업무에 써본 지 1달이 지난 지금, AI는 내 업무에 아래와 같은 역할을 한다.
- 실력은 좋은데 말을 못 알아먹는 주니어 디자이너 (그래서 내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줘야 함)
- 가이드만 잘 내리면 초기 프로덕트를 잘 만드는 PM 겸 프런트엔드 개발자 (물론 구멍은 있음)
-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 정리, 영문 프롬프트 작성을 나보다 잘해서 이 부분은 끝내주게 잘하는 친구 (물론 내가 로우 데이터를 잘 던져야 함)
이런 역할을 봤을 때 AI가 일을 잘하려면 내가 가이드를 잘 내려야 하고, AI가 알아서 잘해주는 일은 절대 없다. (이런 걸 몇 번 기대했으나 결과는 폭망함) 목표한 바 대로 결과물을 도출하려면 아직 AI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까지는 대체될 일은 없을지도? 아직까지는....
지금 돌아보니 AI를 통한 FOMO는 [AI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가 아니라 [AI가 이런 일까지 다 해준다]에 너무 치중해서 발생했다. 도구의 혁신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그 도구로 해결해야 할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도구를 실제로 내 업무에 써보거나, AI로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면 [이 도구로 이루고자 하는 바]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도구가 저세상급 실력을 가졌다 해도 결국 내 목적을 실행하지 못하면 있으나마나 한 도구가 되어버려서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몇몇 과정 중에는 내가 직접 작업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나는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이전 글에서 마주했던 나의 FOMO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이 기능이 내 업무에 정말 필요할까? 이 기능을 도입하면 정말 내 업무에 비용절감이나 효율성 등의 효과를 불러낼까? 도입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진다. 그리고 주변에서 AI 관련 적용 사례나 업데이트 내용을 보면 “당장 이거 써봐야지!” 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우리 업무에 필요한지 봐야겠다”를 생각한다. AI는 좋은 손과 발이 되어준다. 좋은 비서가 되어준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결국 사람(디자이너, 바로 나)이 앞으로 배워야 할 큰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