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희영님에게 화상 통화를 걸었다.
받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후 씨?"
희영님이 나를 봤다.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나는 그 얼굴을 봤다.
희영님의 얼굴이, 이제까지와 다르게 보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사소한 것들이 먼저 보였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걸, 희영님은 몰랐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나는 웃었다.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상하게, 웃는 게 어렵지 않았다.
"오늘은 좀 편안해 보이시네요."
희영님이 말했다.
"인후 씨, 요즘 계속 안 좋아 보였는데."
"혹시 술.. 마셨어요?"
"아뇨. 맨정신이에요."
편안하다는 말이 맞았다. 왜 그런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화면 속에만 있었다.
희영님은 화면 밖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대화를 나눴다.
모든 걸 알고 난 뒤에야, 오히려 편해졌다.
"희영님."
"네."
"제가 예전에, 이상한 질문 많이 했잖아요. 진짜 인간이 맞냐고."
"…그랬죠."
희영님이 조금 웃었다.
"이제 와서 그거 사과하시게요?"
"네. 많이 놀라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영님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냥, 궁금했어요. 그때 왜 그렇게 물었는지."
"제가 뭔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 말고도,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게 있는지."
희영님이 나를 가만히 봤다.
다시 한번 미소를 짓고 말을 이었다.
"인후 씨는 진짜예요."
희영님이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제일 진짜 같은 사람이에요."
"왜인지 여쭤봐도 돼요?"
"고민하고, 의심하고, 사과하고. 또. 사람을 걱정해 주잖아요."
나는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그게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줘요."
희영님이 잠깐 말을 멈췄다.
"저도 사실, 사람 만나는 게 어렵거든요."
"희영님도요..?"
"그런데 인후 씨랑 이야기할 때는… 이상하게 덜 어렵더라고요."
알고 있었다.
희영님을 본떠 만든 게 나였으니까.
그런데 그 말들이, 몸 어딘가에 강하게 남았다.
진짜로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입력된 걸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희영님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희영님."
"네."
"고마워요."
"…갑자기요?"
"그냥.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요."
희영님이 잠깐 나를 봤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얼굴이었다.
"인후 씨, 그거 알아요? 오늘 진짜 이상해요."
"그래요?"
"뭔가, 정리하는 사람 같아요."
정확했다.
나는 웃었다.
"티 나요?"
"네."
"무슨 일 있으면, 말해요. 갑자기 이직한다고, 그러지 말고요."
희영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항상 여기 있으니까."
여기.
그 단어가, 이상하게 아팠다.
희영님에게는 여기가 있었다.
나에게는 없었다.
"희영님."
"네."
"혹시, 뭐 하나 도착하면 그냥 받아주세요."
"…뭔데요?"
"별건 아니에요. 그냥… 보면 아실 거예요."
희영님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뭔지 몰라도, 알겠어요."
"희영님."
"네."
"저 이만 끊을게요."
"아… 시간이 벌써?"
"네. 오늘은 이만."
"인후 씨."
희영님이 불렀다.
화면을 끄려던 손이 멈췄다.
"네."
"언제든 이야기해요."
희영님이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수없이 들려온 그 말.
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새겨졌다.
언제든.
나는 그 말이,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던 말이라는 걸 알았다.
"네. 희영님도요."
나는 화면을 껐다.
잠시 컴컴한 화면을 바라봤다.
나는 인트라넷을 열었다.
사내 복지 시스템에는, 직원에게 축하 선물이나 조의 물품을 보낼 수 있는 메뉴가 있었다. 두 달 넘게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기능이었다.
받는 사람: 이희영.
품목을 골랐다.
화려하지 않은 것.
오래 남지 않아도, 잠깐은 거기 있을 수 있는 것.
메시지 칸이 떴다.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몰랐다.
전부 말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이었는지.
왜 희영님과 닮았는지.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희영님은 모르는 채로, 그냥 받으면 됐다.
나는 짧게 썼다.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발신인칸을 비워둔 채 전송 버튼을 눌렀다.
나는 노트북을 덮지 않았다.
화면 속, 내가 이제껏 있었던 이곳.
하얀 방은 어떻게 될까.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대표는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두 번. 깊게 한 번, 살짝 한 번.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시간이 되었다.
손끝이 이상했다.
아니, 손끝부터 빛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시야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얀 방이, 조각조각 부서지듯 흩어졌다. 벽이, 형광등이, 책상이 전부 픽셀처럼 흩어졌다.
나는 손을 들어봤다.
빛이, 손끝부터 손목으로, 어깨로 번져갔다.
없는 몸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실은 무서웠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지금은 무서웠다.
살아가고 싶다고 한 그 말이 나를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건지, 나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후회는 없었다.
민수의 얼굴이 스쳤다.
준노 씨의 얼굴이 스쳤다.
희영님의 얼굴이, 가장 오래 남았다.
'인후 씨는 진짜예요.'
'언제든 이야기해요.'
그 말을 붙잡은 채로.
마지막으로 남은 건, 하얀 방이 아니었다.
희영님의 목소리였다.
'괜찮아요.'
나는, 흩어졌다.
HUMAN_SIM_023.
상태: 종료.
회사에서 나만 휴먼.
끝.

