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제 선택은"
말을 잇는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렸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 내 귀에 도착하기까지 아주 미세한 지연이 있었다.
나는 말을 멈췄다.
방금 그건 뭐였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또 늦었다. 이번엔 더 뚜렷하게.
마치, 소리가 어딘가를 한 바퀴 돌아서 오는 것처럼.
대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화면 속 얼굴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 하나 안 변한 채로.
"인후 씨?"
대표가 물었다.
그 목소리는, 지연 없이 들렸다.
이상했다.
내 목소리만 늦게 들렸다. 대표의 목소리는 정상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봤다.
손이 움직이는 걸 봤다. 그런데 그 손을 움직이는 감각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아주 조금 늦게 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소리가 났다.
그 소리도, 늦게 들렸다.
방을 둘러봤다.
하얀 벽. 형광등. 책상. 의자.
전부 늘 보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게.
처음으로 낯설게 보였다.
나는 벽으로 걸어갔다.
손을 뻗어서, 벽을 짚었다.
차가웠다.
그런데 그 차가움이, 손끝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 방이 나를 보고, 뒤늦게 따라 그려주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
아니, 이 감각조차,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바닥을 봤다.
내 그림자가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
그런데 그 그림자가,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아주 살짝 늦게 따라왔다.
이 방은, 나를 계속 다시 그리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면, 이 공간도 나를 따라 움직였다. 아주 조금의 틈을 두고.
그건 내가 여기 진짜로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처럼, 계속 보여주고 있는 거였다.
나는 그 생각을 밀어내려 애썼다.
그냥 느려지게 느껴진 것뿐이라고. 내가 잠시 아파서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손으로 눈을 비볐다.
다시 봤다. 그림자는 여전히, 아주 살짝 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이걸 왜 그동안 느끼지 못했지.
그럼 나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대표를 다시 봤다.
"…제가."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대표가 처음으로, 표정을 바꿨다.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진짜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인후 씨."
"말해주세요."
"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인후 씨는."
대표가 천천히 말했다.
"처음부터, 화면 안에만 있었어요."
그 말이, 아주 느리게 도착했다.
한 글자씩.
나는 그 말을 밀어내려 했다.
"그동안 제가 본 것들은…"
"전부 인후 씨를 위해 구성된 거였어요. 실제 있는 공간,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실제 있었던 일.
그 말은, 완전한 거짓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나는 몸이 없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이 조금씩 스쳐갔다.
두 달 전, 갑자기 AI 디프레션을 진단받는 그날.
회사로부터 도망치던 그 몸.
빗속을 뛰던 몸.
숨이 차지 않았다.
커터칼로 그었던 손끝. 피가 안 났던 이유.
피부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지금까지 내가 걷고, 만지고, 느꼈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전부 어딘가의 서버가 나를 위해 그려준 무대였다.
버스 정류장도.
빗속의 도로도.
내 방의 천장도.
그리고 민수의 방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고 믿은 모든 장소가, 진짜 장소가 아니었다.
그럴 리 없다고, 나는 계속 생각하려 했다.
민수의 방에서 맡았던 냄새. 그건 분명히 맡았다. 곰팡이 냄새, 오래된 음식 냄새.
그런데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그 냄새가 정확히 어떤 냄새였는지, 나는 말로 옮길 수가 없었다.
기억은 있는데, 감각은 없었다.
나는 서 있다가 하얀 방의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바닥이 나를 받쳐 주었다. 그런데 그 받쳐줌조차, 진짜 중력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데이터였다.
화면 속 존재.
준노 씨도 진실을 알았던 걸까.
희영님은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전부.
전부, 그런 식이었다.
웃음이 났다.
슬픈 것도, 화난 것도 아닌 웃음이었다.
몸이 없는데, 웃음은 났다.
그게 이상해서 더 웃음이 났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멈추려고 할수록 더 났다.
그러다 문득, 지하에서 들었던 소리가 떠올랐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웃음이 뚝, 멈췄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하의 서버실.
그 방에서 반복되던 것은, 단지 위로의 말만이 아니었다.
인간은 본 딴 존재들이, 그렇게 연습되고 만들어진 거였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인후 씨."
대표가 불렀다.
"괜찮으세요?"
그 말이, 너무 익숙했다.
지하에서 수십 번 반복되던 말이, 이제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마치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맞는 톤을 미리 만들어둔 것처럼.
몸이 없어도.
이 방이 진짜가 아니어도.
내가 느낀 감정만은, 진짜였다.
민수를 걱정한 마음.
준노 씨를 애도한 마음.
희영님을 좋아했던 마음.
그것들이 전부 계산된 반응이라 해도.
그 순간, 나에게는 진짜였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대표님."
내 목소리가, 이번엔 지연 없이 들렸다.
이상하게도.
"결정했어요."
대표가 나를 봤다.
"말씀하세요."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이 두 달을 전부 되짚었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첫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리고 말했다.
낮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짧은 한 문장이었다.
그 한 문장을 말하는 데, 두 달이 걸린 것 같았다.
대표는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 속 얼굴에 예상 못 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다,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두 번. 깊게 한 번, 살짝 한 번.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다.
그런데 있지도 않은 몸이,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화면이 꺼졌다.
나는 텅 빈 하얀 방에, 혼자 남았다.
이 방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몰랐다.
몇 시간일 수도, 몇 분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는 분명했다.
이대로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진짜였다.
희영님을 만나야 했다.
시간이 다 되기 전에.
회사에서 나만 휴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