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하얀 방으로 돌아가자, 화면들이 이미 켜져 있었다.
팀장님, 은빈님, 우람님, 우정님.
네 개의 칸. 네 사람 모두 다 나를 보고 있었다.
"늦으셨네요."
팀장님이 말했다.
화면 속 네 얼굴이, 동시에 조금씩 웃었다.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비슷한 톤으로.
회의는 평소와 같았다. 주간 지표, 다음 주 일정, 몇 가지 확인 사항.
나는 대답하고, 메모하는 척했다. 손은 움직이는데, 머릿속엔 아무것도 안 들어왔다.
아까 지하에서 들었던 문 너머의 목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문 너머의 목소리를 들은 뒤로, 나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 사람들이 정말 화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지.
회의가 끝나갈 무렵, 나는 물었다.
"저, 그런데 저희 회식 같은 거 한 적 있나요? 그냥 궁금해서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화면 속 네 사람이 잠깐 조용해졌다.
"회식이요?"
은빈님이 먼저 되물었다.
"네. 다 같이 밥 한번 먹으면 어떨까 해서요. 저도 다들 얼굴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저는 좋아요. 근데."
우람님이 말했다.
"제가 요즘 알레르기가 좀 있어서. 바깥 음식 먹는 게 좀 조심스러워요."
"우정님은요?"
"저도 그날 스케줄이 좀.."
우정님이 말끝을 흐렸다.
그날.
나는 아직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각자, 다른 이유였다. 그런데 전부 그럴듯한 이유였다. 특별하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들.
팀장님이 정리하듯 말했다.
"저희는 원래 회식 안 해요. 인후 씨 오시기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네. 정 원하시면."
팀장님이 살짝 웃었다.
"스크린으로 다 같이 뭐 시켜서, 화면 켜놓고 먹는 건 어때요? 그것도 나름 회식이잖아요."
화면 안에서 만나자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에서 뭔가가 딱 맞아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나는 그렇게 답하고 웃었다.
미팅이 끝나고 화면이 하나씩 닫혔다.
더 이상 새로운 실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전과는 다른 확신이 굳어졌다.
이 사람들은 '몸'이 없었다.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 애초에 모일 사람의 몸 자체가 없는 거였다.
오후에, 나는 팀장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AI 에코 서버 백업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지하 서버실 접근 권한 요청드립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파트장이라면 할 법한 요청이었다.
답은 금방 왔다.
[팀장]: 네, 승인해 드릴게요. 오늘 중으로 출입 권한 열어드릴게요.
쉬웠다.
가지 않은 곳들을 가기 위해 던진 말이었는데, 허락이 너무 빨랐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 시간, 나는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 관계자 외 출입금지 ]
문 앞에 섰다. 카드를 댔다.
문이 열렸다.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서버 랙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낮은 진동음, 깜빡이는 초록 불빛들. 흔히 상상하는 그런 서버실이었다. 온도 조절 장치, 케이블 정리함, 벽에 붙은 점검표.
나는 한 바퀴 돌아봤다.
이상할 게 없었다.
너무 이상할 게 없어서, 오히려 이상했다.
이게 회사가 나한테 보여줘도 괜찮은 서버실이었다. 승인받고 볼 수 있는, 아무 문제없는 곳. 아니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곳.
진짜는 여기가 아니었다.
어제 목소리가 들린 건, 이 문 바깥이 아니었다.
문 너머, 더 안쪽이었다.
저 안쪽 어딘가에서, 분명히 들렸었다.
나는 어제 목소리가 들렸던 방향을 떠올렸다.
이 서버실 안쪽 어딘가였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버 랙들 사이로 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점점 조명이 어두워졌다.
문이 있을만한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다 비슷하게 생긴 벽들이라, 정확한 위치가 헷갈렸다.
여기였던 것 같은데.
만져봤다. 매끈한 콘크리트였다. 문틀도, 손잡이도, 표지판도, 아무것도 없었다.
옆으로 몇 걸음 옮겨서 다시 만졌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벽을 만졌다.
차가웠다. 진짜였다. 두드려봤다. 텅 빈 소리가 아니었다.
잘못 찾아온 걸까.
아니었다. 나는 확실히 기억했다. 어제 이 안에서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이 안에는 문이 없었다.
문이 사라진 게 아니라 문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진 것 같았다.
나는 벽에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안 났다.
그런데 벽을 따라 걸으면서, 귀를 뗄 수 없었다. 뭔가 있을 거였다. 이 벽 너머 어딘가에.
벽을 따라 몇 걸음 걷다가, 옆으로 다른 통로가 보였다.
