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구인 앱을 켠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이것저것 일자리 구하는 앱을 다운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켜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눈을 떴고, 폰을 들었고, 평소라면 영상 앱으로 갔을 손가락이 그날은 다른 데로 움직였다. 어쨌든 지금 죽기는 싫으니까. 그 정도의 이유면 손가락 하나는 움직일 수 있었다.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저것 눌러보니 여러 가지 결과가 떴고, 낯설었다.
경력 3년 이상.
경험자 우대.
유관 분야 경력자 우대.
스크롤을 내렸다.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렸다. 전부 나랑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일을 하려는 사람 자체가 드문 시대에, 그나마 남아 있는 일자리는 일을 해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번 일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고, 들어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문이 좁은 게 아니라, 문이 우리 쪽으로는 안 나 있는 구조였다.
2038년, 20대의 92%가 일을 안 해본 세대. 뒤집으면 신입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하지 않아도 돈을 주니까. 300만원.
스크롤을 멈추고 멍하니 화면을 봤다.
여기까지 하고 다시 누우면, 어제랑 똑같은 하루가 시작될 거였다. 그래서 조금만 더 내렸다.
그 공고는 목록 한참 아래에 있었다.
AI 코퍼레이션 — 신사업팀 테스터 모집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회사 이름이 너무 성의 없어서. AI 시대에 회사 이름이 AI 코퍼레이션이라니, AI한테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엄지가 멈췄고, 화면이 다시 올라왔다.
본문은 세 줄이었다.
신사업팀 테스터 모집.
경험 불필요.
단, 인간이어야 함.
마지막 줄에서 시선이 멈췄다.
단, 인간이어야 함.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웃어본 게 오랜만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AI가 지원서를 넣는 시대니까, 봇을 거르겠다는 뜻인가.
그런데 그 문구가 이상하게 나를 붙잡았다.
경험 불필요.
단, 인간이어야 함.
내가 가진 게 정확히 그것 둘 뿐이었다. 경험은 없고, 인간이긴 한 것.
세상에 나를 받아줄 자리가 있다면 이런 문장으로 쓰여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다.
지원 버튼을 눌렀다.
1차 면접은 이틀 뒤, 화상으로 진행됐다. 가장 깨끗한 회색 후드를 꺼내 입고, 방에 앉았다.
화면 속 팀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단정한 셔츠에 깔끔한 배경, 또렷한 발음. 친절했고, 말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자기소개. 나를 소개할 거리가 뭐가 있나 잠깐 생각하다가, 있는 그대로 말했다.
"초인후입니다. 스물아홉이고요. 일을 해본 적은 없어요."
화면 속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박자 쉬고 덧붙였다.
"근데 인간이긴 합니다."
팀장이 웃었다.
"그거면 충분해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농담으로 받아줘서, 면접이라는 게 생각보다 무섭지 않구나 싶었다. 그 뒤로 몇 가지 질문이 더 있었지만 어려운 건 없었다. 평소 생활 패턴,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한 생각, 새로운 서비스를 써보는 걸 좋아하는지. 나는 대부분 솔직하게 답했다.
꾸밀 경력 자체가 없으니 솔직할 수밖에.
2차는 본부장 면접이었다.
역시 화상이었다. 본부장이란 사람은 팀장보다 말수가 적었다. 대신 듣는 시간이 길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고, 잠깐 간격을 두고 나를 관찰했다. 화면 너머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느낌은 마치 관찰되는 느낌이었다.
그냥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후 씨는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은 어떻게 하시나요."
면접 질문치고는 이상한 질문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답했다.
"외로움은 그냥 언제나 늘, 같이 있어요. 딱히 이상하지 않아요. "
본부장은 그 답에 아무 평가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인데, 그 끄덕임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3차는 대표 면접이었다.
이번에는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검은 화면 위에 음성만 들어왔다. 중후하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처음이었지만 말투가 왠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익숙함.
그의 질문은 하나였다.
