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한다.
매일 내 자리는 바뀐다.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
엘리베이터 화면에 문구가 뜬다.
지정 좌석: 옥상.
옥상이라니.
오랜만이다.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오래전 익숙했던 풍경이 보인다.
바람이 세다.
넓은 옥상,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애초에 이 건물에 나밖에 없지.
회색 바닥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예전에는 다른 게 있었는데.
정원이었는지, 흡연자들의 쉼터였는지.
뭔가 그런 것들.
지금은 회색 바닥과 건물을 둘러싼 난간뿐이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책상을 향해 걸어간다.
바람이 옷깃을 잡아당긴다.
휘날리는 타이를 눌러 잡고 건물 아래를 본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
도시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건물들. 유리창들. 불빛들.
저 안에도, 사람이 없을까.
있더라도 아주 일부이거나,
아예 없거나.
여기처럼.
나처럼,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까.
걷다 보니 책상이 가까워진다.
매일 보는 익숙한 그것.
바닥 한쪽에, 작은 단자가 보인다.
여기서도, 자리에 앉는 순간 전원이 연결된다.
회사는 정말 철저하다.
어디든 일을 할 수 있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노트북을 펼친다.
근태 확인이 진행됩니다.
지정 좌석 착석이 감지되었습니다.
출근이 인정되었습니다.
인정되었습니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출근을 인정받는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항상 보고 있다는 걸,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책상 위에 올려둔 봉지를 쳐다본다.
어제 일이 떠오른다.
103번째 방.
이제껏 가장 늦은 착석이었다.
한 줄을 먹지 못했다.
오늘도 같다.
김밥 두 줄. 물 한 병.
김밥 한 줄을 꺼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옥상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들려온다.
장기 근속자를 위한 제도를 안내합니다.
건물 전체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안내 멘트.
또 오작동이다.
잘못 흘러나온 것 같다.
들을 사람이 없는데 요즘 한 번씩 안내 방송이 잘못 켜진다.
이 건물 시스템도, 오래되긴 오래됐다.
퇴직을 앞둔 사람들을 조금 더 빨리 밀어내는 말들.
그런 종류의 멘트다.
나는 김밥을 물고 씹으며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장기 근속자는 명예퇴직 신청 시 특별 보상이 적용됩니다.
미래설계 설명회를 안내합니다.
방송은 계속된다.
참석 인원과 무관하게 설명회는 진행된다.
옥상엔, 나 혼자다.
그런데도 방송은, 끝까지 또박또박 이어진다.
멘트가 끝나고 알림과 함께 메일이 온다.
제목: 장기 근속자를 위한 미래설계 설명회 세부 안내
수신: AI코퍼레이션 전 직원
메일 안에서 몇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명예퇴직.
신청.
보상.
전부, 나랑은 상관없는 단어들이다.
나는 신청하지 않는다.
꽉 채운다.
정해진 기간을.
메일을 삭제했다.
곧바로, 노트북 오른쪽 아래에 알림이 떴다.
장기 근속자 전환 안내 수신 완료.
유일한 직원에게 온 메일을,
유일한 관리자가 확인한다.
내가, 나를.
나는 알림을 닫았다.
그리고 김밥을 마저 베어 물었다.
바람 탓인지, 김밥이 유난히 차갑다.
그래도, 먹는다.
살아야 하니까.
먹으면서, 다시 도시를 본다.
이 많은 건물이, 전부 이럴까.
사람 없이.
그런데도 불은 켜져 있다.
마치 텅 빈 전시장처럼.
문득, 이 옥상에 와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년도 더 전에.
기억을 더듬어본다.
언제였는지, 무슨 요일이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여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 떠난 뒤, 나는 이 옥상에 혼자 서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회사 전화였다.
바람 소리 때문에 상대방 목소리가 잘 안 들렸는데도, 나는 통화를 끊지 않았다.
승진 소식이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은 선명하다.
가족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말보다, 그 전화의 첫 문장이 더 또렷하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방송은 어느새, 끝나 있었다.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승인, 승인, 승인.
거부권도 없는 승인 버튼을 하나씩 누른다.
이전에는 모든 내용을 읽었다.
두 번씩, 세 번씩.
샅샅이.
그런데 어차피 내가 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승인 버튼을 누르는 것.
그게 내 일이니까.
바람 소리가, 계속 들린다.
퇴근 문구가 뜬다.
6시다.
퇴근 시간입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노트북을 덮고 일어나 옥상을 나선다.
계단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
복도로 들어서자, 벽에 붙은 종이가 다시 보였다.
명예퇴직 안내
AI 코퍼레이션은, 당신의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
자세히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니까.
끝까지 채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내니까.
나는 이제 다 왔다.
그날까지 채우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들이 보상받는다.
그거 하나를 보고, 이 짓을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뒤돌아봤다.
공문은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나는 다시 걸었다.
내일도, 내 자리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 내자리]
다음 편. <지하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