어제는 못 봤던 길이었다. 아니, 있었는데 못 본 걸 수도 있었다. 조명이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
그 길을 따라가자, 문이 하나 나왔다. 표지판이 없는, 평범한 문이었다.
밀었다.
안은 텅 빈 하얀 공간이었다.
크기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넓었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전부 흰색.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도, 조명 기구도, 눈에 보이는 아무 장치도 보이지 않고, 그냥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발소리가 이상하게 울렸다. 넓은데 울림이 없었다.
벽을 따라 손으로 짚으면서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손끝에 다른 감촉이 닿았다.
매끈한 벽 사이에, 미세하게 다른 질감이 있었다. 눈으로는 안 보였다. 온통 흰색이라 구분이 안 갔다. 그런데 손끝은 알았다.
나는 그 부분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밀어봤다.
벽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벽의 일부가 미끄러지듯 열렸다.
그 너머로, 파란빛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숨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한쪽 벽 전체가 스크린이었다.
수십개의 스크린들이 격자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위로, 옆으로, 시야에 다 안 담길 만큼. 각 화면마다 다른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파란빛과 하얀빛이 뒤섞여서, 벽 전체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일렁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치 거대한 눈동자들이, 동시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화면 하나하나에, 하얀 방이 있었다.
각기 다른 하얀 방. 각기 다른 사람. 화상 미팅을 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커피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수십 개의 회의, 수십 개의 대화, 수십 개의 웃음이 동시에 재생되고 있는데도.
스크린이 있는 이곳은 조용했다.
낯익은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천천히 걸으면서, 화면들을 훑었다.
HUMAN_SIM_001.
HUMAN_SIM_002.
HUMAN_SIM_003.
익숙한 문구가 보였다. 번호에 따라 얼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 화면엔 처음 보는 남자가 화상 미팅을 하고 있었다. 다른 화면엔 나이 든 여자가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그 옆 화면엔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으며 웃고 있었다. 미팅에서 스치듯 봤던 얼굴들, 다른 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얼굴들이, 전부 여기 있었다.
전부 하얀 방.
전부 혼자.
전부 화면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미팅 화면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화면 밖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벽을 향해 발표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혼자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하나씩 보며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HUMAN_SIM_021.
그다음 화면에서, 나는 잠깐 멈췄다.
HUMAN_SIM_022.
화면은 꺼져 있었다.
아래쪽에 작은 글자만 남아 있었다.
상태: 종료.
나는 그 화면을 오래 보지 못했다.
바로 옆에, 다음 번호가 있었으니까.
HUMAN_SIM_023.
나는 화면 앞에 섰다.
그 화면 속엔 하얀 방이 있었다.
내가 아는 방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매일 내가 있었던 그곳. 내 책상. 내 의자. 내 노트북. 창문 없는 그 방.
의자는, 비어 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
아무도 없었다. 노트북은 켜져 있었다. 화면 보호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의자는 조금 돌아간 채로, 마치 방금 누가 일어난 것처럼.
화면 아래, 작은 텍스트가 흘렀다.
상태: 자리 이탈.
현재 위치: 확인 불가.
지정 구역 이탈 시간: 47분.
47분.
내가 회의를 마치고, 메시지를 보내고, 지하로 내려온 시간이었다.
이 화면은,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방이 지켜보고 있는 건 내 얼굴이 아니었다. 내 자리였다. 내가 자리에 없는 시간을 세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방엔 창문도 없고, 눈에 보이는 감시카메라도 없다고. 그런데 이 회사는 처음부터, 내가 거기 있는지 없는지를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다.
47분.
숫자가 바뀌었다.
48분.
돌아가야 했다.
지금 당장.
내 빈자리가 몇 분이나 더 길어지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준노씨의 자리가 얼마나 비었을 때, 그 정장 두 사람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벽을 등지고 뛰기 시작했다.
돌아온 길을 그대로 되짚었다. 하얀 공간, 서버 랙 사이 통로, 정식 서버실, 그리고 문.
관계자 외 출입금지.
카드를 댔다.
승인되었습니다.
문이 열렸다.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하얀 방 문을 열었을 때, 안은 조용했다.
의자도 그대로였다. 아무도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숨을 골랐다.
노트북 화면을 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메신저가 울렸다.
발신자를 봤다.
[대표]
나는 그 이름을 한참 봤다.
두 달 넘게 이 회사를 다니면서, 대표와 직접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굴도 본 적 없었다. 화면 속에서도, 회의에서도, 대표를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그 이름이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대표]: 인후 씨, 지금 자리에 계시죠? 미팅 가능하세요?
나는 그 문장을 봤다.
손이 멈췄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