"왜 일을 하고 싶으세요?"
나는 잠깐 침묵했다.
준비된 답 같은 건 없었다. 처음 하게 된 면접. 전에 AI한테 물어봤을 때 알려준 자아실현이라든가 성장이라든가,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전부 나와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걸 면접에서 말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답이 없었다.
"살려고요."
짧은 침묵이 있었다.
화면 너머의 침묵은 길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2초, 3초, 5초. 떨어졌나, 생각할 때쯤 목소리가 돌아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후 씨."
그게 끝이었다. 화면이 꺼졌다.
나는 꺼진 화면 앞에 잠깐 앉아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 아닌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 나한테 뭔가를 부탁한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합격 통보는 바로 다음 날 왔다.
메시지 한 줄이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첫 출근: 내일 오전 10시. 주소 첨부.
지도 앱으로 찾아보니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였다. 가깝다는 사실이 내심 반가웠다. 아직은 나가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다음 날 아침, 나는 19일 만에, 아니 이제 22일 만인가, 아무튼 오랜만에 밖에 나가 버스를 탔다.
나라행복카드를 단말기에 댔고, 창가에 앉았고, 창밖을 봤다.
내 인생의 첫 출근. 영화에서 봤던 예전의 가득 찬 출근의 모습과는 달랐다.
평일 오전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폰을 보며 걷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박은 채 무기력하게 걸음을 옮기거나, 길거리에 선 채로 VR 안경을 쓰고 허공에 손짓하며 포인트를 줍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이고, 자기만의 화면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버스 안의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랑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지금 회사라는 곳에 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저 사람들과 다른 무리로 만들어줄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회사 건물은 평범했다.
유리 외벽, 자동문, 로비의 안내 데스크. 데스크에 직원은 없고 화면만 있었다. 입구 기기에 얼굴을 대자 출입증이 발급됐고, 화면에 층수가 떴다. 3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나는 회사라는 곳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출근을 앞두고 미생이나 김부장 같은 옛날 드라마에서 본 것들. 칸막이 책상이 늘어선 사무실, 회의실, 탕비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람들.
3층에서 내렸을 때, 그 이미지는 전부 상상과는 달랐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회사의 모든 안내와 정보는 회사 어플에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위치까지 생생하게 알려주었다.
복도 끝에 문이 하나 있었다. 출입증을 대자 문이 열렸다.
방이었다.
하얀 방.
온통 하얗다.
천장도, 바닥도, 벽도.
그리고 의자 두 개.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붙어 있고 노트북이 한 대씩 올려져 있다.
그게 전부였다.
사무실이 아니라 그냥 방이었다. 형광등은 방 모든 곳을 밝게 비추고 있었고, 창문은 없었다. 벽에 회의용 TV가 하나. 내가 살고 있는 3평짜리 방에서 침대를 빼고 의자를 하나 더 넣으면 딱 이 방이 될 것 같다.
나는 자리 앞에 서서 잠깐 멍해 있었다. 뭐부터 해야 하지. 그런데 여기가 맞나.
"어, 신입?"
누군가 들어오며 목소리가 났다.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반쯤 기대앉으며 삼각김밥의 포장을 까고 있었다. 먹으면서 나한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와 비슷? 또는 약간 어려 보였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표정에 긴장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웃음기가 있는 얼굴이랄까.
"맞네. 오늘 온다더니. 강준노예요. 저도 신입. 저는 몇 달 먼저 왔어요."
"……초인후입니다."
"인후 씨. 들어와요. 자리는 여기. 어차피 둘 뿐이라."
나는 안으로 들어가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준노씨는 삼각김밥을 마저 먹으면서 나를 구경하듯 봤다.
이것저것 정보를 입력하는 것을 안내해 주며 말을 잇는다.
"인후 씨는 왜 일해요?"
첫 질문이 그거였다. 면접에서 대표가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 나는 같은 답을 했다.
"살려고요."
