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 어긋난 대답



문을 잠갔다.

집 안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내 손을 오래 봤다.

뜨거움. 눈. 숨. 피.

나는 나를 테스트하기로 했다.


먼저, 커피부터 시작했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였다. 김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컵에 따랐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올라왔다.

나는 손가락을 컵 표면에 대봤다.


따뜻하다, 뜨겁다.

딱 그 정도 감각이었다.


컵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보통이라면 진작 떼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계속 대고 있어도, 손을 뗄 필요가 없었다. 통증도 오지 않았다.


그때도 이랬다.

두 달 전, 야근하던 밤에 마신 커피. 뜨거운 김이 나는데, 손은 아무렇지 않았던 그 컵.

그때는 그냥 넘겼다.


다음은 눈이었다.

거울 앞에 섰다.

눈을 크게 뜨고, 이상한 실험을 시작했다.


커피는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길 수 있었다. 신체감각이, 통증이 원래 둔한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데 눈은 달랐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반응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거울 속 나를 봤다.

눈을 뜬 채로, 깜빡이지 않고 버텼다.

십 초. 이십 초. 삼십 초.

1분, 2분.

눈이 시려야 했다. 눈물이 나야 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았다. 눈이 마르지도, 시리지도 않았다. 그냥, 계속 뜬 채로 있을 수 있었다.


3분.

5분.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더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원하면, 언제까지고 눈을 뜨고 있을 수 있었다.


다음은 숨이었다.

이건 가장 무서운 실험이었다. 눈까지는 그렇다 쳐도, 숨은 살아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증거였다.


숨을 참아봤다.

1분.

2분.


가슴이 답답해야 했다. 숨이 차야 했다. 심장이 빨리 뛰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 느낌도 없었다.


이쯤 되면 몸이 먼저 반응해야 했다. 가슴이 조이고, 손끝이 저리고, 어지러워져야 했다. 쓰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숨을 안 쉬어도, 몸이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5분쯤 지나서, 그냥 숨을 다시 쉬었다.


일부러.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었다.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그것. 그런데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커터칼을 꺼냈다.

손가락 끝을 봤다.

손이 떨렸다.

나에게는 분명히 공포감이라는 것이 있다.


다치려는 게 아니었다.

확인하려는 거였다.


칼날을 손가락 끝에 아주 살짝 댔다. 힘을 주지 않았다. 종이에 베인 것보다도 얕게.

나는 그 자리를 봤다.

피가 나야 했다.

그런데 나지 않았다.

몇 초를 더 기다렸다. 그래도 안 났다. 그냥, 얇게 갈라진 살 사이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칼을 내려놨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뜨거움.

추위.

숨.

피.


전부 확인했다. 전부,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걸 하나씩 넘겨왔다.


피곤해서.

예민해져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리고 AI디프레이션의 증상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지금, 네 가지를 하나로 모아놓고 보니.

이제는 넘길 수 없었다.

조작된 정보일 수도 있다.


대표가 나를 흔들려고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내가 예민해진 탓에, 원래 있던 정상적인 반응도 이상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건.

대표가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손가락이었다.

내 눈이었다.

내 숨이었다.

내 피부였다.


회사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든, 지금 이 순간 내 몸이 보여주는 건 조작할 수 없었다.


나는 바닥에 앉은 채로,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준노 씨의 꺼진 화면이 떠올랐다.


HUMAN_SIM_022.
상태: 종료.


그 옆에 있던 내 화면.


HUMAN_SIM_023.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파일을 다시 열었다. 0.5초 만에 닫혔던 그 파일. 이번엔 제대로 보고 싶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화면 일부가 다시 스쳤다.


HUMAN_SIM_023.
생성일: 2038.03.28.
참조 모델: HY_HUMAN_REF.


화면이 곧바로 닫혔다. 늘 그랬듯이.

그런데 이번엔, 그 짧은 순간에도 충분했다.


HY_HUMAN_REF.

나는 그 문자열을 곱씹었다.


HY.

이니셜 같았다.

내가 아는 HY는, 한 사람뿐이었다.


희영.

이희영.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내 표정, 내 말투, 내 반응.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나답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희영님을 본떠서 만들어진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였다.

희영님이 처음으로 리포트를 읽어줬을 때, "저랑 비슷하네요"라고 했던 말.

그때 나는 그게 그냥 우연인 줄 알았다.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로파이가 좋다고 했던 것도, 완벽한 멜로디보다 조금 불완전한 게 오래 남는다던 그 말도.


전부 겹쳤다. 너무 정확하게.

그게 우연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기 때문이라면.


나는 원본이 아니었다.

참조해서 만들어진 쪽이었다.

희영님을 보고 만들어진, 그림자였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지, 더는 알 수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회사의 유일한 인간.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