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다음 날, 나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리포트를 열어놓고도, 커서만 깜빡였다.
어제 희영님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뭔가, 전보다 단단해지신 느낌?
그런데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 말이 왜 이렇게 걸리는지, 잘 몰랐다.
오후에, 나는 다시 희영님한테 화상 통화를 걸었다.
이번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인후 씨."
희영님이 받았다.
"어제 못다 한 얘기라도 있으세요?"
웃으며 물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봤다.
어제는 묻지 못했던 질문이 있었다. 꺼낼까 하다가 결국 삼켰던 말.
오늘은 삼키지 않기로 했다.
"희영님."
"네."
"희영님은… 진짜 인간이 맞아요?"
질문을 뱉고 나니, 심장이 뛰었다.
살면서 누가 이런 질문을 받아볼까?
하지만 꼭 필요했다.
돌이킬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걸 묻고 나면, 다시는 예전으로 못 돌아갈 수도 있다.
희영님이 나를 봤다.
잠깐, 정적이 있었다.
희영님이 작게 웃었다.
"인후 씨, 왜 이러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무 자연스러웠다.
당황한 기색도, 불쾌한 기색도 없었다. 그냥, 친구가 이상한 농담을 했을 때 웃어넘기는 딱 그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냥… 요즘 이상한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나는 얼버무렸다.
"저, 사람 맞아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희영님이 손을 들어 보였다.
"이거 봐요. 손톱 다듬은 지 며칠 됐다고 벌써 자랐어요. 이런 것까지 AI가 신경 써서 만들까요?"
농담이었다.
자연스러운 농담.
나는 그 말에 같이 웃어야 했다.
그런데 웃음이 안 나왔다.
희영님이 덧붙였다.
"인후 씨는요?"
"…네?"
"인후 씨는, 진짜 인간이 맞아요?"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런데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쉬운 질문이었고,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네.
그렇게 말하면 되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에 걸렸다.
"…저도 사람이죠."
늦게, 겨우 대답했다.
"네, 그러시겠죠."
희영님이 웃으며 넘겼다.
너무 매끄러웠다.
지난번에 물었을 때도, 이번에도. 희영님은 화내지도,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보통 이런 질문을 두 번이나 받으면 조금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기분 나빠하거나, 왜 자꾸 그러냐고 캐묻거나.
그런데 희영님은 그러지 않았다.
그 순간, 지하에서 들었던 소리가 떠올랐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여러 목소리가, 조금씩 다른 톤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던 소리.
지금 희영님의 저 웃음도, 그렇게 연습된 반응일까.
'인후 씨, 왜 이러세요.'
그 말도, 몇 번이고 반복돼서 다듬은 문장일까.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놀랐다.
나는 희영님을 의심했다.
며칠 전까지 나는 희영님만은 믿고 싶어 했다. 유일하게 진짜라고 확신했던 사람. 지금, 나는 그 확신에 처음으로 금이 가는 걸 느꼈다.
혹시, 희영님이.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뒤이어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희영님이 그 한 명이라면.
그럼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속이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황급히 그 생각을 밀어냈다.
말도 안 됐다. 나는 알고 있었다. 대표가 말했다. 단 한 명. 그게 나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고,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버텼다.
그걸 지금 와서 의심할 순 없었다.
"인후 씨?"
희영님이 불렀다.
"…아, 죄송해요. 잠깐 딴생각을."
"오늘 진짜 이상하시네요."
희영님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이, 어제 은빈님이 지었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계산된 걱정.
아니야.
나는 그 생각을 지웠다.
통화를 끊고,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방금 일을 다시 곱씹었다.
희영님의 웃음, 손톱 얘기, 나한테 되물었던 질문.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전부 자연스러웠다. 사람이 할 법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전부 합쳐놓으면, 뭔가 이상했다.
너무 사람 같았다.
너무 자연스러운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준노 씨를 떠올렸다.
준노 씨도 나처럼, 혼란에 빠졌던 걸까.
그리고 어디까지 알았던 걸까. 진실을.
그것도 아니면. 끝까지 몰랐던 걸까.
그 답을, 이제는 영영 알 수 없었다.
준노 씨는 사라졌고, 남은 건 책상 밑에 긁힌 세 개의 숫자뿐이었다.
그 숫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낸 지금도, 정작 준노 씨가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손끝으로 책상을 짚었다.
이상하게, 감각이 흐릿했다.
지금까지 나는 당연하게 믿었다.
내가 유일한 인간이라고. 그런데 그 믿음은, 어디서 왔지.
대표의 말 한마디였다.
"회사에 인간은 단 한 명입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까지 나는 회사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해 왔다. 팀원들을, 은빈님을, 본부장님을. 그런데 딱 하나,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만은 의심 없이 믿었다.
단 한 명. 나.
왜 그 말만은, 의심하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확실한가.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회사를, 팀원들을, 희영님까지 의심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사람인지 증명하며 살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나는 처음으로 그걸 증명해야 했다.
확인해야 했다.
회사가 준 말이 아니라,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걸로.
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손. 팔. 심장이 뛰는 자리.
가장 가까운 증거가, 가장 낯설게 보였다.
지금까지 넘겨왔던 것들이 있었다.
뜨거운 걸 못 느꼈던 것.
피가 안 났던 것.
비를 맞아도 춥지 않았던 것.
숨이 차야 할 때, 숨이 차지 않았던 것.
뜨거움. 추위. 숨. 피로.
그것들을, 이제는 하나씩 다시 봐야 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