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 몸이 말해준 것

나는 하루 종일 희영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폰을 몇 번이나 열었다가 닫았다.

손가락이 채팅창의 버튼 위에서 멈췄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희영님, 사실 제가 희영님을 본떠서 만들어진 거였대요.'

그런 말을, 도무지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의에도 겨우 들어갔다.

팀장님, 은빈님, 우람님, 우정님.

화면 속 얼굴들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이 사람들은 적어도 나와 같은 부류였다.

같이 만들어진, 같은 것들.

어디까지 같은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저 사람들을 가짜라고 여겼다.

그렇게 마음으로 밀어냈다. 나와 다른 존재라고.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나와 비슷한 존재라고.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희영님만은 달랐다.

희영님은 진짜 쪽에 가까웠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래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게 설명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본떠 만들어진 그림자에 가까웠다.

같은 화면에 마주 앉을 자격이 있는 걸까.

그런데도 자꾸 희영님이 생각났다.

내 마음에 느껴지는 이런 것들까지, 전부 만들어진 걸까.

그러다 문득,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먹는 것부터 그랬다.

이것도 습관처럼 하는 척인 걸까, 진짜로 필요해서 하는 걸까.

이제는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먹는 척, 자는 척, 숨 쉬는 척.

내가 해 온 모든 게, 다 인간의 흉내였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밤이 되자, 폰이 울렸다.

[이희영]: 인후 씨, 오늘은 조용하시네요. 괜찮아요?

나는 그 메시지를 오래 봤다.

답장을 썼다가 지웠다.

몇 번을.

[초인후]: 아니에요. 그냥 좀 바빠서요.

거짓말이었다.

거짓말도, 내가 할 수 있는 거구나.

[이희영]: 잠깐 괜찮아요? 걱정돼서요.

걱정.

그 단어를 보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희영님은 진짜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걱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

가짜가 받는 진짜의 걱정.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결국 화상 통화를 걸었다.

받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후 씨."

희영님이 나를 봤다.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희영님이 화면 가까이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는 그 얼굴을 봤다.

전에는 그냥 다정하다고만 느꼈던 표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표정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다.

저 눈매, 저 웃을 때 눈이 휘는 방식.

화면 가까이 다가온 얼굴.

나는 그것들을 예쁘다고 느꼈다.

이 마음도, 설계된 걸까.

AI 에코가 갖고 있던 것과 닮은 그 표정들.

내가 만들어질 때, 이 사람을 참고했다면.

아니. AI 에코를 만들 때도, 어쩌면 그랬을지 몰랐다.

희영님이 좋아하던 것들, 희영님이 자주 짓던 표정들. 그게 내 안에도 있었고, 에코 안에도 있었다. 같은 곳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전부, 희영님에게서 시작된 걸지도 몰랐다.

"인후 씨?"

희영님이 다시 불렀다.

"…죄송해요. 잠깐."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저 요즘, 생각이 좀 많아서요."

"무슨 생각이요?"

나는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목소리가 나오기 직전에, 목 안쪽에서 멈췄다.

말을 하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전부 말하고 싶었다.

대표가 한 말, 데이터실에서 본 것, 내가 확인한 것들.

희영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희영님이 나를 다르게 볼 것 같았다.
지금까지처럼 "인후 씨"라고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희영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희영님은 여전히 나를 인후 씨라고 불렀다.

사람에게 붙이는 평범한 이름처럼.

그게 이상하게 아팠다.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지.

"희영님."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저랑 비슷하다고 하셨던 거, 기억하세요?"

희영님이 잠깐 나를 봤다.

"그럼요. 그때 그랬잖아요, 로파이 음악 좋아한다고."

"그때, 왜 그렇게 느끼셨을까요."

희영님이 조금 웃었다.

"그냥, 취향이 맞았나 보죠."

취향이 맞았나 보죠.

그 대답이, 이제는 다르게 들렸다.

취향이 맞은 게 아니었다.

내가 희영님의 취향을 그대로 전해받은 거였다.

우연이 아니었다.

설계였다.

"…그런가 봐요."

나는 그렇게만 답했다.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화면 속 희영님이 나를 오래 봤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얼굴이었다.

"인후 씨, 진짜 무슨 일 있죠? 이런 거 처음 봐요."

"..아니에요."

나는 웃으려고 애썼다.

"그냥, 요즘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요. 죄송해요, 신경 쓰이게 해서."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걱정되는 거예요."

희영님이 말을 이었다.

"혹시 AI 디프레션이 재발하신 거라면.."

"죄송해요. 저 그만 가볼게요."

나는 거의 끊듯이 말했다.

그리고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화면이 꺼지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그 얼굴을 오래 볼 수 없었다.

너무 닮아서.

아니, 내가 그 사람을 닮아서.

다음 날, 나는 회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전 회의 알림이 떴지만, 무시했다.

[팀장]

그 이름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팀장님도, 은빈님도, 우람님도, 우정님도.

모두 나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서로를 동료라고 부르며,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가짜들이 모여 진짜 회사를 흉내 내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상했다.

회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회의에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마치 내가 빠지는 것까지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AI 에코 관리자 페이지.

예전에는 몰랐던 메뉴들이 보였다.

아니, 이제야 보이는 것 같았다.

[개인화 데이터]

[대화 패턴]

[정서 반응 로그]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개인화 데이터 항목을 열었다.

처음 보는 이름이 있었다.

REFERENCE HUMAN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LEE HEEYOUNG

손끝이 차가워졌다.

나는 화면을 오래 봤다.

희영님.

정말이었다.

나는 희영님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왜 나를.

왜 희영님을.

누가.

노트북 화면 오른쪽 아래에 알림이 떴다.

[새 메시지]

[대표]

나는 숨을 멈췄다.

대표였다.

[대표]: 어제 이희영 씨와 통화하셨더군요.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알았지.

아니.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대표]: 감정 동요가 심해 보입니다. 직접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네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대표]: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십니까?

시간 괜찮으십니까.

정중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빈 채팅창을 바라봤다.

수신인을 입력했다.

[대표]

한참을 망설이다가, 썼다.

'직접 뵙고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만나주실 수 있을까요.'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멈췄다.

이 메시지를 보내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보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