"오, 진지하네."
준노씨는 별로 진지하게 받지 않았다.
"저는 프라모델 때문에요. 한정판 나오는데 기본 지급비로는 어림도 없거든요. 딱 그거 살 만큼만 벌고 관둘 거예요."
살려고 일하는 사람과 프라모델 사려고 일하는 사람. 이 시대에 일을 선택한 두 명의 이유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근데 인후 씨."
준노씨가 포장지를 구기면서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살짝 얼굴을 내쪽으로 가져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실. 여기서 팀장을 한 번도 직접 못 봤어요. 면접도 화상, 업무 지시도 화상, 메신저. 회사에 출근했는데 회사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다른 팀원들은 다 다른 공간에서 일해요."
나는 방을 한 번 둘러봤다. 하얀 벽, 의자 두 개, 창문 없음. 나에겐 익숙한 공간. 익숙한 방식. 다른 곳도 이런 걸까.
"요즘 시대에 비대면 많지.. 않아요?"
"비대면 집에서 하게 해 주든가. 왜 굳이 이 방까지 출근을 시키냐고요. 둘만 달랑 앉혀놓고."
준노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노트북을 봤다. 입사자를 위한 온보딩 문서가 와 있었다.
"다른 사람을 승진하면 그때나 만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요?"
준노씨가 한 번 더 물었다. 혼잣말에 가까웠다. 나는 문서를 읽기 시작했고, 준노씨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멈추고, 자기 노트북을 열었다.
그때 준노씨가 삼키려던 말이 뭐였는지, 나는 끝내 듣지 못했다.
준노씨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거 봐요. 이 날개 디테일 미쳤죠.”
준노씨는 자기의 폰에 담긴 수집품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뭐가 미쳤는지 몰랐지만,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떠들었고, 업무 중에 메신저로도 떠들었고, 쉬는 시간에는 더 떠들었다. 건담과 밀리터리 프라모델 이야기, 어제 본 영상 이야기, 회사 시스템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주로 들었다. 가끔 한 마디씩 받아줬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느낌. 민수가 떠나간 자리에 누가 들어온 것 같이, 비슷한 자리가 다시 생긴 느낌이긴 했다. 내가 채우지 못하는 빈 공간을 알아서 채워주는 사람. 이런저런 말들로.
준노씨의 말은 한 번씩 과격해졌다.
그날 오후, 준노씨는 회사 메신저 팀 단체방에 팀장 욕을 올렸다.
‘진짜 팀장 왜 이래요. 이게 말이 되는 피드백임? 나라면 이거 절대 안 할 듯.’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잠깐 굳었다. 단체방이었다. 팀장 본인도 있는.
"준노 씨, 여기.. 단체방 아니에요?"
"알아요."
준노씨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보라고 쓴 거예요. 어차피 잘리면 말지. 프라모델 살 돈은 거의 모았어요."
그 말을 하는 준노씨의 얼굴엔 두려움이 없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더 말리지 않았다.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조용히 아무것도 없이 살아왔다. 회사에서 말 많은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회사라는 곳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그게 일주일이 지난날이었다.
아침, 출근해서 문을 열었을 때 낯선 일이 벌어졌다.
준노씨가 처음 보는 두 사람에 끌려 나가고 있었다.
“내가 왜! 나가야 하냐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해맑던 준노씨가 격렬하게 저항을 했지만, 보안옷을 입은 두 체구의 남자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끌려갔고,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마지막 순간에 나를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내 맞은편은 빈자리가 되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을 때, 메신저 알림이 떠 있었다.
[강준노 님은 오늘부로 계약이 종료되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었다.
다시 읽었다.
고개를 들어 빈 의자를 봤다. 어제까지 거기 앉아서 삼각김밥을 먹고, 회사 욕을 하고, 퇴근하면서 내일 봐요, 라고 말했던 사람의 자리.
내일 봐요.
그 내일이 오늘이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혼자, 일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3화 <빈 의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