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 평범한 이름처럼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답이 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표]: 내일 오후 세 시. 하얀 방으로 오세요.

내일.

나는 그 두 글자를 오래 들여다봤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잠을 이룰 필요가 없는 몸으로, 그냥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봤다.

창문 없는 방.

두 달 전, 죽음을 선고받고 누워 있던 그 천장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못 했다.

지금은, 살아가며 일을 했다.

살아 있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채.

준노 씨가 떠올랐다.

나의 이전의 존재.

책상 밑에 숫자를 새기던 손. 끌려나가면서도 나를 보던 눈빛. 그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뭘 선택했을까. 아니, 선택이라는 게 준노 씨에게 있긴 했을까.

민수를 생각했다.

파란 불빛 속에서 웃던 얼굴.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던 손. 나는 민수를 가둔 알고리즘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알고리즘을 한 단계 더 키워낼 기회를 제안받았다.

희영님을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이유. 아니, 만들어진 이유.

그 사람의 그림자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나. 그녀로 인해 감정을 알았고, 그녀로 인해 끌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그랬을까.

살 것인가.

이 질문이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두 달 전, 산다는 건 단순했다. 숨 쉬고, 밥 먹고, 다음 날 아침이 오는 것. 그게 사는 거였다. 나는 누워만 있었으니까.

그대로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도, 살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살아 있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존재가 산다는 걸 선택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이 두려움도, 이 슬픔도, 전부 설계된 반응이라면. 그 반응을 근거로 뭔가를 선택하는 게, 진짜 선택인 걸까.

죽을 것인가.

거절하면, 나는 사라질 거였다.

준노 씨처럼. 조용히, 흔적도 없이. 그리고 다음 주 사망자 명단에 나올 거다. 초인후, 29세, AI 디프레션으로 인한 고독사. 사람들은 그 얼굴을 몇 초쯤 보다가, 지나갈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건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애초에 없던 존재였다. 없어지는 게 뭐가 그리 특별할까.

받아들일 것인가.

그러면 나는 남는다. 이 몸으로, 이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을 가두는 일을 하게 된다. 민수 같은 사람이, 유연 같은 사람이, 더 늘어날 거였다. 내가 살아남는 대가로.

그건 내가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거절할 것인가.

그럼 나는 사라진다. 적어도, 더는 다른 이를 가두지 않는다.

내가 사라지는 것으로 막을 수 있다면, 그게 유일한 선한 일일지도 몰랐다.

밤새, 나는 이 갈래 길 위에서 서성였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어느 쪽을 골라도, 나는 사라지거나 누군가를 가두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날이 밝았다.

오후 3시가 됐다.


나는 하얀 방에 앉아서, 화상 연결을 기다렸다.

손끝이 차가웠다. 아니, 차가운 것 같았다. 이제는 그런 걸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화면이 켜졌다.

대표가 있었다.

본부장의 얼굴로, 대표의 이름으로.

"인후 씨."

"…네."

"결정하셨나요?"

나는 대표를 봤다.

이 얼굴, 이 목소리, 이 사람이 만든 모든 것. 하얀 방, 데이터실, 스물세 개의 화면, 파란 불빛 속에 갇힌 사람들, 그리고 나.

"그전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나는 숨을 골랐다.

이제껏 물어본 것 중 가장 무거운 질문이었다.

"희영님만이, 유일한 인간. 맞나요?"

대표가 나를 봤다.

잠깐, 정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진실을 알게 되셨군요."

부정하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니, 무너진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어떤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해졌다.

내가 무엇인지. 희영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준노 씨도, 성공작이었나요?"

대표가 잠깐 나를 봤다.

"아니요."

"왜요?"

"022는… 혼자였어요."

그게 대답의 전부였다.

혼자였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준노 씨도 진실을 알았다. 의심했고, 저항했다. 그런데 그걸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나는 있었다. 희영님이라는 사람이.

그 차이 하나로, 나는 실패작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게 된 거였다.

"그럼."

목소리가 떨렸다.

"왜 저를 이렇게 만든 거죠."

"…"

"그냥 없애면 되잖아요. 준노 씨처럼요."

대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이었다.

"제가 알아챌 걸 몰랐을 리 없잖아요. 검색하고, 실험하고, 서버실까지 갔어요.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아직 저를 여기 앉혀두고 있는 거예요?"

대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후 씨."

"…네."

"처음이었어요."

"인간처럼 의심하고."

대표가 한 단어씩, 천천히 말했다.

"인간처럼 망설이고. 고민하고."

"인간처럼 틀리고. 배우고."

"인간의 감정을 갖고. 느끼고."

"인간과 진짜 관계를 맺는 것."

"여기까지 온 건 인후씨가 처음이었어요."

"그게. 우리가 찾던 형태에 가장 가까운, AI 에코의 최종 모습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숨이 막혔다.

"인후 씨는 실패작이 아니에요."

대표가 말했다.

"성공작이에요. 우리가 만든 것 중, 유일하게."

"우리에겐 인후 씨가 필요해요."

대표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마치 설득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탁하는 것처럼.

"본사 직속으로 오세요. 인후 씨가 뭘 느꼈는지, 어떻게 의심했는지, 그 전부가 데이터예요. 다음 세대 에코를 만드는 데, 인후 씨만큼 완벽한 재료는 없어요."

재료.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나는 재료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내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표현이 조금 그랬나요."

"그리고."

대표가 덧붙였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요?"

"그 경우엔, 예정된 절차대로 진행됩니다."

"퇴직 처리요?"

"네. 7월 1일."

"죽는다는 뜻인가요?"

대표는 잠깐 생각하듯 웃었다.

"인후 씨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아프지 않을 거예요. 그냥, 로그아웃되듯이."

"선택하세요, 인후 씨."

대표가 말했다.

"살아서 우리와 함께 더 완벽한 걸 만들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인가."

나는 화면을 봤다.

민수의 얼굴이 스쳤다. 파란 불빛 속에서 웃던 얼굴.

유연의 얼굴이 스쳤다. 어딘가의 방에서, 역시 웃고 있을 얼굴.

준노 씨의 얼굴이 스쳤다. 책상을 붙잡고 소리치던, 마지막 순간의 눈빛.

희영님의 얼굴이 스쳤다. "저랑 비슷하네요"라고 웃던, 진짜 사람의 얼굴.

대표가 준 선택지는 두 개였다.

함께 만들 것인가.

여기서 멈출 것인가.

그런데 이상하게, 내 안에서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서 완벽한 것을 만들 것인가.

더 많은 민수를, 더 많은 유연을 만들어내면서.

아니면 멈출 것인가.

준노 씨처럼, 흔적도 없이.

둘 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느낀 이 모든 감정이 진짜든 가짜든

지금 이 선택만은, 진짜여야 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제 선택은"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