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23개의 하얀방"
손이 멈춘 채로, 나는 그 메시지를 다시 봤다.
[대표]: 인후 씨, 지금 자리에 계시죠? 미팅 가능하세요?
대표.
두 달 넘게 다니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회사 조직도 맨 위에만 존재하던 이름. 본부장님 위에, 이름 석 자로만 있던 사람.
나는 답변을 입력했다.
[초인후]: 네, 가능합니다.
보내고 나서, 손이 떨렸다.
화상 통화 요청이 왔다.
통화 수락 버튼 위에서, 나는 잠깐 망설였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자리를 비운 걸 들킨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지정 구역 이탈 시간: 47분.
지정 구역 이탈 시간: 48분.
그 숫자가 자꾸 떠올랐다.
받았다.
화면이 켜졌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본부장님이었다.
같은 얼굴. 같은 배경. 같은 셔츠 색깔. 면접 날 봤던 그 얼굴이, 지금 이 화면에 그대로 있었다. 매주 미팅에서 보던, 너무 익숙해서 특별할 것도 없던 얼굴.
혹시 닮은 사람인가? 아니면 가족이나, 쌍둥이?
그런데.
"안녕하세요, 인후 씨."
목소리도 본부장님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머릿속이 잠깐 멈췄다. 본부장님이라고 부를 뻔했다가, 삼켰다.
본인의 입으로, 대표라고 소개했다.
"…네. 안녕하세요."
내가 겨우 답했다.
"바쁘실 텐데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대표가 웃었다.
그 웃음.
본부장님이 웃을 때랑 똑같았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 눈이 살짝 감기는 정도까지.
나는 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저… 실례지만."
"네, 말씀하세요."
"혹시 본부장님 아니신가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떨리는 걸 숨길 수 없었다.
대표가 나를 봤다.
한 박자, 침묵이 있었다.
"네, 맞아요."
너무 태연했다.
"제가 본부장을 겸하고 있어요. 대외적으로만 대표고요."
아무렇지 않았다. 숨기려는 기색도,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마치 원래 다 아는 사실을 왜 새삼 묻냐는 듯한 태도였다.
"…아, 그러셨군요."
이상했다.
두 달 동안, 나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대표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조직도에도 따로 적혀 있었다. 보고 라인도 달랐다. 그런데 정작 본부장님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다.
내가 몰랐던 게, 이상한 거였다.
원래 다들 아는 걸, 나만 몰랐던 것처럼.
"인후 씨가 요즘 회사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어요."
대표가 말을 이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네?"
"서버 백업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AI 에코 위험성 보고서도 몇 번 올리셨고."
"…네.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궁금한 게 많아서요."
"좋은 자세예요."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두 번. 첫 번째는 깊게, 두 번째는 살짝.
그 끄덕임도, 본부장님이었다.
회의 때마다 봤던 그대로.
"인후 씨 같은 분이 필요했어요."
대표가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이요?"
"끝까지 파고, 의심하는 사람이요."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얼핏 칭찬처럼 들렸다.
"그런 사람이, 흔치 않거든요."
대표가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표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인후 씨를 본사 직속 프로젝트에 투입하려고 해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아직 이름은, 모르시는 게 나아요."
그 말이,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인후 씨가 그렇게까지 알고 싶어 하시니까요. 차라리 가까이서, 제대로 알려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가까이서.
나에게 선택지가 있는 걸까.
"인후 씨는 반응이 흥미로워요."
대표가 말했다.
"…반응이요?"
내가 되묻자, 대표가 잠깐 멈췄다.
"아, 표현이 좀 그렇죠."
대표가 웃으며 정정했다.
"판단이 남다르다는 뜻입니다."
찰나였다. 그런데 그 찰나가, 방금 뭔가 잘못 나온 말을 급하게 고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후 씨."
대표가 다시 불렀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물어보셔도 돼요."
나는 화면을 봤다.
이건 함정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다. 본부장이면서 대표인 이 사람이, 지금 스스로 문을 열어주었다.
머릿속에서, 조금 전 봤던 화면들이 스쳤다. 격자로 늘어선 수십 개의 하얀 방. 번호가 매겨진 얼굴들. 그리고 스물세 번째에서 끝났던 그 줄. 꺼져 있던 22번의 화면.
나는 숨을 한 번 쉬고, 입을 열었다.
"저… 회사 직원이 23명이 맞나요?"
대표가 나를 봤다. 놀란 기색은 없이.
"정직원으로는, 그렇습니다."
정직원으로는.
나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중에… 사람이 아닌 직원들이, 있나요?"
애써 돌려 말했다. 그런데 돌려 말한 게 무의미할 정도로, 질문의 의미는 명확했다.
대표가 잠깐 침묵했다.
화면 너머로, 미세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인후 씨."
대표가 말했다.
"진실을 알려드릴게요."
"이 회사에, 진짜 인간은 단 한 명뿐입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 한 명.
그 말이 머릿속에서 아무 데도 못 가고, 그냥 멈춰 있었다. 이제까지 보고 들었던 모든 것 중에 가장 강한 한 마디였다. 지금까지 나는 이 회사에 이상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팀원들이 이상하다고, 준노 씨가 사라졌다고. 그런데 그 모든 의심의 끝에, 이렇게 단순한 숫자 하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명.
스물세 명 중에.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묻고 있었다.
"그게… 누군가요?"
대표가 입을 열었다.
"진실은, 인후 씨가 직접 알아내셔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그럼 새로운 일을 할지 말지. 일주일 안에, 결정해서 말씀해 주세요."
화면이 꺼졌다.
인사도, 마무리도 없이. 그냥 어두워졌다.
나는 어두워진 노트북 화면을 봤다.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단 한 명의 인간.
본사 직속 프로젝트.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계속 부딪혔다.
단 한 명의 인간.
그게 나를 말하는 거라면.
나머지는 전부.
일주일 후 업무 변경.
7월 1일까지 남은 시간의 절반이었다.
두 달 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죽어가던 내가. 살려고 일을 시작했던 내가.
어쩌면 나는, 누군가 그 말을 해주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네가 진짜라고.
네가 유일하다고.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진짜였다.
나는 그 사실을,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의심하고, 넘기지 않고, 여기까지 파고든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다. 사람만이 이렇게 끝까지 의심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준노 씨는 알아챘고, 저항했고, 사라졌다.
나는 알아챘고, 대화했고, 남았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제안받았다.
나는 손끝으로 책상을 짚었다.
이제야,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이 회사의 유일한 사람.
그게 누군지, 더 물을 필요는 없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